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미 기자 기자 2015.10.25 10:37:11
[프라임경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7개월 만에 만난 '청와대 5자 회동'이 합의문 한 장 없는 '빈손 회동'으로 끝나면서 교과서 국정화로 촉발된 여야 대치 정국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당초 청와대 회동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부른 꽉 막힌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의견 차만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108분 동안 마주앉았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내년도 예산안, 민생·경제법안 처리 등 국정 현안 전반에 대해 논의했으나 쟁점에 대한 이견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정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 대표는 거세게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관련 법안과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에 대해서도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으나, 문 대표는 문제점을 제기하며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으나 별 다른 성과 없이 회동이 마무리되면서 민생·경제 관련 법안과 올해 예산 국회 처리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같은 결론을 이미 예견됐었다. 앞서 여야 대표는 국정 교과서를 두고 상대방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문 대표는 지난 18일 박 대통령과 김 대표를 겨냥해 "두 분의 선대가 친일·독재에 책임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고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에 김 대표는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의 도를 벗어난 무례"라면서 "학부모를 호도하는 문 대표의 거짓 주장 속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마음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더욱이 야권에선 여권의 국정 교과서 저지를 위해 연대 움직임을 보였다. 문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회동을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1000만 서명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함께 전개키로 합의했다.
국정 교과서를 두고 벌이는 여야의 공방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주말인 24일에도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정부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 단위 여론전과 서명운동을 이어갔다.
김정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정권 임기까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국정교과서 강행 시도를 즉각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사학계 전문가 교수집단이 거의 통째로 집필을 거부하고 있어 부실이 불가피하고, 직접 가르칠 선생님들마저 이의를 제기하며 출제도 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교육현장의 엄청난 혼란이 불 보듯해 아이들만 피해볼 것이 뻔한데 국정 교과서를 강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핑계 삼아 민생을 외면한 채 정부·여당을 향한 정치 공세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청와대 회동 이후 야권은 교과서 공세의 고삐만 당기고 있다"면서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민생이 아닌 정쟁으로 점철된다면 그 역사적 책임은 너무도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이 발간되지도 않은 역사 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예단하는 것은 좌파 진영의 논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여권과 야권의 대치 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도 예산안 심의도 파행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다음 달 30일까지 감액·증액 심의를 거쳐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야 한다.
다만, 지난해부터 '국회 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에 따라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