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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드골의 반면교사…이재용의 거제행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10 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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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68년은 프랑스가 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럼에도 5월29일 엘리제궁에서 예정된 정례 국무회의는 '프랑스 패션산업에 있어서 모델의 지위'라는 다소 한가한 주제를 잡고 있었지요. 그나마도 드골 당시 대통령이 예정에도 없던 '전방 시찰'을 나가는 통에 취소돼 열리지 않았습니다. 반정부 시위대가 파리 시내를 휩쓰는 상황에서 이처럼 대범한 태도를 보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레지스탕스 지도자로서 국난을 극복하고 다른 연합국에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정통성, 그리고 소련과 미국의 냉전 양극체제에 도전하는 제3세력을 주도한다는 자부심 등 드골 정권이 가진 이점은 사실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로 촉발된 이른바 '5월 위기'에도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드골파가 승리했지요.

하지만 학생 등 반대 세력의 쓴소리를 외면하며 외곬 태도로 일관하는 드골리즘에 드디어 국민들도 '피로현상'을 보입니다. 이듬해 4월 지방제도와 상원의 개혁을 묻는 안건이 국민투표에 회부됐는데, 드골파가 결국 패배한 것입니다. 1958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드골 정권이 드디어 자진사퇴 형식으로 붕괴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찾은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선 격려 차원의 방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으로 업계는 회복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에 대한 사업 재편과 다운사이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해석을 달기도 합니다. 그간 굵직한 M&A 건을 여럿 치른 이 부회장의 행보가 주목되던 터에, 결국 삼성이 또 다른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에 나설 것이라는 해설이 나오는 셈이지요.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경영진에게 최근 조선업계 상황과 수주·건조 동향 등에 대해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8년 만의 거제행, 그가 간만에 다시 찾은 삼성중공업은 실적 악화로 사업구조 재편의 대상으로 꼽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지난 2분기 실적 악화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3분기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이 점은 오너 일가에서 보기도 짜증나지만, 반대로 직원들 입장에서도 피로감과 불안감이 극대화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랜 세월 사실상 노조 무풍지대였던 삼성 계열사답지 않은 행동이 감히(?) 일어나고 이에 대한 인정 판결도 나오는 등 지역 기류가 요새 심상찮음을 내려가는 일정 준비 중에 삼성 수뇌부와 비서진 등이 모를 리 없을 겁니다. 

바로 얼마 전인 10월 말 이야기인데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앞에서 확성기로 "구조조정을 당했는데 이는 노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6월부터 또 현장 노동자들 구조조정을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명예훼손으로  회사 측으로부터 고소 당한 A씨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얻어냈답니다. 이미 일찍이 나온 원심(1심)에 이어 삼성중공업식 기업 경영과 노무 정책에 빨간불이 연이어 커지고 직원들의 반발 심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 기름을 붓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삼성 오너 일가가 현장에 나타난 것은 직접적으로 극심한 반발에 맞닥뜨릴 가능성은 없더라도 상당히 차가운 거제 바닷바람을 각오한 외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삼성은 최근 계열사별로 부진한 사업 및 연구과제, 프로젝트들을 중단시키는 등 강력한 경영 진단 및 감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터이니 앉아서 보고 듣기에만도 바쁠 상황이죠. 이 부회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중장기 사업 전략 및 적자 프로젝트 만회 대책에 대해 전해 듣지 않아도 어쩌면 될 일입니다만, 그럼에도 이런 모든 비우호적인 상황 속에서 현장에서 굳이 피부로 뭔가를 느끼겠다고 나선 점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원망을 모두 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최근 그가 단행해 온 여러 M&A에 대해선 좀 해 보다가 안 되면 다 팔아 치우자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해석이 사실 따르고 있습니다. 부친만 못 하다는 시선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이재용식 리더십의 한 축으로 현장 기류 중시를 넣는다는 점은 확실히 점수를 줄 부분으로 읽힙니다.   

참고로, 이 부회장은 드골이 스스로 불통과 옹고집으로 파멸의 갈림길을 스스로 택했던 1968년도에 태어났죠. 드골 같은 배짱은 아니더라도 위기 돌파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