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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단체에 묶인 하급노조, 노예계약 '소시'만도 못한가요?

[비겁한 소극사법주의②] 사회 관심 모이자 공개변론으로 진화…판결은 함흥차사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9.22 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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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노동조합 조직형태변경'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는 그간 법학 중에 상대적으로 찬밥 대접을 받았던 노동법학 가운데서도 특히 구석진 곳에 가려졌던 문제다. 그러나 근래 많은 기업별노조들이 산업별노조에 가입한 상황에서 갑자기 이 이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프라임경제신문 직원들이 모여 노조를 결성했다고 하면, 이는 기업별노조이자 독립노조다.

그러나 협상력 강화 등을 위해 산업별노조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라임경제신문 노조도 언론노조에 들어간다고 할 경우 형식상으로는 프라임경제신문 노조는 일개 지부가 된다. 언론노조 프라임경제지부(지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이들 프라임경제신문에 근무하는 노조원들이 산업별노조의 색채와 활동, 간섭이나 강제에 불만을 갖는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의사 결의만으로 기업별노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조직의 틀을 변경할 권리는 이제 언론노조로 귀속됐으니 이 처분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가 갑자기 부각된 것은, 발레오전장이라는 회사의 노조가 오랜 시간 가입됐던 금속노조에서 벗어나 다시 독립적인 기업별노조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1심과 항소심에서는 현행 법리상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발레오전장 노조는 독자적 위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상고가 이뤄지면서 대법원에 공이 넘어갔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여는 등 나름대로 일단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이 문제에 최대한 배려하는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이번 문제에서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형성 또는 법창조를 강조하는 판결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이미 높아지고 있다.

적극사법주의는 특정 이념의 전유물이 아니라, 법원의 역할 모델과 현실에 대한 기여 방법론에 대해 어느 정도 적극성을 인정하고 추구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 나쁘게 볼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앞의 기사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공개변론 와중에 사실상 판단의 내심을 예견할 수 있는 듯한 질문을 여럿 내비쳤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냥 나와서 새로 하나 만들지, 뭘 저러고 있나?'라는 속내라고 요약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분상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당당한 내 노조를 왜 남의 손에 넘길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 뒤에 내 손으로 깨고 나와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런 잔인한 구조를 요구하는 부분이 노조 조직의 변경 시스템이라고 법을 해석하는 것은 소극사법주의의 병폐에 다름 아니라는 불만이 나온다. 이는 일단 사실상 특정 회사 노조의 재산을 상급단체에 그대로 상납하고 맨손으로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명분론 때문에 이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 지난 봄 열린 공개변론에서 나온 몇몇 이야기들을 짧게 요약해 소개하는 바를 읽으면 이해가 빠를 듯 하다.

개별 노조, 독립성 없다는 규약? 금속노조 압박은 아닐까?

발레오 건을 놓고 대법관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양측 논리의 허점을 찾고 논리적 호소를 들을 만한 대목을 탐색했다. 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개변론 내용과 사건 기록 등을 바탕으로 합의 절차를 거쳐 조만간 선고기일을 지정하는 등 재판 절차를 지속할 예정이다.

우선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적이 중요하다. 그는 "이 사건의 쟁점은 지회가 단체로서의 실질을 갖고 있느냐 여부로 보이는데, 규약에는 지회가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 그렇다면 지회가 단체로서의 실질을 가질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원고 측(발레오전장 노조의 행보에 무효화를 시도한 측)은 "금속노조 지회 대부분이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극히 온당한 지적이자, 현재 논의되는 논의들을 참고할 때 핵심을 짚은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이 문제에 대한 선구적 논문 중 하나인 박진호 저 '노동조합 조직변경에 관한 한·일 판례 법리 검토'를 보면, 일명 초기업노조의 산하 지부가 독자적 조직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조직의 변경 요건을 외형 충족하더라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어서 초기업노조 산하 지부가 독자성을 갖췄다면, 이는 절차를 준수한다면 다시 기업별노조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일단 이런 독자성 여부가 관건인데, 문제는 금속노조는 이를 예견했는지는 몰라도 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휘하에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다른 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는 약관규제법의 논리를 빌리자면, 경악조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어느 조직이 그 구성원 내지 구성 조직에 대해, 그 정체성이 희미한지 독자적인지를 따질 여지가 사실상 없게끔, 도대체 탈퇴할 방법이 없게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원고 측 법률 대리인이 이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가?

하물며, SM엔터테인먼트조차도 '노예 계약' 비판을 받자 10년 세월을 묶어 놓는다는 류의 비상식적인 내용 운영을 일거에 포기했다. 발레오전장 노조의 독자성이 금속노조 보기에 그렇게 하찮다면, 이는 SM이 소녀시대를 돈 버는 기계 취급한다고 사람들이 비판하던 이상으로 못한 처우 아닌가? 

이게 국내 주요 노조 조직의 논리인지, 그 부분을 새롭게 대법원은 '석명'해야 하는데 공개변론에서는 그런 부분이 빠진 듯 하다.

