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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여정] '리더의 정체'

정보철 이니야 대표 기자  2015.11.09 18: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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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살아 있는 것은 변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죽어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썩어문드러질 뿐이다.

삶은 변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더 이상 산 자가 아니다. 인간의 삶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도 사회도 국가도 역시 변화라는 물결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할수 있다.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중국을 다스리는 시진핑 주석이다. 시진핑 주석이 수 년째 벌이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은 촉각을 곤두세울만한 획기적인 것이다. 일명 '호랑이 사냥'이다. 여기서 말하는 호랑이는 부패관료다.

호랑이 사냥은 바로 전면적인 개혁의 시작을 의미한다. 개혁은 체제의 기본 틀을 바꾸는 근본적인 탈바꿈이다. 개혁이라, 인류역사상 성공한 개혁이 있을까?

수 천년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도 전국시대 진나라 재상 상앙의 개혁만 성공했을 만큼 개혁은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암살이나 망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시진핑 역시 여러 차례 암살위기를 겪었다. 앞으로도 암살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려의 공민왕과 신돈, 조선의 조광조, 정조 등 개혁을 추진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19세기말 비슷한 시기에 청나라와 조선에서 실시한 무술정변과 갑신정변 역시 100일과 3일 이라는 단기간에 끝나고 말았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다. 개혁이 왜 어려운가? 혁명은 외부의 적을 제압하면 되지만 개혁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기득권자의 저항을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기득권자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의식의 탈바꿈, 이것이 개혁의 요체이다. 의식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면 세상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의식의 전환은 물리적 억압만으로 이룰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인간의식의 속성 때문이다.

조직이나 국가의 개혁에는 절실한 게 두 가지가 있다. 구성원의 깨달음과 리더십이다. 구성원의 깨달음도 결국에는 리더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리더십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패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러더십에 주목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분명하고 확고한 신념을 갖춘 리더십을 갖춘 시진핑 주석을 보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풍운아 한비이다. 제갈량이 죽으면서 후주 유선에게 읽도록 한 책이 한비가 지은 한비자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한비의 글 '고분'과 '오두'편을 읽고 나서 절실하게 저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고분에서 '고'란 개혁가를 말하고 '분'은 기득권 세력이 정치를 멋대로 농단하는 현실에 분개하는 개혁가의 심정을 말한다. 한비자는 동문수학한 이사의 농간으로 비록 진에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사상은 진시황제의 통치원칙으로 전국시대 통일의 바탕이 되었다.

'한비자'는 국가를 통치하는 탁월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리더십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다.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법(法), 세(勢), 술(術)로 요약된다. 법은 이기적인 인간을 다스리는 방법은 법이다. 그 핵심에는 엄격함이 있다. 단호함으로 세상을 살린다는 것이다. 법의 적용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 당연한 말이라고.

그런데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라는 말이 나오는가? 한비자의 '식사'편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거울은 티 없이 맑아야 아름답고 추한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가 있는 것이다. 또 거울을 정확한 상태로 균형을 잘 잡고 있으면 모든 물건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판별할 수 있게 된다. 거울을 흔들면 투명하게 비출 수 없고 저울을 흔들면 정확해질 수 없다는 것은 법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

세는 법과 명령이 지켜지도록 강제하는 힘이다. 권세가 있으면 재능이 부족하고 현명하지 못할지라도 현명한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봤다. 세가 없다면 군주 역시 지극히 평범한 존재라는 것이다.

"키가 작은 한 그루의 나무라도 높은 산위에 세워두면 천 길이나 되는 계곡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그 나무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 있는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술은 신하를 다스리는 제신술과 백성을 다스리는 제민술을 통칭하는 말이다. 중점을 둔 것은 제신술이다. 제신술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기술이자 군주가 독점해야 되는 수단이다.

그래서 한비자에서는 군주가 신하들에게 속마음을 내보여서는 안 되는 무위술(無爲術)과 일의 과정과 성과가 미리 한 말과 일치하는 지를 따져보는 형명술(刑名術)을 강조했다.

'낮은 수준의 군주는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중간 수준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다하게 만들고 최고수준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다하게 만든다'는 말의 진원지가 바로 술이다.

