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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쿠빌라이가 될 것인가, 연남생으로 전락할 것인가

임혜현 기자 기자  2015.10.11 10: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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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기업집단들이 심상찮다. 삼성그룹의 주력인 전자는 최근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 개선 결과를 내놓았으나 환율 효과에 힘입은 것으로 휴대폰 영역 우려는 아직 떨쳐내지 못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노조의 지난 추석 직전 부분 파업과 새 노조 집행부 선출 등 여파에서 당분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리스크는 단연 '오너 일가 골육상쟁'일 것이다. 효성그룹이 둘째 아들의 불만으로 시끄러웠으며 롯데그룹이 갈등 중이다. 두산 역시 멀지 않은 과거에 '형제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지저분한 지경을 치른 바 있으니 승계 갈등은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침체가 장기화된 가운데 이런 문제를 겪는 데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콩깍지로 불을 때니 콩이 솥 안에서 들볶인다. 한 몸에서 태어나 이게 무슨 지경인가' 식으로 일명 오너 일가들에게 염결성을 요구하거나, 적어도 여염집 수준의 형제간 우애나 부자간 정을 요구하긴 어렵다고 생각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산을 좌우할 권좌를 다투는 대기업집단의 이른바 경영권 승계가 치열한 갈등과 제로섬 게임 논리를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연히 그에 관여된 이들에게 일반인 수준의 도덕성을 요청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

물론 정통성 있는 승계, 주주들의 찬성과 지지를 얻는 공감대에 기반한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청은 늘상 기업에 일정한 족쇄이자 압박 카드로 작용해야 한다. 다만 그런 한편 이는 막상 승계 전쟁이 벌어질 경우, 현실적으로 지켜지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은 고담준론이기도 하다는 점도 우리는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어차피 남다른 특수한 판돈을 놓고 벌이는 전쟁이고 늘상 이런 와중에서 나고 자란 이들인 만큼, 오너 일가들에게 일반인 수준의 행동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냉소적 시각은 그래서 존재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오늘날 일부 그룹의 내적 갈등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다만 골육상쟁을 벌이든 어떻든 간에, 그래도 수많은 주주와 종업원이 연관된 대선단의 키를 누가 잡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요구 조건이 있다는 극히 작지만 분명한 마지노선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 갈등이 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을 해치고 미래 가치를 사장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나라의 쿠빌라이도 동생과의 분쟁 끝에 권력을 잡았다. 사법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업적을 그가 쌓았고, 선조 칭기스칸의 창업 결과를 수성하는 백년대계 탄탄대로가 닦인 것이 바로 그의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연개소문의 사후 일어난 그의 아들들간 내분 역시 우리는 기억한다. 장남 연남생은 권력 타툼에서 밀리자 결국 외세에 투항했고, 고구려 멸망의 원흉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당부할 일이 적지 않다. 오늘날 갈등의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러 대기업 집단의 관계자들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적잖이 우수한 교육과 지원 속에 성장한 이들이며, 경영 수업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전체적인 수준은 낮지 않지만 대신 그들의 선조인 창업주처럼 걸출한 정도는 아니다. 서로간에 아주 큰 비교 우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정통성일 것이다. 적어도 주주들의 대부분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온당한 이유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다만 그것이 아니라면 차선책은 비젼과 최소한의 기업인으로서의 양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대단히 치열하고 졸렬한 갈등을 벌인다 하더라도, 또 그 경영자로서의 기초적 능력은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라 해도 이를 덮을 뭔가가 있는가의 문제다. 어떤 발전 구상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대권을 잡아야 한다는 정도의 개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감생심 쿠빌라이 수준까지는 못 되어도 이런 게 없이 그저 골육상쟁만 한다면 그건 고구려의 명줄을 자른 연씨 형제 갈등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점에서 중요한 요청이 있다. 바로 '사람'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혈전을 치르다 보면 A파, B계열에 C라인 등 가신 집단으로 서로 나뉘고 묶이게 마련이고 가담을 안 하는 많은 이들도 알게 모르게 이런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승자 측의 숙청 바람에 적잖은 인재들이 휩쓸려 사라지게 된다는 점도 여러 번 목도된 바 있는 상식이다.

지금은 회장 개인의 능력 하나로 좌우되는 시대가 아니고 또 그런 능력이 대단히 있는 이들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다. 그러면 결국 인재를 얼마나 보유하고 또 이를 부릴 능력이 되는가의 용인술이 관건일 것이다.

다만 거버넌스 능력이나 비젼이 좀 있다면 그가 되는 것이 주주의 행운이고 종업원들의 홍복이다(이런 결과만 보장된다면, 집안 갈등이 무슨 문제랴. 어찌 보면 수십년에 한번 꼴로, 훌륭한 수장 발탁을 해 보자고 주주들이 오너 일가의 '개싸움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싸우고 갈등하더라도, 자신들의 사업 아이템을 통째로 경쟁자에게 갖다 바치거나 미래 성장 동력을 갉아먹거나 경영권 갈등 국면에서 상대 진영에 가까웠다는 이유로 훌륭한 임직원들을 쳐 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 수습과 재도약은 기업에 몸담은 인재들이 할 것이고 주주들이 성원할 것이다. 대칸과 매국노의 결과 차이는 작은 선택 차이에서 비롯한다. 싸움 와중에도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바로 오너 일가된 이의 도리다. 그런 도리가 싸움 와중엔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여겨지면, 아예 칼을 뽑지도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