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0.21 09:26:0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라는 드라마를 한 케이블방송사에서 수입해 방영 중이다.

이 드라마의 9화에서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 때문에 고민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연히 만난 남자친구의 직장 동료에게서 그에 대한 걱정-장래가 극히 불투명한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다-과 함께, 이번에 대학원에 가면 경력개발이나 회사 내 입지 굳히기에도 참 좋은 기회일텐데 안타깝다는 소리를 듣는다.

결혼을 더 이상 늦출 수도 없고 학자금도 비싸 부담도 되고 하니 지금 결혼부터 하자는 프러포즈를 받고 선선히 받아들였던 노처녀(?) 주인공으로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뒷이야기를 들은 셈이다. 결국 다른 남자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거짓말로 이별을 통고하고 집에 들어와 식탁에 엎드려 운다.

일본 NTV에서 편성, 2014년 가을 자국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고 하니 오래된 드라마는 아니다.

지난해 즈음부터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경제에 활력이 돈다며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 정책에 대해선 여러 비판이 높았고, 점차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긴 하나 어쨌든 지긋지긋한 '잃어버린 20년'의 그림자를 드디어 떨쳐내는 모양이라는 안도감 역시 높은 모양이다. 그런 일본이지만 여전히 프리터(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반백수) 문제나 어려운 취업 사정 등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고 이 드라마는 그 지점을 다루고 있다.

1997년에, 한국 검찰은 일부 시인의 경력 등을 문제삼아 교과서에서 이들의 글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교육 당국에 제시했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진보 언론들이 그 당시 논리 개발과 문제 여부 등을 감별한 주인공이라고 의혹의 대상으로 거론하는 모 공안검사 출신 인사는 지금도 다른 분야의 공직에서 일하고 있다.

이 교과서 논란 속에 거론된 이 중 하나가 신경림 시인이다. 그는 '농무' 등으로 민중문학시대의 학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인데, 사상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됐는지 '가난한 사랑 노래'의 삭제 문제가 도마에 올랐고 오늘날 이 논란이 다시 재부상하고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로 끝나는 이 시가 자본주의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고 또 그 반사적 효과로 공산사회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문외한으로선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부정까지는 아닐 것으로 기자는 믿는다. 

적어도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 일본에서도 여태껏 가난해서 결혼도 못 하는 갑남을녀의 이야기를 다룰진대, 이런 싯귀까지 나무라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작 자체를 찾아서 교과서에서 빼든 앞으로 못 실리게 감시를 하면 족할 일이다.

이 신경림 논란을 요새 언론에서 다시 불러내 되새기는 이유는 바로 '국사 국정 교과서 추진 논란' 때문이다. 단일한 교과서로 어느 정도의 공통된 소양과 공감대를 갖추고 고등학교 문을 나서게 하면 좋다는 식의 전제에 기본적으로는 찬성한다. 그 위에 비판적 사고의 집을 짓고 다양한 정보의 홍수를 받아들여 일구는 것은 대학 때 교양학부에서 하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로 대변되는 국가 권력이 가난하면 결혼도 못 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고 절규하는 푸념에까지 교과서에 실릴 자격이 없다고 감별한 역사적 전통이 여전히 찬란하다고 여겨지는 나라, 청와대의 힘이 점차 막강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일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런 전제는 아직 고담준론에 불과하다는 우려 또한 갖고 있다.

2013년 2월, 가난한 사랑 노래 25주년을 기념한다는 취지로 어느 유력지 기자가 인터뷰를 청했다. 그런 핑계로 중학생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작품의 시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며 해당 기자는 많이 기뻤을 터이다. 그런 기자에게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언젠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면, 이 시대엔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른 점 같다. 그때의 가난은 좀 낭만적인 데가 있었고 유동적이었다면 지금은 가난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 더 절망적이라고나 할까"라고 무거운 발언으로 화답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돈이 아니고도 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복지가 더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초보단계인 셈"이라며 이런 문제를 앞으로 조명해 보라는 숙제도 은근히 부여했다. 아마 사회부가 나름대로 강한 언론사여서 숙제를 부탁했을 텐데, 그런 말을 하는 시인은 얼마나 속상했으랴.

혹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가난 문제는 가려 버리자는 식의 논리가 일부 부자의 논리만이 아니라 명색 무역 규모 10위권 안팎의 경제대국을 이끈다는 수뇌부 일반의 논리가 아닌지, 그리고 그런 편리한 생각이 이번 국사 교과서 단일화 논의에도 작용하는지 그러한 기우부터 해소해야 교과서 논란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비정규직들은 저 드라마 제목 같은 "(아파서)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같은 말을 감히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 신경림 교과서 논란과 이번 국사 교과서 문제를 소개하는 뉴스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