아울러 모 대법관은 "피고 측이 기업노조로 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피고 측 변호사는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산하에 있던 2008, 2009년 당시 금속노조의 강경 입장 등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회사나 조합원들의 이익과 상충한다는 생각에 기업노조로 돌아가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이는 절대 다수 조합원들의 의견이다. 금속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조합의 독자성 여부는 지회 규약보다는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첨언도 보탰다.

이 점으로 대체로 서로 의사의 불일치 상태에서 가입 계약이 이뤄졌다는 식으로 구성 못할 바도 아니다.

지금은 퇴임한 어느 대법관은 지난 봄 당시 "피고 측, 굳이 조직변경 결의의 형태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냥 탈퇴 후 새 노조를 설립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는 이제 그가 없으나, 실로 심오하게 곱씹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서울대 출신, 민사 법관으로 경력을 주로 쌓아온 남성이라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 교집합은 깨지지 않고 있기에 그 질문을 던진 이 대표주자격 전직 대법관의 태도는 지금도 서초동 전반을 지배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분란 끝에 이별해야 하는 경우 지극히 경색된 해석 태도 탓에 내 조합, 내 조합원들이 열심히 모은 노조의 재산을 상급단체 수중에 넘겨야 하는지,

더불어 절대 다수인 이들이 개별 자격으로 걸어 나와 새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미국과 우리 노조 발전사의 상이점을 도외시하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은 일찍이 사회적으로 경제 성장이 이뤄지기도 했으나 그에 대해 노동자들이 뭉칠 필요성이 빨리 고취돼 산업별로 노조가 결성됐다. 기업별노조가 발전하는 대신 이런 거대 노조가 발전한 이유다.

그런 반면 일본이나 우리는 압축적 성장을 하다 보니 개별 기업에서 노조가 활동하는 식으로 문제가 진화했다. 특히 이는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제국주의시대는 물론 냉전 시대 내내 높다 보니 산업별노조 발전이 원활치 못했던 바와도 일말의 연관성이 있기는 하다.

이에 대해 발레오 측 변호사(피고 측)는 "현재는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때문에 대법관님 말씀에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조직형태 변경이라는 간이한 제도가 있는 이상 그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일명 '권리의 경합' 차원에서라도, 분명 다퉈볼 만한 실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조분열 특수성 인정' 日 학설, 최고재판소도 극히 제한적 인정

이런 가운데 전경련회관에서 최근 경영판례연구회라는 모임이 세미나를 갖고 이 발레오전장 사건에 대해 우려의 의견을 여럿 개진한 점은 두드러진다.

이 모임의 여러 참여자들 즉 학자나 변호사들이 외국과 우리 노조 발전사가 다른데 서구식 논의에 경도된 판결을 1, 2심에서 했다.

과연 우리 법제도에서 혹은 유사 시스템에서는 이 같이 일단 가입했던 상급의 노조 즉 상급단체가 싫어져 이탈할 때 전면적으로 그냥 몽땅 버리고 나와 새로 새 조직을 건설해야만 하는 걸까? 어느 저명한 고위 법관의 지적이 풍기는 뉘앙스처럼 그냥 나오지 그러냐는 식으로 처리하는 게 그냥 속 편한 결말인 걸까?

적어도 우리와 유사한 노동 관련 법제, 그러나 나름대로 공산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보다는 치열한 노동법학 발전사를 갖게 된 일본의 경우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일본 학자 중에는 어느 노조가 도저히 하나로 더 이상 같이 하기 어려운 경우 '분열'하는 것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적으로 분열이 기정사실화됐으므로, 인정하고 그 분할과 분배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분열 부정설은 대신 이런 경우 구조직에서 다수의 인원이 이탈해 그냥 새 조직을 만들었다고 이론을 구성하며 끝을 맺는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부정설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말의 여지는 인정했다.

최고재판소는 "구(舊) 조합에서 내부 대립으로 그 통일적인 존속, 활동이 대단히 고도로 또한 영속적으로 곤란하게 되고 그 결과 구 조합원의 집단적 이탈 및 그에 이어서 신(新) 조합의 결성이란 사태가 발생한 경우 비로소 조합의 분열이라는 '특별한 법리' 도입의 가부에 대해서 검토할 여지가 생긴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적극사법주의를 요청하는 이들은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여지가 있다. 일단 가입된 조그만 개별 조직들에 대해 이탈이란 거의 절대로 불가능하게 이론 구성 안에 묶어 두는 금속노조식 행보 정당성은 무엇일까? 

과연 이런 태도가 개별 사건을 다룰 때 노동법의 해당 조문 해석상 '철벽'일지는 몰라도 전체 한국 법리상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를 이제 따져볼 문제라고 새로운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전제를 일단 넘어선다면, 특별한 법리를 인정하는 일본식 태도에 버금가는 수용적 태도를 우리 사법부는 전혀 취할 수 없는 것인지도 시선을 모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