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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탈레반과 허주 사이에서 길을 찾다

원칙론자 이면에 '음험하다' 일부 저평가 반박할 정치비전 완성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22 08: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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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드디어 '천정배의 신당'이라는 배가 진수식을 올리고 바다로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무소속이 된 천정배 의원이 18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이하 국민당)'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신당 창당에 돌입했다. 천 의원은 인사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겨냥해 "민심은 이미 수명 다한 정당을 떠났다"고 선언, 친정과의 인연을 단호히 잘라냈다. 이어서 19일에는 가락시장을 찾아 건어물을 먹으며 상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등 본격적 민생 스킨십에 나섰다.

천 의원이 민생 스킨십, 특히 '물고기 노변정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천 의원은 MB정권 초기 촛불 정국에서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에 멱살을 잡히는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주는 판·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는 소신 때문에 임관을 포기하고 바로 변호사로 나선 민권 재야 법조인 출신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이자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천 의원 개인에 대한 오해나 돌발 상황이라기 보다는 야당이 야당답지 않음에 대한 실제 민심의 저평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자만 천 의원으로서는 이에 대단히 당혹스러웠던 듯 하다. 특히 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 오래 열심히 활동해 왔고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편이라고 자부한 그가 마치 MB쪽 사람으로 착각하고 공격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마타도어까지 일부에서 나온 점은 분명 문제적 상황이긴 했다. 이는 사람들과 노변정담(F.D.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갔던 라디오 연설 기법)을 차용한 편한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민생 포차'를 여는 계기가 됐다. 그는 여기서 몸소 전어를 구웠다.

MB 정권 아래서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씨에게 영입 러브콜을 보냈다 속된 말로 '까이는' 등 다양한 뉴스를 생산하면서 대체 원칙이 있냐 없냐 평가까지 듣는(송영길 전 인천광역시장이 이런 비판론자의 대표주자다) '와신상담 정치 행보'는 이 전어를 굽는 연기 속에서 완성됐다.

성격 급한 천재 정치인, 전어를 구우며 민생을 듣다

그는 목포 지역의 3대 수재로 지금도 회자되는 인사인 동시에,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이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인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도 시계를 풀어놓고 정해진 시간 내에 답을 달라고 '압박 면접'스럽게 진행을 했다고 해 악명이 높다.

이런 명석함과 추진력, 속도감 있는 업무 스타일로 정치권 입문 후에도 의미있는 의정활동을 하는 정치가로 일찍이 자리매김을 한 그는 '탈레반 같은 원칙론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참여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자 당시 같은 당 정치인들의 대체적 환영 행보와 다르게 '단식 농성'을 벌인 일화는 빙산의 일각이다. 시계의 바늘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면, 2004년 5월에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서 "당이 정부를 견인해야 한다"는 태도로 밀어붙여 당-정-청 관계 구도 재정립 논란을 빚었다. 천 의원은 여당이 정부와의 관계에서 이런 구조를 갖고 주도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소신을 이전부터 갖고 있었으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논란을 감수하고) 이때 폭발력 있는 이슈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원칙과 소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는 점이 크게 부각됐었다.

그런 한편, 의외로 음험하다는 식의 저평가 공격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원내대표직을 놓고 천 의원과 격돌한 상황에서 그가 석패한 이유로 천 의원이 특정 계파의 지지를 얻는 조건으로 뒷거래를 했다는 식으로 그의 자서전에서 서술했다.

아울러 대선에서 패배해 당이 침울함의 여파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기인 2008년에는 일명 '민생연대' 출범 국면에서 그를 따르는 정치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당 규율을 어지럽힌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모임은 정동영-김근태계가 주를 이뤘지만 '천정배 라인'까지 참여하면서 당내에서 여러 소문을 낳았다. 우왕좌왕하는 지도부는 각성하라는 식으로 당시 정세균 체제를 흔드는 언행을 하는 강경파 조직에 힘을 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보로 원칙론자인가, 혹은 소수 지분으로도 판세를 읽고 흔들 수 있는 노회하고 음험한 정치가인가 평가가 엇갈렸다.

이번에도 정 전 총리 영입 추진 파동 등으로 대체 뭘 바라는 것인지 해석이 분분했다.

대중경제론 상속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 영입, '케인지안 우대' 방향 잡을 듯

DJ 시절부터 경제 각 파트를 두루 경험하며 이후 경제부총리과 감사원장까지 지낸 전윤철씨를 영입한 천 의원은 일명 '대중경제론'을 정책적 기조로 갖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영입 성공은 DJ를 승계한다는 허언 아래서 안전한 금배지 유지 외엔 큰 포부가 없는 일부 호남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전략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학생운동권 출신도, DJ 가신 계열도 아닌 방계 호남 정치인이 정책적으로나마 상속 대열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

정 전 총리를 영입하려 손을 내밀었던 점도 그가 케인즈 학파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케인지안으로서 정 전 총리 이상으로 현재 인지도와 학술적 능력을 검증받은 이도 많지 않기 때문.

따라서 면도날 같은 원칙론을 기본 철학으로 하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서로 배짱이 맞는다면 일부 허물이나 이견은 조율하고 포용한 채 싣고 출항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런 여러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탈레반 같은 엄정함과 허주(虛舟) 김윤환 같은 킹 메이커 같은 유연성 사이에서, 천 의원은 드디어 길을 찾았나? 국민당이 앞으로 어떤 항로를 보일지, 정식 창당이 완성될 내년 연초까지의 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의 배는 그런 측면에서 비어 있지만 빈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