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현 기자 2015.11.04 17:46:06
[프라임경제] "여보, 우리 집은 없어질지 몰라도 광화문은 남을 테니, 꼭 광화문 앞에서 다시 만납시다."
평범한 가정이 어느 날 남북으로 갈라진다. 부모세대에 못 이룬 '광화문 앞 다시 하나 되기' 약속을 자식대에선 이룰 수 있을까. 6·25 동란과 이산의 비극 그리고 북한 체제 하의 억압, 자유와 혈육을 찾고자 가시밭길을 걷는 인물들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그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군 포로의 자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를 얻어낸 아들이 새삼 남쪽의 한참 터울이 지는 형을 찾기를 결심하는 과정이 생생히 묘사, 사람들을 공명시키는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비단 이산 문제나 탈북자 소재의 임팩트에 기대지 않고도 일반론이자 소설의 영원한 숙제인 '내적 갈등'을 파고드는 어려운 길을 택하긴 쉽지 않기 때문.
하지만 이제는 이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통일이라는 당연한 주제에 대해서 울림을 줄 수 있기에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광복 70년, 분단 70년이에요. 조금 있으면 1세기, 이질감이 너무 크죠."
더욱이 섬세한 필치 위주로 사람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산과 탈북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 50여명을 인터뷰하고 통일부 자료실을 뒤져 생생한 북한 자료를 배경으로 깔았다.
"이런 소설·저런 소설도 있겠지만, 좋은 미사여구·구성만으로 (승부수를) 하는 건 내 성격엔 맞지 않아요. 작가는 발로 쓰는 소설이 역동적이고 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개입하지 않는 소설은 잘 쓰지 않아요."
무게감만으로도 작가에게 엄청난 압력을 주는 역사적 소재지만 정면으로 잡고 파고 들어가면, 무한한 소잿거리와 취재하고 공부할 자료들과 조언을 얻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들이 줄이어 떠오른다. 그래서 작가들 중엔 드물게 그는 소재 부족을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천 작가가 스스로 그런 힘든 길을 택해 엄청난 자료 수집을 통해 소설을 쓰는 이유다.
25세에 문학에 입문, 평생을 글 쓰는 일에 매달려 왔다. 문예지 '문학과 의식'에 단편 '황소의 반란'을 발표한 이래 1959년생인 나이도 잊고 영원한 '문청(文靑: 문학청년)'을 자처하고 있다.
단편 하나를 써도 역사적 흔적을 남기고 철저한 시대적 고증을 깔고 써 온(예를 들어 윤락녀를 그린 '성자유감'도 배경인 경동시장에 가까운 청량리가 윤락촌으로 번성했던 당시의 시공간을 꼼꼼히 담고 있다) 그는 30권 넘는 저서를 내는 동안 문예진흥원 창작기금 수상('단발령'), 월인문학상('천추태후') 등 다양한 영예도 누려 왔다.
소설 바깥 세상으로 외도를 해 본 일이 별반 없는 그가 새삼 크라우드 펀딩과 시나리오 집필이라는 새 과제들에 도전했다.
다음은 천 작가와의 일문일답.
▲ 영화 시나리오는 처음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6개월만에 어떻게 북한 현실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가능했나요.
"6개월을 꼬박 매달렸습니다. 이번에 영화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한 2편 정도 더 영화화할 만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새 꿈이 생기긴 했는데, 시나리오는 이제 더 안 써요. 그건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진 않고 구성작가에게 원작(소설)을 넘길 겁니다. (웃음)"
▲ 사실 요새 트렌디한 작품을 빼고는 집필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요, 처음 하는 장르에서도 이런 나름대로의 속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하기는 사실 2권짜리 소설 '천추태후'를 4년 6개월 동안 쓸 때에도 2년은 자료 수집하고 1년은 그걸 공부했으니까, 이번에 유독 시간이 애를 먹였다고 하긴 어렵겠죠. 자료 수집을 열심히 해 놓으면 그 다음은 (저절로) 됩니다. 또 제가 이미 '새터 아리랑' 등의 작품을 쓰면서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마음 속에 담아 왔었으니까요."
▲ 이번 시나리오는 북한의 사상 검열 시스템인 '109그루빠' 등 그간의 내부 사정은 물론, 여러 다양한 북한 생활 어휘들을 모아 생생하게 남과 북으로 갈린 이산가족 2세의 현실을 보여주려 노력했는데요, 비결은 무엇인가요. 또 그럼에도 스케일을 엄청나게 키워 '블록버스터'로 만들려는 생각은 애써 자제한 것 같은데 이유가 있는가요.
"북한 말이 상당히 어렵더라구요. 전쟁과 이산, 북한의 오늘날 현실 등을 제대로 알기 위해 50여명의 인터뷰를 했는데 북한 말이 어려워 녹음도 하고 나중에 풀면서 언어부터 이질감이 너무 커서 고생을 했어요. 소설을 쓰면서 어떤 부분은 '차라리 영어 번역을 하는 게 더 쉽겠다'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통일부 자료실 등을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보완했지요.
(천 작가는 일찍이 지문사라는 곳에서 존 어플레저 작 '인체와의 대화'를 공동번역으로 출간한 바 있다. 학부 전공과 다른 낯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고투한 끝에 오히려 다양한 해외 원전을 두루 읽을 수 있는 실력을 얻었다: 편집자 주)
그런데 저는 영화나 소설이 꼭 1000만관객 이런 식으로 집착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좋은 책과 영화에 사람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오로지 흥행 공식에 따라 잘 기획된, 스케일 키우고 제작비 어마어마하게 쓰는 식으로 작품이 나오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서 자료들을 부모세대의 이야기, 그 다음엔 남과 북에 서로 떨어져 살게된 형제, 그리고 그들이 낳은 십대 아이들로 한정해 꾹꾹 눌러 담은 거에요. 그렇게만 해도 주연, 조연에 단역까지 한 30명 이상의 배우가 나와야 할 거니까, 충분합니다."
