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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경기 죽은 지방소도시 "번화가? 9시면 문 연 약국도 없어"

GDRP 지수 자체는 좋아도 쏠림현상에 밑바닥은 빈사 지경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9.01 09: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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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 "가겟세는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똑같이 나가지만, 전기요금이며 종업원 인건비 써 가면서 그렇게 열고 있어도 막상 뭐 하나 팔기가 어려우니 그렇죠."

8월25일 저녁, 한국인의 애송시 '향수'를 남긴 정지용 시인의 고향 충청북도 옥천군. 이곳의 한 택시기사는 가게는 많은데 왜 불을 켠 데가 별로 없느냐는 질문에 이런 설명을 내놨다.

군이나 읍 단위의 지방에서는 군청 혹은 읍사무소가 소재한 곳이 시내 혹은 읍내라고 불리며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비가 좀 내렸던 이날 밤 8시20분 무렵부터 약간 시간을 내 군청 소재지 버스터미널에서 역까지 훑었으나 많은 가게가 장사를 일찌감치 접은 터였다. 

그나마 이 시각까지 영업 중인 가게들이 좀 모인 곳이 택시 기사나 편의점 직원 등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시내'다. 지역 향토음식인 '생선국수'를 먹으러 가려면 '구읍' 방향까지 좀 이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구읍으로 갈수록 더 깜깜했음은 불문가지겠다.

"국수 가게는 제가 잘 알고 모셔다 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열고 있을지는 장담은 못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역 내 가장 맛집이라는 이 가게 역시 일찌감치 영업을 작파하는 모습이었다. 자정 가까운 밤이고 여명이 가까운 새벽이고 간에 카드 하나만 들고 나가면 온갖 아이템을 즐길 수 있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

'불황의 초저녁'이 아니라 '비오는 평일의 밤'을 대처 사람인 기자가 '오해'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모습이었다.

#2. '시내'도 쓸쓸했지만 새로운 핫플레이스 '신관'도 별 수 없었다. 31일 개강하는 공주대학교의 앞, 이른바 신관 야구장거리. 개강 목전의 주말(29일) 밤 학교 앞은 이미 돌아온 학생들로 북적였지만 막상 가게들은 장사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몸이 좀 좋지 않아 약이 필요했다. 밤 8시40분경, 충청남도 공주시의 일명 '시내'에 자리 잡은 한 갈빗집. 그렇잖아도 KTX역에서 차를 타고 출발, 공주교육대학교를 지나 시내에 이를 때까지 불 켠 가게가 도통 많지 않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늦게까지 노는 곳은 없는가? 이렇게 해서 찾아간 '신관'에서 약을 구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모여 북적이는 공주대 앞도 중간중간 불 꺼진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빠진 자국 같다고 하기엔 빠진 곳이 너무도 많았다. 문을 열어도 전기 요금을 아끼려는 듯 큰 간판도 못 켜는 가게들, 손님이 몰려 나와도 '임대급구' 현수막만 접하는 거리, 한때 대전 부럽지 않던 공주는 이랬다.

지방 중소도시들의 상황, 그리고 지방 영세사업자들의 애환을 이 두 풍경이 모두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오랜 한탄은 실제로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숨통이 다시 트이고 있다는 분석이 슬슬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지난달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전 산업생산은 전월대비 0.5% 증가했다. 제조업 경기상황을 반영하는 광공업생산은 한 달 전보다 0.5% 감소했지만, 서비스업· 건설업 등의 생산이 늘어난 덕분이라는 풀이다.

하지만 서비스업 전반이 행복해질 채비를 하고 있는 걸까? 이미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생사기로에 서 있다. 특히 그리고 그 타격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최근 한국은행과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직원을 두지 않고 자기 혼자 또는 가족과 일하는 영세자영업자(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는 올 상반기 397만5000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61%(10만7000명)이나 줄었다.

지역의 경우는 각종 배경 사정이 더 나쁘다. 일례로 광주와 전라남도 등 호남권은 지역 내 총생산(GRDP)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 지역은 심지어 폐업이 많음에도 신규 창업이 오히려 더 많아 전국적으로 자영업자 감소 패턴에서 다소 벗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혹시 도전적인 이 지역의 창업 정신, 역동하는 자영업 마인드를 기자가 곡해하는 것은 아닐까?

가장 큰 문제는, 광주와 전남에서 자영업자가 늘고 있음은 분명한데, 이 가운데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8만5000여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81.3%가 고용원이 없는 나 홀로 또는 무급 가족종사 형태의 영세자영업자라는 것.

이는 그야말로 생계형 구멍가게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른 지역 역시 이런 자영업의 영세화 물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지역 경제는 GDRP 등 지표가 좋아지는 것과 별로 상관없다는 조언을 하면서 이런 괴리를 해결하는 게 지방의 영세 자영업자들을 살리는 단초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피부로 느껴지는 상황은 다르다는 것.

공주를 품고 있는 충남 이야기로 돌아가 얘기를 다시 풀면 충남의 경우 GRDP 규모에서 전국 3위다. 1인당 GRDP는 4500만원으로 전국 2위의 기염을 토한다. 그런데 공주의 경우는 왜 시내에서조차 밤 늦게 문 연 가게를 제대로 보기 힘들까?

충남 GRDP의 75%와 제조업 부가가치의 90%가 아산과 당진, 천안, 서산 등 서북부 4개 시·군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 때문이다. 

이곳은 교통 중심지거나 제철 등 큰 기업체들이 쥐락펴락하는 곳들이다. 도내 시·군의 경제력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충북의 경우도 만만찮다. 충북 GRDP의 50% 이상을 LG가 담당하고 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은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경영진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1979년 럭키가 충북에 처음 들어온 이후, 현재 9개 LG 사업장이 있고, 지역 GRDP의 50% 이상을 LG가 담당하고 있다"고 감격에 겨운 공치사를 했다.

상황이 이러니 민간의 중견 내지 중소 규모 기업이나 가게 규모를 막 면한 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자들은 아무리 지표가 어떻다고 해도 돈이 도는 것을 느끼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낙수효과라는 이름으로 그래도 약간의 떨어지는 물이 지역의 경제 물레방아를 돌리지만, 본사로 서울로 흘러가는 돈이 더 많다고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이래서는 장사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지역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의 지역간 격차와 사회(계층 간) 격차를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를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다른 지표 하나를 더 참조하면,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모든 게 쏠렸다, 그래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힘들고, 지방 영세사업자는 도시의 같은 상인보다 더욱 상황이 어렵다. 그런데 2012년에는 수도권 인구 비중이 약 49.5%로 증가한 반면, 수도권 생산량 비중은 47%로 떨어졌다고 한다.

수도권의 생산량 비중보다 인구 비중이 더 높은 이런 상황은 수도권이 모든 것을 차지하면서도 효율성 제고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 꺼진 지역 상권을 위해 마중물을 부어줄 정도의 양보를 중앙에서, 대기업에서 해주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