한비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법가사상은 중국 최초 통일제국인 진나라의 이념적 토대이다. 중국이 차이나(CHINA)라고 불리게 된 기원이 바로 이 통일제국인 진(秦,CHIN)이다.

한비자와 중국의 통일, 그리고 오늘의 중국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을 이끌고 있는 시진핑 주석 역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한비자의 법 세 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부패와의 전쟁, 즉 개혁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우문(愚問)을 던져보자. 개혁은 왜 하는가?

정치 경제 문화 등 삶의 다각적인 면에서 이대로 살기에는 위태롭기 때문일 것이다. 위태롭기에 기본 틀을 확 바꿔버리는 것이다. 기본 틀을 바꾸면 세상을 변화할수 있다. 허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진핑 주석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 중국을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개혁을 과감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탁월한 리더십만이 조직, 국가, 사회와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변화시킨다.

리더십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변화시키는 힘이다. 세상은 리더를 원한다. 탁월한 리더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리더십이란 행동하고 평가하고 수정하고 재평가하고 다시 평가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이런 작업의 연속에서 변화는 이뤄지는 것이다.

리더에게는 두 가지 사명이 있다. 하나는 방향제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문제해결이다. 방향제시를 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리더로서의 수명은 끝이 난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리더가 될 수 있는가?

한마디로 신명(神明)이 있는 자라야 한다.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은 신(神)이며 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은 명(明)이다. 남이 보는 것만을 보고 남이 듣는 것만을 듣고, 남이 아는 것만을 아는 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자라만이 리더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읽는 대세에 휩쓸리는 자는 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 대세는 신명과 관계가 없다. 대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다. 대세를 따르는 자들은 리더가 아니라 관리자일 따름이다. 대부분이 하는 짓을 따라한다면 그 조직은 쇠약해질 것이다.

리더와 관리자를 구분 짓는 것은 중요하다. 관리자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조직은 생명력이 약하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주변 환경이 점점 복잡화, 불확실화 되는 상황에서 관리자의 대처능력은 취약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방향제시할 신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리더와 달리 보이는 것만 본다. 남들이 보는 것만 보고 남들이 아는 것만 안다.

리더와 관리자를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리더는 미래의 발전과 이익을 보지만 관리자는 당장의 손실에 연연해한다.

또 다른 기준은 목적의식이다. 리더에게는 목적이 있고 관리자에게는 바라는 것만 있다. 목적의식은 실패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준다. 실패를 직접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그때마다 수정된 행동으로 실패를 성공의 토대로 만들 수 있다.

반면 관리자는 우발상황과 실패를 대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안전과 위협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더의 사명과 관련, 리더에게는 세 가지 자질이 요구된다. 독자적인 판단과 실천 그리고 과감성이다.

이 세 가지 자질은 얽히고설켜서 그 사람만의 독특한 리더십을 형성하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대세라는 미명아래 이미 흘러간 시장의 유행을 따르든지 권위자에 의존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면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느라 시간을 끌 따름이다.

탁월한 리더는 반드시 독자적인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즉각적인 직관력이라도 좋다. 역사상 판단의 결정타는 이순신장군의 상소문이다. 대세에 따라 수군철폐령까지 내린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만이 홀로 호소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유명한 상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독자적인 판단이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조선의 씨앗을 멸종시키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도 이로써 물거품 됐다.

영민한 판단은 조직이나 국가의 생사를 가른다. 미국의 경우, 1928년 대통령 후버는 미국경제에 대해 난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펀더멘털 비즈니스가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대공황이 시작됐다. 반면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지금은 '전쟁 상황'이라면서 이 전쟁에 이름을 붙였다. 바로 '생존 경쟁'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처방이라는 '뉴딜정책'의 근간이 된 판단이다.

한 마디로 후버의 현실검증력은 형편없었다. 1930년대 영국의 네리 체임벌린 수상 역시 부족한 현실검증력을 드러낸다.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난 뒤 '우리시대의 평화'라는 구호를 들고 영국에 돌아왔다. 히틀러가 침공할 리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물론 히틀러는 그의 우둔함을 조롱했고, 2차 세계대전은 발발했다.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 검증력이 가미된 독자적인 판단이다. 한비자가 군주의 독자적인 판단과 결단을 역설한 이유다.

