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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근혜 결혼장려책, 대사헌에게 사례 배워야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0.19 10: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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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 등을 지낸 윤휴는 남인으로, 서인의 거물 송시열과 대립각을 세우던 강경한 인물이다.

1675년 그가 대사헌에 발탁되자 한 일이 장례를 검소하게 하고, 마을마다 조사해 과년한 미혼 남녀의 혼인을 장려한 것이었다. 대사헌은 사헌부의 으뜸 벼슬로, 사헌부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잘못한 관리의 잘못을 탄핵하고 바로잡는 것. 따라서 사헌부를 오늘날의 검찰이나 감사원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사헌부에 부임하자마자 그런 일을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사헌부가 풍속을 규찰하고 현안을 논평하는 일을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윤휴가 이런 정책 추진을 새 자리에 가서 비로소 집행한 데에는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윤휴는 흉년이 계속되면서 혼인 시기를 놓치는 백성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에 부유층에서는 사람이 굶어죽든 생활고에 허덕이든 호화장례를 치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조선이 효와 충의 나라였던 만큼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일에 정책적 규제를 하려면 보통 복잡하고 후폭풍이 센 게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미 그는 예송논쟁을 지켜보면서, 서인들이 사실상 조선 왕가를 절대존엄의 대상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사대부 중 대표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강력한 서인 집단과 부딪힐 만한 소지가 큰 일을 벌이려면, 어지간한 힘과 강단이 받쳐주는 입지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윤휴는 알고 때를 기다렸던 셈이다.

'숙종실록'은 집필과 편찬시 서인 당색의 논리가 가미됐는지 이때 일을 "여자 20세, 남자 25세가 지나면 9월 이전에 혼인하게 해서 혼사가 가득한 탓에 여리(마을)마다 소란스러웠다"고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어쨌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고 실제로 집행 효과가 나타났음을 읽어낼 수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지나친 사치를 금지하고 어려운 백성의 결혼을 강하게 주선해 짝을 지워주는 식의 정책을 하려면 적어도 검찰총장 정도의 힘이 있는 인물이어야 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발전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으나,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떨어져 여의치 않다. 특히 아이를 낳지 않아 장차 인구 규모가 산업 활성화에 장애가 될 여지가 높은 것으로 경고음이 들어오고 있다.

급기야 당국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도록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에 메스를 들 모양이다. 지금까지 나온 윤곽을 보면 전세를 얻거나 임대주택을 배정받고 육아 휴직을 쓰는 문제에서 지원책이 여럿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당연하게도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빚 내서 전세 얻으라는 이른바 집값 부양 정책의 우회책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이 입장에 선이들은 정작 일자리 안정이 안 되는데, 불안감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포기하는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한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의 해결, 새로운 고급 일자리 창출 등 새 기조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을 해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자기 손으로 학비를 보태 대학 다닐 정도까지 기르려면 20년 이상이 걸린다. 

박근혜 정부의 선의를 무시하고 왜곡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벌써 별무효과일 것이라는 안티 의견이 나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결국 이 정책을 펼치는 데 당국과 여당이 얼마나 크고 확고한 구상을 갖고 전력을 기울이는지를 보여주면서 점차 신뢰를 얻는 길 밖에 없다.

정책을 추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자리 문제까지 모두 다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인물이 마스트에 서도록 지명하는 행위도 필요하다. 힘 없는 부처에서 자꾸 앞장서 뭔가 말을 하는 것보다, 확실히 재정 문제를 쥔 부처에서 주무를 맡아주거나 거물급 여당 인사를 특별고문 등으로 세우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대사헌이라고 체면을 몰라서 '고작' 백성들 결혼 문제에 왈가왈부를 했겠는가? 모든 걸 뜯어 고칠 정도의 칼을 쥔 사람이 나서야 이런 '민생고'가 조금이나마 해결된다는 걸 윤휴는 이미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뭔가 기다려 보면 정말 일이 풀리려나 보다'라고 믿을 새 윤휴를 찾아 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