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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스코가 '남만주철도'서 배워야 할 것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12 11: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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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철도회사인 만철, 공식 명칭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1906년 탄생해 2차 대전 패망까지 일본의 만주정책을 충실히 수행했던 일선 도구였다. 조사부라고 불리는 거대한 싱크탱크를 통해 정책연구를 했으며, 산업과 탄광 관리 등 만주 지역 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을 잘하는 만철이었지만(일을 너무 잘했기에) 군국주의가 심화되고 모든 것을 군부에서 주도하는 시대가 되자 아예 만주침략의 선봉인 관동군 하부조직으로 흡수하려는 움직임이 군부에서 나타났다. 이에 서슬퍼런 군국주의시대임에도 100만 관동군에 맞서 1933년 만철 사원회가 공식적으로 항의성 선언을 했다.

"만철은 메이지 대제(大帝)의 유산으로서 국민의 피와 살의 결정체"로 시작하는 이 선언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전쟁배상금과 철도부설권을 따내 만철을 닦았음을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일명 메이지 대제는 우리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것으로 기억하는 그 메이지 일왕이다. 제국의 기틀을 닦은 그의 위세를 빌리고자 만철이 일부러 대제라 칭했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어쨌든 러일전쟁 당시에는 엄청난 인명 손실이 나서 사령관이 자살하겠다고 하자 왕실에서 명령으로 이를 말릴 정도였다.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악용된 존재 이유 자체가 문제지만, 일본과 일본인에겐 그야말로 피와 살을 바쳐 일군 소중한 국민기업인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만철 스스로도 이 가치를 총칼을 든 군 앞에서 목숨을 걸고 지킬 의지를 밝힌 셈이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이상득 전 의원 등이 불구속 기소되는 걸로 검찰의 포스코 수사가 일단락됐다. 불구속 기소라는 형식으로 재판에 회부됐으니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국영기업으로 출발한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됐다. 정권이 경영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MB 정권이 포스코를 흔들었음을, 이번 수사에서 드러났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포스코는 CEO후보추천위원회를 만들어 CEO 후보를 선발하고 자격을 심사하기로 했다. 외풍을 막고 공정하게 회장을 뽑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후 2007년 추천위를 통해 이구택 전 회장이 연임됐다.

이를 송두리째 흔든 것이 이 전 의원의 외압, 그리고 정 전 회장의 등장이었다. 더욱이 이 전 의원은 이후 포스코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며 5년간 20억원 이상의 회사 자금을 지인 등에게 몰아줬다는 의혹의 중심에 섰다. 이 전 의원에 휘둘리는 정 전 회장이 경영하던 동안,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4조1700억여원이 감소했고 부채는 20조가 넘게 증가했다. 

포스코는 한일협정 당시 한국이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받은 대체자금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태준 창업회장이 "제대로 못 지으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비장하게 독려하면서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정권 수뇌부의 친형이 흔든다는 소문이 있어도 어수룩한 수뇌부가 실적을 망치고 있다면 만철 사원회처럼 "국민의 피와 살의 결정체"라며 누군가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어야 도리가 아니었을까.

안타깝지만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지난 초여름에 포스코 사내하청노조가 "회사가 제2노조 설립 주도를 통해 노조 무력화를 시도한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노조가 약해서였을까.

이유가 어쨌든 세계적 철강그룹의 소속원들 정신세계가 80년 전 증기기관차 굴리던 회사 구성원들의 그것보다 못해서야 말이 되는가. 공기업의 자존심은 스스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