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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협력사 직원 A씨의 눈물

추민선 기자 기자  2015.09.03 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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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0여년 전 평범한 직장인으로 근무할 당시, 협력사 직원 A씨가 본사의 영업사원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사실 꾸지람이라기보다 폭언과 욕설에 가까운, 수치심을 유발하게 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우린 언제든 협력사를 갈아치울 수 있다", "하루 매출목표량을 채워 물건을 팔아라"를 비롯해 "나이가 몇 살이냐, 내가 지금 이러는 게 싫으면 좋은 회사 가라" 등 쉼 없는 폭언을 한참이나 쏟아냈다.
 
A씨는 결국 눈물을 흘렸고, 비로소 자리를 뜰 수 있었다. A씨가 나간 후 눈치를 살피는 사회 초년생인 필자에게 다른 직원은 "원래 저런 것, 한 달에 한 번 있는 월례 행사"라는 식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결과보고서 제출하는 날을 협력사 직원인 A씨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래 나이인 데다 식사도 같이 하면서 자주 연락하는 사이라 자리를 피해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화기 너머 A씨의 목소리는 울음이 가득했다. 어디냐는 질문에 동호대교를 걷는 중이라고 했다.

이미 오후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회사로 복귀해 오늘 미팅 결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택시라도 타고 가라는 말에, 혼자 걷고 싶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어두컴컴한 밤, 여자 혼자 울면서 걸어가고 있을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원청사의 갑질은 협력사가 잘해도 못해도 한 달에 한 번, 아니 수시로 겪어야 할 일이었다.

원청사 직원들은 협력사 직원들이 들어와 보고하는 날에는 없는 잘못도 찾아 인신공격에 가까운 폭언을 퍼부었다. 협력사 직원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원청사가 협력사, 즉 아웃소싱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절감과 고용의 유연성을 위해서'다.

아웃소싱 기업의 전문성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다.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협력사의 비중과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협력사의 직원을 함께 업무에 대해 공유하고 논의하며 협력하는 존재로 보기보단, 자신의 우월함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동반자'가 아닌 '돈을 주고 부려 먹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탓일 것이다.

아웃소싱은 원청사가 돈을 주며 부려 먹는 구조가 아니라 협력사의 전문성을 비용으로 지급하고 그들의 업무 노하우를 도입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평행선상에 위치해야 할 원청사와 협력사의 구조가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하면서 갑질논란이 항상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원청과 협력사와의 상생발전을 위한 각종 업무협약이 체결되고, 원청 직원의 인센티브와 급여 인상을 협력사 직원에게도 혜택을 주는 등 훈훈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직 이러한 상생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시행하려는 원청사가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국내 대기업을 선두로 많은 기업이 선진 협력관계 문화를 구축하길 기대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동호대교를 지날 때마다 A씨가 떠오르곤 한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선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