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5.11.02 17:20:33
[프라임경제]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 간 힘겨루기 구도가 결국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형적 조례 가결로 이어져 논란을 빚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제주도 보훈예우수당 지원 조례'를 최근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 이는 제주도가 도의회를 통과한 조례안을 공포하지 않은 데 따라 직접 처리 규정을 사용한 것이다. 이미 도의회와 도청간에는 이 안건의 재의결 요구 등 냉랑한 기류가 형성된 바 있었다.
이 조례는 당초 호국보훈의 달에 위로금 10만원, 사망시 위로금 15만원으로 기획된 바 있으나 이 같은 입법안이 도와 도의회간 논의 과정에서 마찰을 낳았다. 결국 재의결 요구와 의장 직권 반포 상황에서 월 3만원, 사망시 마지막 예우로 15만원으로 증액됐다.
이처럼 신경전 끝에 오히려 원안보다 증액된 것을 둘러싸고, 기본적으로 도에서는 도의회의 횡포로 보는 입장이다. 사실 돈이 없어서 안건 처리 여부나 집행의 규모면에서 집행청과 도의회간에 의견 차이를 보이다 갈등이 빚어진 사례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속내는 전혀 다르다는 게 상황을 아는 이들의 전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요로의 한 공직자는 원래 도에서도 취지 자체에는 공감했고 안건 논의 상황에 도의회에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2일 이 공직자는 "다만 도에서는 조례에 액수를 정할 게 아니라 세부 액수 문제는 규칙으로 넣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재의결 요청과 (통과 이후에) 대법원 제소 검토까지 연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어느 지방관청이든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를 가급적 피하고 싶어하고, 행정 편의성 확보를 위해 조례에 가급적 많은 제약을 넣지 않기를 바라는 게 통례이기는 하다.
◆9차 개정 헌법 입법자 의도 생각해 보면 도 재량 침해 심각
이번 충돌은 원희룡 도지사와 도의회 간 힘겨루기 해프닝에 불과한 것일까. 상황은 이보다 좀 더 심각하고 이에 따라 원 지사 측에서도 더 이상 물러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헌법은 1987년 개정 당시 지방자치와 관련해 많은 규정을 두지 않았다. 130개 조항 중에 지방자치 관련 직접 조항은 두 개뿐이라 너무 무관심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게 족쇄를 채운 외에 사실상 행정권이나 재정권 조항은 없다시피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은, 결국 입법자가 오랜만에 부활하는 지방자치제도에 필수불가결한 가이드라인만 그어주고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적 사항으로 많은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이 마련돼 있고, 제주의 경우엔 특히나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많은 구체적 수단을 부여받고 있다.
제주자치특별법 제5조 2항에서는 제주도는 이 법에 대해 조례로 정하거나 정할 수 있도록 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 법의 취지에 맞게 조례를 만들고 고치거나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다른 규정을 봐도(제76조) 제주자치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이전에 하던 재정수준 이상을 지원하도록 국가의 보장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 등 내용을 두고 있다.
제주도의 재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나 자치의 실질성 침해 가능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방어하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러한 자치의 실질성을 위협하는 적에는 외부 세력 외에도 도의회나 도 자신 같은 지방자치단체도 포함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그런데 다른 시나 도에 비해 더 많은 자율을 통해 창의적 행정과 창조 경제를 구상하고 집행해야 할 집행부(도)를 대의기관(도의회)가 제약하는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 같은 특정액수까지 못박아 주는 구속적 조례를 타시도 자치의회들은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견주어 보면 상당히 문제라는 것이다.
◆권한 쟁의 리딩 케이스 낳을 법리분쟁…'괸당 정치' 전국적 조명 낯뜨거워
이 같은 사안이 대법원 제소로 실제로 이어질 경우 제주도의 정치 풍토에 대한 전국적 비판 여론 형성 가능성은 그래서 현실적 시나리오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 정치는 괸당 문화라는 독특한 폐쇄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미 전부터 나온 바 있다. 여와 야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누구의 줄인가 족벌과 집단 논리에 따라 표심이 움직이는 특수한 곳이라는 얘기다. 이런 폐쇄성과 특수성에 대해 과거엔 '4·3 항쟁'의 부작용 즉,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과 내재적 집결 정서라며 애써 이해해 주려는 기류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으로 4·3의 사건성에 대해 재평가가 이어지고, 제주의 발전을 위해 특별자치도 형식으로 유례없는 특례성 실험까지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토양적 한계는 이제 정치적 후진성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원 지사의 경우 서울대 수석 입학, 사시 수석 합격 후 검사 생활을 한 뒤 중앙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에 더욱 괸당적 시각에서 길들이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평도 나온다. 즉 그가 고교 이후 출향 기간(공백 기간)이 너무 길었고 집안도 한미해(감귤 농사를 지었고 부모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역 정가를 주름잡는 인사들로서는 도백으로 인정해 주기 싫은 변방적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상황 해설은 도지사 발언 와중에 마이크를 꺼 버리는 등 대단히 비우호적이고 기초 예우조차 해 주지 않는 도의회 측 태도로 이미 전혀 설득력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결국 도에서 일정 부분 재량을 요구했고 단순히 돈이 없어서 못 해 주겠다거나 하기 싫다는 것도 아닌 바에야 액수 특정 조례 통과라는 수단을 도의회가 강행한 것은 원 지사와 도에게 귤욕과 굴종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