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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가게 칼럼] "비굴하게 굽히지 않겠다" 굴비

송준 칼럼니스트 기자  2015.09.23 12: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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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입맛 없을 때, 밥 한 그릇 뚝딱하게 만드는 조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최근 수산청 조사에 따르면 국민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생선은 단연 조기다. 그 다음을 꽁치, 고등어, 명태 등이 잇는다.

조기는 예로부터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생선으로, 단백질이 풍부해 아이들 발육이나 노인들의 원기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 '조기(助氣)'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기운을 북돋아 주는 생선의 대명사로 꼽히는 게 바로 조기다.
 

조기는 우리나라 서남해에서 많이 잡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전라도에서 많이 잡혀 함경도의 명태에 빗대어 전라도에서 나는 명태로 불리기도 했다.

배가 통통하고 흠이 없고 광택이 나는 조기가 최상의 품질로 여겨졌다. 특히 전남 영광 지역 칠산 바다의 조기가 명성이 높은데, 이 지역 바다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또 갯벌이 넓게 발달해 조기가 알을 낳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조기는 다른 생선에 비해 특별히 영양성분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운을 북돋는 생선으로 잘 알려졌다. 단백질과 지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칼슘, 철분 등이 골고루 들었다. 무엇보다 맛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적어 먹기 좋다.

조기와 굴비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기를 말린 것이 굴비다. 같은 종류의 생선이지만 생물이거나 냉동상태인 경우는 조기라 불리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3~4 개월가량 겨울 바닷바람에 말려서 수분 함량을 줄이면 굴비가 된다.

장기간 보관을 위해 대나무 고리짝에 겉보리를 넣어 몇 달간 숙성시키면 보리의 찬 기운으로 부패가 억제되고 잘 마르지 않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보리굴비'다. 

영광굴비가 유명하게 된 데에는 영광 법성포가 굴비를 만들기에 적합한 자연 조건과 오랜 기간 내려오는 염장 비법 때문이다. 법성포는 특수한 지리적 요인으로 낮에는 습도가 45% 이하까지 떨어졌다가 밤에는 96% 이상 5~6시간 지속돼 조기가 급히 마르거나 썩는 것을 막아준다.

또 서해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은 건조에 도움을 준다. 조기가 많이 잡히는 칠산 바다와도 가까워 수급에도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기운을 북돋는 이름과 달리, '굴비(屈非)'가 특이한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고려시대 척신, 이자겸에 얽힌 일화다. 고려 17대 인종의 외조부이며 동시에 장인이기도 했던 이자겸은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야심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가 진압돼 정주(오늘날의 법성포)로 귀양을 갔다.

그 곳에서 말린 조기를 맛보고 사위이자 손자인 인종에게 굴비를 진상하며 정주굴비(靜州屈非)라고 써 올려 오늘날 '법성포 굴비'에 이르고 있다.

비록 귀양살이 신분이지만 비굴하거나 꺾이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이자겸은 1년을 더 살다가 병사했다.

송준 칼럼니스트 / 다음 라이프 칼럼 연재 / 저서 <오늘아, 백수를 부탁해>, <착한가게 매거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