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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전할수록 법리 분쟁은 더 치열…클래식서 찾는 해법

관련논의 필요성에 일반상식성 기초법리로 '묘안 도출' 기류 주목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9.06 15: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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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기술 발전에는 밝은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혜택을 누리거나 편의가 증진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이전에 없던 새 분쟁이 일어나거나 관련 범죄가 정교하게 진화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상사가 여럿 빚어지고 있다. 

이는 옛 제도의 공백에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우선 대표적인 사례로는 보이스피싱과 파밍 등이 날로 교활해지고 지능화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피싱은 각종 속임수로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접속,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해 빼내는 방식인데 비해 파밍은 해당 사이트가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도메인 자체를 중간에서 탈취하는 수법이다.

피싱은 사용자가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파밍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아무리 도메인 주소나 URL 주소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하더라도 대개 속을 수밖에 없다.

최근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 6월까지 5년새 피싱 사례는 3만6531건, 피해액으로 따지면 4369억원에 달한다. 해마다 느는 추세라 우려도 크다.

파밍의 경우도 지난 3년새 50배 이상 늘었다고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달 1일 발표할 정도다. 피싱 관련 검거율은 약 78%. 10건 중 7건 이상은 잡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지능형 범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은 여전하고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싱과 파밍 등 일명 각종 전자금융사기는 일반법, 즉 형법의 사기죄 사건으로 논리구성해 처벌했다, 다만 범행 수법에 따라서는 강력한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에 2014년 전기통신금융사기 특별법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강수를 뒀다. 이 법에 규정된 일명 '전기통신금융사기죄'는 타인의 정보를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입력하거나 입력하게 유도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과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징역형은 일반 사기죄와 동등하지만 벌금형은 상한액이 5배 커졌다는 것.

그러나 이런 특별법 마련 역시 본질적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난해 특별법을 통한 처벌 강화라는 강력한 응징 방침 시사 외에 또 다른 문제 해법이 모색됐다.

지난 8월 하순 대구지법에서는 피싱 조직에 대해 이례적으로 '범죄단체'에 대한 처벌 조항을 적용한 판결을 내렸다. 범죄단체는 흔히 조직폭력배 등을 의율하는 데 제한적으로만 사용돼 왔다.

군사정권 이래 공권력의 위엄을 과시하고 민생치안 키워드를 던질 때마다 범죄단체에 대한 엄벌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으로 축적된 노하우도 이 규정의 배경을 풍부하게 해왔지만 막상 조심스럽게 극히 적은 부분에서만 사용됐던 칼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 칼을 피싱 조직에 쓰기로 하고 법원에서 이를 인정한 바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주도면밀하고 분업화된 시스템, 그리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라는 점, 바다 건너 한국과 중국 양측을 오가는 대담성 때문에 이에 가담하는 자체가 이미 흉악한 범죄단체와 다를 게 없다는 것.

더욱이 피싱 피해액의 점차 늘어나지만 막상 이런 범죄의 특수성상 피해액 환수가 쉽지 않아 사실상 처벌을 강화했던 특별법의 취지가 일선 실무에서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이고 간결한 논리에 입각해 조직적으로 범죄를 위해 의사협력의 기능적 분업을 하는 경우 범죄단체라는 간주에 다다를 수 있다는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에 가까운 판단에 근접한 결정인 셈이다.

케이블TV 업계도 최근 '일반법리'를 적용한 하급심 판결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는 영역이다. 재송신 문제는 한국이 케이블TV를 접한 1990년대부터 사실 그 씨앗이 뿌려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H형 안테나를 지붕이나 옥상에 세우는 방식으로 지상파 방송을 시청했다. 지금도 이는 유효한 방식이다. 그러나 케이블TV가 널리 사랑받게 된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지상파 방송 역시 케이블의 일부 채널 형식으로 회선을 통해 받아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중파측에서는 우리 콘텐츠를 사용하고 있으니 사용료를 내라는 재전송료 요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케이블 업계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케이블TV망의 활용을 통해 공중파를 널리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은, 뒤집어보면 공중파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송수신망 보급과 개선 문제에 대해 일종의 '사무관리'를 케이블 측에서 해주는 것으로 이론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를 인정하게 되면, 케이블이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어부지리로 광고수익은 공중파가 누린다는 주장도 가능케 된다.

그래서 양측은 첨에한 갈등을 빚어왔으며 그 와중에서 케이블이 가입자당 재송신 금액(CPS)을 산정해 물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맞는지로 갈등이 집약됐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둘러싸고 울산방송과 서울방송이 함께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JCN울산방송에 대해 콘텐츠 무단 사용에 대한 손해배상 등 청구를 냈다. 양사는 각 48억원과 32억원 상당을 피해액으로 산정했다. 반면 이에 대해 JCN은 전송 이용료를 오히려 내놓으라는 반론을 폈다.

이렇게 사안의 기술적 검토를 해 보면 양측 모두 일리가 있어 쉽사리 판가름하기 어렵다. 해당 재판부는 이에 대해 전체적인 그림에서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로마법 이래의 상식론에 기반을 뒀다.

이에 정부 시책에 따른 경우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양측 논리 중 무리한 부분을 모두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즉 케이블 등 업계에서 재전송한 것은 분명 '당국의 시책에 따라 장려된 점'이 있어 CPS를 280원 인정해달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할 만큼 공중파 측이 통상적인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긴 시간 재전송 문제에 대해 장기간 묵인을 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이렇게 사안이 복잡해지고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기가 복잡하면서도 이를 빨리 명쾌히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적 피해와 혼선이 여실할 것이 예상되는 '난제'가 기술적 영역에서는 형사와 민사(내지 행정소송과의 중첩 형식)를 막론한 채 발생 중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일반적인 논리에 따라 문제를 풀자는 '고전적인' 해법이 시도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사활이 걸린 당사자로서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 등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2심이나 상고심에서도 이러한 하급심의 결과물인, 간단한 부분에 오히려 답이 있다는 접근법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지, 혹은 이를 한층 더 다듬어줄지는 당분간 더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귀추가 주목되는 새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