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폴란드, 하면 우리는 보통 약소국의 설움을 먼저 떠올린다. 라듐 발견으로 유명한 퀴리 부인과 폴란드 학생들이 몰래 책을 숨겨놓고 폴란드 역사를 공부하다 갑자기 학교 순시를 나온 러시아 장학관의 질문을 받고 굴욕적인 답을 한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걸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가 늘 약소국으로 러시아 등 인접국에 괴롭힘을 당해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1500년대에는 리투아니아 등을 사실상 합병하고 동부 유럽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폴란드의 국운이 기운 것은 귀족들이 선거를 통해 왕을 선출하면서 각종 병폐가 속출해, 국가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고 낭비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폴란드 의회는 Sejm과 Senat로 나누어졌다는데, Senat는 왕과 왕족 및 성직자, 대귀족으로 이뤄졌다. 문제는 바로 Sejm이라고들 분석한다. 대귀족을 제외한 귀족들의 의사결정기관이 바로 이 Sejm이었는데, 이 시기에 유명한 '만장일치제'를 관철시킨 귀족공화정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선출왕(선거로 왕을 뽑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의회가 강한 것, 그리고 완전한 현대식 국민 민주정치가 아닌 귀족 민주주의를 하는 게 무조건 악은 아니다. 지중해를 주름잡으며 오스만 터키와 대등하게 맞섰던 조그만 도시국가 베네치아도 소수의 귀족들이 논의해 국가를 이끄는 귀족 민주정 시스템이었고, 심지어 의회가 강한 영국은 왕의 목을 자른 적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사형당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그런데 왜 유독 폴란드 귀족들의 의회만 문제 사례로 회자될까.
당시 폴란드 귀족들은 의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노력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의회운영원칙까지 내세워, 자신들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때 반드시 귀족 자신들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그래 놓고 나선 치열한 이권 챙기기와 자기들끼리의 이합집산에만 골몰해 나라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으로만 치달았다는 것이다.
이러니 폴란드는 강력한 민족국가로 발전하는 기회를 잃었고, 국가가 정책을 결정하는 회로가 마비되는 결과 끝에 결국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오늘날 제주도의회가 도지사와 긴장 관계를 조성하고 여러 분란을 빚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급기야 조례에 보훈수당 액수를 특정하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내용을 못박아 대법원 제소 문제를 도에서 심각히 검토 중이라는 후문이다. 이는 단순히 보훈대상자에게 예우 차원에서 얼마를 주는가 아예 조례로 뜻을 확고히 명시해 놓으면 좋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곳이나 지방의회는 집행기관을 견제하려 노력하게 마련이고, 또 바로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자 그들의 업무다. 그러나 규칙으로 제정해 탄력적으로 융통성있게 집행해도 되거나 또 그럴 필요가 높은 일까지 아예 세세히 조례로 묶고 견제하는 것은 대의에 어긋나고 지방자치제도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심지어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 위로금 지급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반드시 액수를 특정해 놓았어야 할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요로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존에는 여러 경로에서 모두 사실상 난색을 표했지만 새롭게 들어선 이번 민선 집행기관에서는 이 문제에 적극적이었고 공감대 형성으로 모처럼만에 도의회의 조례 추진에 협력하는 기류였다고 한다.
다만 세부 집행 과정에서 일부 재량을 갖고 싶었던 것을 도의회가 용납을 못 했던 것이라 하니, 이는 그간 아직 젊고 가난한 집 출신으로 고시에 붙어 입신한 원 지사에 대해 무시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던 제주도 지역정치인들이 괸당 문화를 과시한 데 불과하다고 못 볼 바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오히려 도에서 상황을 봐서 더 좋은 방법, 많은 액수를 줄 방법을 찾을 길목을 조례에 액수를 특정함으로써 막고 나선 것으로까지 요약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괸당 문화라면, 중앙에서 제주도의 특색과 재량을 인정해서 특별자치도 시스템을 실험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지금 본토에선 제주인들이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틀에 얽매이지 말고 큰 일을 해 창조경제의 새 모델을 만들길 바라는 것이지, 시대적 가치와 국가 대의에 역행하는 조그만 섬나라의 오만방자함을 보자고 특별자치도를 허용하는 건 아니다. 제주도의회는 그저 헌법학을 공부하는 법대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리딩 케이스 판결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일하는가. 중세 폴란드 의회가 아니라 영국이나 베네치아 의회를 배우기에도 임기는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