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과거, 언론이 잠깐의 '서울의 봄'을 즐긴 뒤 곧바로 새로운 군사 쿠데타 세력에 굴종하던 시절에 '특별취재팀'이라는 이상한 바이라인(기사말미에 기자이름을 넣는 것, 혹은 그 이름 자체를 말함)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후 대통령이 되는)을 홍보해 주려고 각 언론사가 압력 끝에 낯 뜨거운 기사들을 내놓을 때 사용된 이 바이라인은, 이후 광주 문제를 왜곡할 때나 기타 등등 도저히 부하 직원이나 후배기자들에게 이름을 걸고 쓰라고 지시할 수 없는 아이템을 만들어야 할 때 널리 애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특별취재팀만으로는 표기하지 않고, 그 뒤에 모든 구성원을 나열하는 게 상식이다. 어떤 부정한 간판이 아니라 특별하게 공을 들여 만들어 낸 역작이라는 점, 협력의 산물 등을 자랑하고 싶을 때 이야기를 내세우는 말머리로 그렇게 변형되어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국정교과서 시비로 연일 사회가 시끄럽다. 이면에는 '역사관의 다름'을 과연 아직 미숙한 면이 있는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의 논쟁이 숨어 있다. 바꿔 말하면, 사회가 과연 이런 문제를 관리함에 있어 어디까지 국가후견주의(Nazional-Vaterlism)을 개입시킬 것인지 자제시킬 것인지의 생각차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첨예한 논쟁일 뿐더러 치열하고도 끝이 없을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는 결코 이번 교과서에 한정된 논쟁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양상이 이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국정교과서 추진에 대해, 보수적 시각으로만 아울러 극히 국가적인 시각으로만 그에 순응하려는 순한 국민들로 교육시키려는 불온한 시도라고 공격하는 시각이 있었다. 물론 그 시각 자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고자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가 절대악인 것도 아니고, 진보가 절대선인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워낙 공세가 거센 가운데, 도대체 학자적 양심이 있으면 이 집필진에 동참하지 말라는 압력이 가해지는 양상이다. 여기까지도 의사표현의 자유에 따른 일정한 부산물로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대목은, 이런 강렬한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른바 집필진 보호의 필요 때문인지 대표적 원로학자 극히 일부만 빼고는 나머지는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는 식으로 추진된다는 설이 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요새도 촌지 관행을 근절 못 시킨다고 비판받는 언론계조차도 부끄럽게 자기 이름을 숨기는 특별취재팀 간판을 더 이상 남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학자들에게 이름도 못 올릴 책을 지금 만들라고 주문한다는 뜻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국가 사업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을 위해서라도, 전체 저자를 표기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