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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금융 특수성 무시한 법원, 사기성 기업운영에 은행만 눈물

[비겁한 소극사법주의③] 경영진·관료 책임엔 솜방망이, '전체 그림 조망' 책무 포기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9.28 22: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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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무역 관련 대형 사고가 여러 은행을 곤란하게 한 바 있다. 이른바 '모뉴엘' 사기로 불리는 이 사건은 유령 실적 부풀리기로 여러 대출을 당겨 쓴 게 기본 얼개다. 이 문제를 놓고 무역보험공사와 각 은행간 소송 향배를 전망하는 데 일부 언론에서는  SLS조선 사건의 처리 결과를 참고해 은행권이 결국 손실을 도맡아야 할 것이라고 유추한다.

냉정히 얘기하자면 맞는 판례 분석이지만, 모뉴엘 사건과 SLS조선 대출 문제를 동렬선상에 놓는 데 거북함을 느끼는 의견도 대두된다. 특수 영역에 대한 심사 부실이 결과론적으로 은행 책임으로 귀결된 경우와, 특정 은행에서는 쉽게 발견해 낼 정도로 부실한 서류를 그대로 무사통과시킨 심사 부실의 경우를 같이 논의하는 분위기에서 선박 관련 대출이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다는 막막함으로 연결된다는 것.  

법원이 '소극사법주의'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하나 둘은 아니지만, 일명 '선박금융'의 발전 가능성을 크게 후퇴시키는 데 사법부가 한몫을 했다는 지적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선박은 기획에서 건조, 인수까지 긴 기간이 소요되고 큰 돈이 움직여야 하는 특수 영역이다. 미리 전체적으로 돈을 마련해 건네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이 해운업이나 조선업 발전을 도모하려면 선박금융이 함께 보조를 맞춰줘야 할 필요가 높다. 아니면 선진국 금융계의 손을 빌려야 한다.

선박금융은 운영에 위험성이 있으나 수익도 그 대신 보장되므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룩한 국가의 금융권에서 선박금융을 차세대 먹거리로 여기고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고 노력한다.

판결을 내릴 때 법문언의 해석에만 그치치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형성 또는 법창조를 강조하는 태도를 '적극사법주의'라고 하고 그 반대의 자세를 소극사법주의라 한다면 SLS조선의 경우는 어느 쪽일까?

일각에서는 은행의 심사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무역보험공사에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공공재의 부실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적극사법주의의 실증적 사례로 이 사안을 꼽을 여지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사안과 연결된 해당 기업과 주변 사회의 움직임 등 전체적 그림을 함께 겹쳐 보면 전체적인 문제점을 간과한 채 서류의 심사 귀책은 1차적으로 은행계에 지운다는 기본적인 민사 논리를 유일한 잣대 삼아 기계적으로 가져다 댄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세계 해운업계와 조선산업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던 2011년,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으로 선박 수출이 중단되며 금융권은 약 1조원대 손실 규모의 대형 악재와 조우하게 된다. 이른바 SLS조선(이후에 신아에스비로 개칭) 사건이다.  

무역보험공사는 채권은행에 일부는 지급했지만 선수금의 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일부 사고액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각 은행들은 곧바로 소송을 진행했으나, 은행계가 전체적으로 처참한 판정패를 했다.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은행의 항변 논리가 사법부에서 거부됐기 때문. 은행들은 선박금융에 나서는 경우 RG라는 카드를 활용한다. 이를 방패삼아 일을 진행하고 문제시 보험금이라는 안전판이 가동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은행측 기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방어에 나선 무역보험공사측 핵심 논리는 선박금융의 투입과 각 건조 진행 단계별 체크가 제대로 병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제대로 감시를 하지 않고 돈을 퍼 준 것이라는 논리다. 반면 은행들은 선박금융이 특수한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박금융이 투입된다고 해서 특정 선박의 특정 공정에 바로 직접적으로 또 전적으로 사용된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 같은 주장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았음은 판결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이 제기한 약 1400억원 규모의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4년 11월 은행측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법부의 논리는 '선박금융과 사고'라는 원론적 뼈대로는 충실한 것인지 몰라도 SLS 주변의 문제들을 모두 반영한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형사상 문제들은 온정적 해결?…결국 은행의 상사법 문제만 '강경' 

문제를 이국철 전 SLS그룹 회장 주변 전체로 넓혀 보자. 이 전 회장은 SLS조선과 SLS중공업의 2007~2008년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작성 과정에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을 부풀려 허위공시를 한 혐의로 2009년 12월 불구속 기소됐고, 이후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또 싱가포르 소재 해운회사로부터 자금을 투자받는 과정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소됐다.

