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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양김시대' 역사의 뒤안길로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화에 헌신

이금미 기자 기자  2015.11.22 10: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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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져 2위로 낙선했다.

이후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1992년 대선에서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선언하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특히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이뤄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를 굳게 믿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기도 했다.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헌신한 만큼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됐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앞장섰다.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상징됐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양김 시대'도 막을 내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또한 '3당합당'과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현대정치사에 그가 남긴 빚으로 기억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경남·부산)와 민주화 세력 '상도동계'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김 전 대통령 일생에서 새벽 조깅을 빼놓을 수 없으며,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