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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순수학문 장기투자 정신' 없이 송유근 받은 UST 비극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25 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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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천재 소년' 송유근군의 논문이 표절작으로 결론지어져 결국 학술저널에 발표된 것도 철회 조치를 당하게 됐다.

만 17세, 국내 최연소 박사 학위 취득 예정자에서 학자로 첫 발을 내딛는 국면부터 논문 철회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처지로 전락한 것. 논문이 결국 표절작으로 확인된 상황이라 당초 내년 2월 예정된 학위 수여식 역시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저명 국제학술지에 블랙홀 논문이 발표될 때만 해도 드디어 우리 과학 발전에 의미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이 이 논문이 독창성이 거의 없다, 지도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박사의 2002년 학술대회 발표자료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변했고 결국 이런 국제적 수모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그를 교육시킨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교육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는 것도 불가피해졌다. 차라리 처음 학부 진학을 했던 인하대에서 그냥 다녔으면 이런 지경까지 왔겠냐는 한탄마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여기서 당초 천재소년으로 거론되며 어린 나이에 인하대에 진학했던 그가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학사 취득에 이어 석사, 박사를 지속하지 못했는지 새삼 조명해 보아야 한다. 물론 들어간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고, 당초 기대했던 지원이나 처우와 다르다는 식으로 학교측 태도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 처음 수재라는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나 카이스트 진학을 모색하지 않고 인하대를 택했을 근거와 결정의 무게 역시 겹쳐 봐야만 할 것이다.

애초 하와이 교민들이 모국 발전에 써 달라며 희사한 성금으로 세워진 데다, 공학 발전에 특히 비교 우위가 있었던 긴 역사를 가진 인하대를 택한 것은 그의 천재성을 세속적 관점에서 사용하지 않고 애국적 견지에서 발휘하자는 전제 하에 간판 대신 실리를 택하려던 판단으로 받아들여져 많은 국민들이 열광했었다.

그럼에도 굳이 거기서 뛰쳐 나와 진로를 다시 다른 학교에 의탁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애써 이해하려 노력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니까 말이다. 아울러 최종적인 진로의 결정 소식을 듣고, 기초 학문인 천문우주과학을 골랐다는 점, 이른바 대학원대학교라는 곳을 택한 바에 박수갈채도 있었다. 공학에 치여 순수 이과 부문에 투자가 박약하며 우수 인적 자원이 이 영역에 몰리지 않는 세태에 일종의 경종을 송군과 그 부모가 택한 것으로 애써 우리 사회는 견강부회 했었다.

그럼에도 신진 학자로서 첫 족적이 사실상 국제적 망신이라니, 대체 이런 길을 걷게 된 원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워낙 어린 나이에 상급 과정에 진학해 이제 약관도 채 되지 않았으며 아직 멀고도 먼 구만리길이 남아 있는데, 어떤 조급증이 이런 문제적 상황을 만들고 출신 학교 UST 존립의 정당성 자체마저 뒤흔드는 문제를 만들었는지 부모와 학교측에서는 진중하게 반성해야 한다.

워낙 어린 나이에 상급 과정에 진학해 이제 약관도 채 되지 않았으며 아직 멀고도 먼 구만리길이 남아 있는데, 한 5년쯤 더 논문 몇건 더 써 보며 테스트 베드에서 충분히 체력을 기르게 할 의향은 정말 학교측과 부모에게 부족했던 것일까.

천재 소년이기에, 학위도 남들보다 더 빨리 따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강박증적 잣대를 택할 것 같았으면 연봉 많은 직장 구할 최신 유행 전공에 가장 인지도 높은 세칭 명문대들로 진학을 했어야 옳다. 그러니 이것은 결국 답이 될 수 없고 말로 존재할 수 없는 언어도단적 답안지다. 그런데 명색 학문 중심 대학이라는 곳에서 버젓하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필터링해 내지 못했다.

물론 오늘도 많은 박사 논문이 지도를 해 주는 은사의 학문적 그늘에서 대체로 안주하는 변주작 정도로 제작되는 경향이 대체적인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석사 논문은 평균적으로 과거의 학술적 성과들을 집합시켜 놓은 데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대체로 많은 학교들이 제자들을 엄혹하게 다루지 않고 학위기를 내 주는 것고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개혁이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이나, 점차적으로 좋아지고 있고 또 그렇게 가야 한다는 점진적 개혁의 꿈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인문학 고사, 순수과학 홀대 그리고 명문대 졸업장 숭배론에 결과 만능주의 등 모든 문제를 사실 송군의 순수과학 박사 과정 진학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 이 사달이 났으니 UST는 문을 스스로 닫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 앞에 대단히 뼈저린 자아성찰을 해야 한다. 차제에 근자 창궐하고 있는 이런 일명 '대학원대학교'들에 대한 검증 작업도 교육 당국이 잔인할 정도로 진행할 필요가 이번 사태로 입증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굳이 천문학의 고단한 길을 택했으면서도 빨리 뭔가를 내놓으라는 암묵적 압박으로 부모가, 더 나아가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송군을 짓눌렀던 게 아닌지 그 대목 역시 엄정하게 분석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송군에게는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다. 인하대로 돌아가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카이스트든 포항공대든 간에, 아무리 어렵고 부끄러워도 다시 일정 이상 세간의 인지도가 있는 과학 산실로 이적해서 새롭게 논문을 써 나갔으면 한다.

사실, 그는 박사 논문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학사 논문을 쓰기에도 젊다 할 정도의 나이이며 이제 더 살 날이 수십년이다. 30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이까지 하나 정도 있는 박사 과정생이 이런 불미스러운 지경에 직면했다면 학자로서의 인생은 끝이지만, 그에겐 그런 이점이 있기에 앞으로 잘못 끼운 단추 하나쯤은 얼마든 고쳐 끼울 수 있다.

다만 그 새 이륙을 준비하는 활주로로, 한국을 대표하는 유력한 학교 배경은 분명 필요하다. 국제 학술계가 다시 송군이 좋은 성과를 낼 때까진 차가운 눈길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믿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잘못을 유력 대학과 송군 스스로가 길고 긴 장기투자의 마인드로 해 나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