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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는 5년 계약직" 면세점 종사자들의 푸념

전지현 기자 기자  2015.11.02 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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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는 5년짜리 계약직입니다' 시내 면세점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이죠. 5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계약직 맞지 않습니까."

한국 면세 역사 53년. 1962년 김포공항을 시작으로 국내 처음 들어선 면세점은 1979년 관세법 개정으로 보세판매장 제도가 개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내면세점 제도가 도입됐다.

같은 해 12월, 동화와 롯데가 함께 허가를 받아 동화면세점과 롯데면세점으로 문을 열었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으로 도약 발판을 마련하며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현재 한국 면세시장 규모는 8조3000억원. 세계면세시장 10%를 차지한다. 짧은 역사에 비해 가히 칭찬할만한 수치다.

하지만 롯데와 신라의 독과점 문제가 거론되며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했던 기존 면세점 특허권을 지난해부터 5년마다 신규 특허를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경했고 주변국들의 면세시장 활성화 움직임에 우리 정부 역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황금알을 낳는 사업' 속 작은 땅덩이 속 기업들의 과열 경쟁구도를 부추겼다.

문제는 이 5년이라는 제한적 시간이다.
 
면세사업은 물류 센터 구축 및 인테리어, 시설 등 막대한 초기 투자금과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유치 노하우 및 전략이 필요한 산업이다. 더군다나 재고 물량의 원활한 선순환 구조 및 판매 관리비 비중 등도 신중하게 고려하지 못하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면세점은 관광경기에 민감하며 각 브랜드들이 글로벌 표준 매뉴얼을 갖고 상품을 관리하기 '판매자의 권한이 막중한', '을의 산업'으로 불리는 곳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이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수밖에 없다. 특히 5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거대한 투자금을 얼마나 회수 할 수 있는가와 입찰을 다시 따낼 수 없게 됐을 때 기존 사업자에 소속된 고용인들의 고용 불안에 대한 문제 역시 시내 면세점 핵심 사항으로 떠오른다.

많게는 수백에 이르는 개당 면세사업자들의 직원들이 고용 불안 문제에 매년 5년마다 묶어둔다는 것은 모든 면세업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여기에 신규사업자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비용과 운영 노하우를 익히다 보면 특허권 입찰 시기에 다시 닥치게 되고 기존 사업자 역시 5년마다 반복되는 입찰 전쟁으로 장기적인 사업 투자 계약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입찰에는 연간 5000억원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로 기존 면세 및 유통에 관한 경험이 전무한 기업들까지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과거를 돌아보자. 시내면세점 허가 초기, 우리 정부는 각종 국제 행사를 유치해야하는 국내 사정에 따라 총 30개가 넘는 기업에 특허를 줬지만 외환위기 등 경제상황 악화로 많은 지역 면세점 폐업이 속출했고 한진, AK 같은 대기업들도 특허를 반납했다.

이런 환경 속, 유통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국내 면세점 점수는 다행히 나쁘지 않다.

현재 전 세계 면세 사업자 1위는 매출 규모 6조2046억원의 스위스 기업 Dufry고, 2위가 5조5903억원의 미국 기업 DFS, 뒤를 이어 롯데(4조2805억원), 프랑스 LS Travel Rerail(3조9658억원), 이탈리아 World Duty Free Group(3조780억원) 등이 3,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과점 문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 상황과 사스와 메르스 등 외부 환경 요인으로 국내 관광 경기가 부진을 겪던 시대를 거쳐 지금의 위치, 세계 속 면세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 대기업 면세점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국들을 돌아보면, 중국은 지난해 9월 하이난에 세계 최대 면세점을 오픈했다. 일본은 2020년까지 외국인 방문객의 수를 2000만명으로 늘릴 것을 목표로 지방 면세점을 2만개로 확대할 것을 밝혔고 대만 정부도 섬 전체를 면세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국내 신규 사업자들의 진출을 열고 공정한 거래 속 다양한 기업들이 경쟁하게 만들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하나 면세사업은 내수시장이 아닌 글로벌 경쟁으로 봐야한다는 시선의 차이에 있다.

지난 2013년에 출간된 '면세점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내 면세점이 발달해 있다"며 "한국 시내 면세점은 고급스러운 매장, 다양한 상품 구색, 언어를 포함한 최고의 서비스, 편리한 입지조건과 다양한 행사를 통한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끼리 과도한 수혈 전쟁을 치루는 사이 Dufry, DFS, LS Travel Rerail 등 해외 기업들이 공격적인 경쟁력으로 지금까지의 노력을 뒤집을 수 있을 가능성을 열고 봐야한다.

면세점, '황금 알을 낳는 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5년 단위 입찰로 '과열경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심사를 통해 문제가 있을 경우 연장 파기 등을 통한 방안으로 대체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