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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시위 진압하다 죽일 셈? '미필적고의'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15 11: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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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명 '11·14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60대 농민이 15일 새벽 뇌출혈 수술을 받는 등 위중한 상태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3개 단체가 지난 14일 오후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 등을 주장하며 집회를 열었는데요, 전농 소속 B씨가 종로구청 인근에서 경찰이 분사한 물대포에 맞고 넘어지면서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각 언론사 사회부 보도를 종합하면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물대포를 쏘는 걸 보면서 어지간하면 나가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고 실제로 B씨의 경우도 가까운 거리에서 맞았으며 쓰러진 다음에도 분사가 계속돼 사람들이 몸으로 대신 물줄기를 막으며 B씨를 이동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에서는 경찰 고발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고 있는데요.

시위 진압하려다 사람 잡겠다는 분노가 어떤 조치로 이어질지, 또 이번 사건으로 경찰의 진압이 다소 부드러워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런 가운데 미필적 고의도 주목 대상인데요, 미필적 고의란 확정적인 고의는 아니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인식 하에 죄가 되는 행동을 감수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경찰장비관리규칙상 물대포는 15m 떨어진 곳에서 하반신만 맞출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정황 보도로는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1m 뒤까지 밀렸 정도로 물대포 위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채증 화면 등을 분석할 경우 경찰장비관리규칙 위반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규칙 위반 자체로 처벌이 되는 건 아니나, 내부 규정이 있는 것은 이런 경우 문제가 있으니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킨 뜻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맞으면 날아갈(그로 인해 부딪혀 다칠 수도 있는) 강도의 물줄기를 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거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미필적 고의를 가졌을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 우선 폭행과 상해를 따져 보겠습니다. 폭행은 단순히 물리력만 행사해도 성립하지요. 살짝 밀치거나 멱살을 잡는 등도 바로 이 죄의 구성요건은 충족합니다. 그러니까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구요. 사람에게 폭행을 일으키다 보니 그게 또 다치거나 죽기까지 하면 폭행치상 내지 치사의 죄가 됩니다.

상해는 사람을 다치게 한 죄입니다. 확정적 고의는 물론, 미필적 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상해가 되지, 폭행치상으로 구성하지 않는다고 봐야 겠지요. 다만, 폭행시상의 형은 그 죄의 처벌을 상해의 예에 따르게 규정하고 있으므로 다른 점은 별로 없죠.

참고로 경찰이 고문을 하는 등 직무상 사람을 때리면 흔히 독직폭행이라고 부르는 죄에 해당하므로 적용 규정이 달라지겠습니다(형법 제125조). 특별법이 따로 있어 이를 적용하는 경우에도 미필적 고의에 대한 기본 얼개는 같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까진 미필적 고의를 고민할 실익이 그렇게 크진 않아 보이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사람이 죽을 상황까지 몰아세우는 식으로 시위대에 대한 가해가 이뤄진 경우, 그 중에서도 사람이 진짜로 죽은 경우가 발생할 때입니다.

아직 환자의 쾌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지어진 상황이 아닌 터에 이런 내용을 거론하기 조심스러운 면도 있지만, 결국 사망할 경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014년 08월 일명 윤 일병 사건으로 국회의원들이 국방부에 긴급 현안질의를 했는데요. 사람이 죽을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면서도 가혹행위를 계속했고 결국 안타까운 결과가 발생한 사건이었지요.

이때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 수사당국이 살인죄 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부분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런 법조 적용에 대해 "우리 군 수사능력의 한계를 보여줬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94년도 판례가 이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논의로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은 조국 서울대 교수의 페이스북 발언입니다. 조 교수는 올해 초, '박종철 열사 27주기'에 즈음해 "고교와 대학 후배였던 종철의 죽음은 나에겐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며 추모했습니다. 이어서 "27년 전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살해당했다. (그러나) 나는 '고문치사'란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고문 등 각종 고문을 했을 때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아야 하기에"라고 적었죠. 참고로 조 교수는 형사법을 연구 분야로 삼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사건이 불미스러운 결과로 치닫는다면, 경찰 규정 스스로도 자제 대상으로 삼는 실로 가까운 거리에서 강한 수압의 물줄기를 쏜 데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논거가 바로 미필적 고의가 될 것입니다. 맞은 사람이 세게 넘어지면서 다치고 그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의 인식과 감수, 용인 문제가 될 것이고요. 물론 그런 불행한 사건으로 이번 일이 비화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또 쾌유를 기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압을 하려고 물대포를 쏘는 것이냐, 맞고 죽으라고 쏘는 것이냐' 식의 논쟁은 분명 유의미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 사회가 1987년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