문제는 이 허위공시 사안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이 전 회장의 행보에는 사법부 내부에서도 쉽게 결론을 매듭짓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는 즉 이 전 회장이 문제를 일부러 난맥상으로 만들어 놨다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사안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2심에 내려간 뒤, 다시 대법원으로 상고되는 등 복잡한 길을 걸었다. 결국 대법원이 2015년에 이르러서야 "이 전 회장이 2007~2008년 손익계산서에 매출을 과다 계상해 허위공시한 행위가 모두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하며 마무리됐다.

이런 안건을 저지르는 회사의 선박 관련 사안을 은행권이 '열심히 처리하자'는 마음만 먹는다고 전적으로 '천리안처럼' 들여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선박의 과정만 들여다 보면 된다는 식으로 일을 간단히 한정해 이야기할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문제를 많이 안고 숨기는 게 적지 않은 상대를 마주하고 은행계가 고투했을 상황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2012년엔 대법원이 바로 SLS조선이 선수금 환급보증 즉 RG를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대가를 받고 유리하게 판정하는 비리를 저지른 한국수출보험공사 전직 부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확정한 것도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무역보험공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안은 아니나, 해당 기업에서(혹은 그룹에서) 조직적으로 일종의 사기성 행보로 선박금융을 처리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결국 관련 기업 최고위층이나 관련 비위 인물 등에 대해서는 거의 유사한 시기에 사법부가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하면서, 심사의 부실이라는 가혹한 잣대만 오히려 은행계에 들이댔으니 철퇴의 방향성은 물론 강도의 적용면에서도 실로 잘못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해당기업 운명은 물론 선박금융 중심지 추진에도 장기적 악재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SLS조선이 이후 걷게 될 길에서 상당히 가시밭길이 펼쳐진 것은 결국 사법부의 업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LS조선은 이후 이름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고 채권단에서 해당 업체의 관리를 하기도 했다. 노동계에서는 수주 물량의 상당 부분을 채권은행이 속칭 '잘랐다'는 식으로 비판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술에 속아 심사를 제대로 하려고 작정하고 매진했어도 사실상 파악이 어려웠을 만한 일에 말려든 경우에도 은행계만 책임을 전가받는다는 서운함 그리고 심리적 위축이 채권단 행보에서 전혀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가능성이 0'인 일일 것이다.

이후에도 선박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때때로 학계나 정치권, 지역 등에서 파상적으로 나오고 있다. 부산 문현을 선박금융 중심지로 육성하자는 소리가 나온지도 이미 오래이고 채용 등에 대한 기대감도 지역에서는 높다.

하지만 이렇게 선박금융의 싹부터 사실상 잘라버리는 식으로 사법부가 처리를 한 점에 대해서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우수 인적 자원이 유입되길 바라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 역시 여전하다.

특히 사법부가 SLS그룹에 관련한 여러 다양한 금융 거래 문제와 형사상 상황들을 거의 같은 무렵에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했는데, 이를 모두 대법원이 종합적으로 모아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 줬다면 과연 개별 은행들이 각개격파를 저렇게 당했을지, 일부나마 보험금 처리의 합의조정(ADR)을 할 수도 있었지 않았냐는 아쉬움을 표명하는 의견도 있다.

이는 무역보험공사가 잘못해서 돈을 물어줘야 한다는 공방전의 논리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피고가 무역보험공사이지만 정부 더 나아가 나라가 뒤에 있다는 지적을 먼저 깔고 살펴야 할 일이다. 

선박금융이라는 차세대 먹거리 개척을 위해 뛰던 중에 일종의 사기성 운영의 맛에 취했던 기업과 엮여 은행계가 손실을 입었다면 이는 공적자금 처리의 논리로 수업료를 물어주는 게 전적으로 부당하지만은 않은 것인데, 또 이를 처리하고 '이국철 일가'에 구상하도록 하는 게 오히려 엄정한 법리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너무 간단히 처리하는 방안에만 골몰한 것은 정책법원을 자임하는 대법원이 할 일은 아니었다는 비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