▲ 방대한 자료는 모두 어떻게 얻는가요. 정말 1인 단독 수집인가요(웃음).
"작가는 방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발로 뛰어야 하고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도와 줍니다. 좀 된 이야기지만, 제가 열심히 역사 자료를 수집하러 다닌다는 걸 알고 고려대 총장을 지내신 홍일식 교수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선생께서 제게 '아이바 기요시'라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드라마틱한 간첩 이야기를 소개하고 소설을 써 보라고 격려해 준 적도 있습니다."
(구마모토현에서 한성에 세운 조선어학교 '낙천굴'에 파견돼 우리 말과 문화를 익혔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문' 문체만 보고 작성자=최남선이라고 지목해 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찰과 밀정 역을 오가며 한국 등에서 우리 독립운동가와 그 집안을 감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1982년 한국 언론에 존재가 처음 짧게 거론될 뿐, 2000년대 초반까지도 별달리 조명되지 못했다: 편집자 주).
▲ 외부 활동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숨은 이유가 있나요.
"아까도 말했듯 발로 뛰어야 하고 부지런히 쓰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 1995년에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교수님들과 인연을 맺은 건 감사하지만요. 2005년에 KBS2 TV에도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죄송하지만 거절을 했어요.
다만 법무부 법무연수원(검사 등 법무부 공직자들의 소양 강화를 위한 중간교육기관) 외래 교수는 제가 고전인문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고전으로 보는 공직자상' 등 3개 과목을 맡았죠.
또 제가 탈북자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할 때 북·중 국경조약 문제를 알게 되면서 조약 문제 등(법무부 관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이를 수락한 이유 중 하나에요.
북한 사람들이 지금 중국으로 탈출하면 왜 우리 공관을 통해 우리쪽으로 데려오지 못하게 중국이 방해를 할까요. 당시 국경조약을 맺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넘는 사람은 모두 돌려보내 주는 게 여기 있다고 해요.
(1986년 북한과 중국간에 체결된 출입국관리의정서에 따라 북송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대체로 중국이 국제법 일반 사례에 벗어나 강제적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이에 따르는 것으로 학계에선 이야기함: 편집자 주)
이런 내용을 이번에 '광화문'을 집필할 때 영화 시나리오엔 못 넣었지만, 소설에선 꼭 짚고자 했습니다."
▲ 이번 '광화문'은 시나리오 집필로 첫 시도인 동시에, 소설을 먼저 쓰고 시나리오로 고친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쓰고 책을 집필하는 어찌 보면 역순으로 진행돼 작가님으로서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이 작가 생활에 어떤 반환점 같은 게 될까요.
"한 사람의 독자라도 있는 한, 꼭 내가 전달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갖고 글을 써 왔습니다. 이번에 시나리오를 처음 도전하면서 작법이 소설과 좀 달라 애를 먹었지만요. 내년쯤 개봉할 영화 중에 가장 의식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어요. 또 원작 전체를 못 읽은 상황에서도 뜻이 통해 전적으로 믿고 맡겨 준 영화사에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더 널리 소설과, 영화를 알리고자 책을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독자 동참을 요청해 펴내자는 시도를 하게 됐고, 펀딩포유에서 이를 도와주게 된 거에요.
책을 그간 오래 써 왔고, 형편이 웬만해서 사실 누가 큰 돈을 준대도 쓰기 싫은 책 쓴 적 없고 큰 돈 못 벌 게 뻔한 책이라도 소신껏 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첫 소설 겸 시나리오 동시 도전이라는 이색적인 경험이라 그런지 애착이 가고, 통일 문제다 보니 사명감을 갖고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도 듭니다.
하지만 생활은 규칙적으로 하던 대로 하고…2편 정도 영화로도 만들고 싶다는 소재 있는 것, 그걸 소설로 완성해 각색 맡기고 싶단 생각 외엔 다른 큰 외도(생각)는 없고요. 담배 안 피우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지금도 밤 7시 전엔 무조건 서재에 앉습니다. 그렇게 평생 공부하면서 15년째 써 오는 가칭 '한계령' 마무리지을랍니다. 열권짜리인데, 2년쯤 후면 탈고할 것 같아요."
▲ 한계령이 그럼 작가님의 '필생의 역작'이 되겠군요. (웃음)
"에이, 그거 다 해도 아직 예순 전인데요. 쓸 건 무지무지 많고요. 언젠가 제 글은 많이 팔리진 않아도, 딱 한사람의 독자만 봐도 그 사람은 두번을 읽게 만드는 글이라는 과찬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책을 정말 쓰는 사람이 되는 날까지, 그냥 계속 이대로 열심히 걷겠습니다."
(정리: 임혜현 기자)
주업은 연기자, 가끔은 임시직 기자. 진엔터테인먼트 소속 연기자 서주현양이 프라임경제신문으로 파견근무 인사이동(人事異動)을 받아 사람과 사회 취재에 나섭니다. 인(認)은 알다는 글자지만, 잉으로 읽으면 작다는 뜻도 됩니다. 얼핏 보기엔 큰 기삿감이 아닌 듯 보여도(적을 잉+일 사) 의외로 큰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많으니, 추가로 호미질을 부지런히 하듯 이야깃거리를 캐러(더할 이+보습 동) 다니라는 두 회사 간부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길에 나선 기록을 잉사이동(認事貤錬)으로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