실천력 역시 리더의 주요한 자질이다. 리더십은 실천적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리더에게는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조직의 뛰어난 성과는 리더가 어떤 종류의 분명한 결정을 한 뒤에 오는 법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리더가 결단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게 되면 이내 조직은 흔들리고 만다.

투우 용어에 MOT(Moment Of Truth, 결정적 순간)란 말이 있다. 투우사가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을 표현한 말이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과감하게 돌진해야 할 것이다. 리더가 결정적 순간에 물러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조직의 패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과감성에 대해서는 역사의 승자들이 수없이 언급됐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실천은커녕 인지도 못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의 말을 들어보자. 처칠은 과감한 결정은 용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용기는 미덕 중의 미덕이다. 모든 미덕이 그 위에서 이뤄진다."

시대가 리더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실일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리더는 탄생하는 법이다. 제2차 대전이 있었기에 영국의 처칠, 프랑스의 드골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나왔다, 임진왜란이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이 등장했다.

탁월한 리더의 등장에는 숨어 있는 그러나 확고한 법칙이 있다. 리더가 단련되는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고의 시간이다. 위기의 순간에 불쑥 탁월한 리더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하늘이 안배한 것처럼 위기의 순간을 위해 리더를 수 없이 단련시킨다.

리더에게는 삶의 역경을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이 있다. 리더들에게 역경은 곧 성공의 토대였다.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모진 일을 감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길을 떠나려하면 비가 내릴 것이고 불이나면 바람이 불 것이다. 허나 리더는 운을 탓하지 않는다. 문제해결과정의 함수, 그것도 결정적인 함수로 보는 것이다.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리더는 사랑도 넘어서야 하고 미움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만 감정에 일그러진 판단을 넘어설 수 있다.

역사는 종종 역경이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 춘추시절 춘추오패의 두 번째 주자인 진나라 문공 중이의 스토리가 대표적다.

중이는 제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 19년 동안이나 망명길을 떠나야했다. 암살위기 때문이다. 그가 망명길에서 겪은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위나라와 제나라 국경지방을 지날 때 중이 일행이 먹을 것을 구하자, 그 지방의 농부는 그릇에 밥 대신 흙덩이를 담아줬다.

중이는 화를 내는 대신 '흙은 생명을 길러내는 신성한 것이라면서' 밥그릇에 절을 했다. 망명길에 오른 중이가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서 닥칠 때마다 분노를 터뜨렸다면 중이 일행은 역사에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춘추오패의 마지막 주자인 월왕 구천이 리더가 된 것은 오나라 왕 부차가 주는 치욕을 견뎠기 때문이다. 상분득신(嘗糞得信, 똥맛을 보고 신뢰를 얻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섶에 눕고 쓸개를 핥는다)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낸 구천 스토리는 강력하다 못해 아름답다.

결국 리더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을 때 탄생하기보다는 무언가 부족한 상황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안 되는 이유를 계산할 때 성공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

리더에도 등급이 있다. 작은 일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큰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보다 위대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리더가 있다. 이는 추종자들을 어떻게 리드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탁월한 리더가 되려면 인재를 두루 살펴야 한다. 한비자는 어떻게 말했을까.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가 현명한 사람인가 불초한 사람인가 살필 뿐이고 사랑하고 미워함을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어리석은 사람인지 슬기로운 사람인지 실증을 가지고 살필 뿐이고 남의 비방이나 칭찬에 끌리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것 같은 사람을 등용하는 인사는 시장잡배라도 할 수 있는 인사이다. 리더는 친분이나 충성을 기대하지 말고 오로지 그 인재가 재목감인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한비자는 주장한다.

다시 시진핑이다. 가끔 우문을 던져본다. 중국이 시진핑을 선택한 것인가. 시진핑이 중국을 선택한 것인가?

한겨울에도 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머지않아 허허벌판에 아름다운 꽃들이 난무하는 광경이 등장할 것이다. 찬란한 봄을 볼 줄 아는 자를 선택해야지 삭막한 겨울을 바라보는 자를 리더로서 선택하면 안 된다. 시진핑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아무래도 '찬란한'이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 '고전경영'·'한 끗 차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