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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잃은 공공기관下] 투미한 행자부 투융자심사에 울고 웃는 지자체

지방 발전 모멘텀 약화…사고 사례엔 공범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28 09: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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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공직사회에는 '지게꾼'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체적으로 기획하거나 수사한 아이템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타기관 이첩 사항을 처리만 하는 소극적 역할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일을 안 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맥없이 지게질만 하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다. 왜 이런 지게꾼 논란은 창조경제 견인차로 공직사회가 움직여 주길 바라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사라지지 않는지, 일부 논쟁 사례를 살펴본다.

지방자치시대라고 하지만 중앙부처의 힘과 이를 활용한 제동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들에겐 막강한 '갑의 행보'다. 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우수해 스스로 살림이 가능할 정도의 형편인 곳은 많지 않다. 때문에 돈줄인 중앙의 눈치를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  

더욱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의 경우 중앙부처의 여러 제약 조건을 맞추고 시행 능력을 점검받는 등 스크린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전방위 점검의 도구가 바로 행정자치부가 쓰는 중앙투융자심의라는 칼이다.

물론 지방재정 중앙투융자심의제도의 기본 취지와 순기능을 전면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지방재정 투융자심사는 한정된 지방의 예산을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틀 안에서 사용하도록 감시하는 외부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전문성이 높고, 전국 단위에서 사업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감각을 지닌 중앙(행자부)에 심사를 의뢰해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지방재정 투융장심사가 언제부터인가 지역경제 부흥이라는 견인차 역할을 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오작동마저 잦아 해 줄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만 힘을 실어준다는 불만도 이어진다.  

◆애먼 '투융자심사 기준 강화' 요구

물론 재방재정 투융자심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는 지자체장 치적 쌓기 욕망에서 사업성이 크지 않은 사업을 벌이거나 투자 효과가 의심스러운 난개발이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행자부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지난 연말경부터 새롭게 시행되자 지방재정영향평가제 도입 및 지자체 부채 관리요건 강화 등에 나섰다. 지방재정영향평가 대상은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중 지방재정부담이 200억원 이상 되는 신규사업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 강화 요구는 자칫 관료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시선도 없지 않다.

지난 1990년대에도 지방재정 투융자를 심사하는 중앙부처의 기준은 엄격했다. 1999년 하반기에 지자체들이 이 심사를 요청한 사례는 62건, 이 중 행자부가 처리해 준 사안은 12건(19%)에 불과하다. 각종 조건부 추진으로 제약을 둔 경우가 28건(45%), 전면 재검토 요구 및 반려가 22건(36%)이었다.

문제는 전문성 논란이다. 지난 2007년 행자부가 전북 완주군청 청사 이전 사업의 투융자심사에 도장을 찍어 줬으나, 이는 호화청사 논란으로 이어졌다. 감사원이 2010년 말경 내놓은 '지방청사 건설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새 청사를 지을 때 ㎡당 건설비를 205만원이나 집행했다. 이 보고서에서 문제 사례로 거론된 곳은 모두 200만원이 넘는 건설비를 썼다.

문제의 심각성은 학습효과까지 생긴다는 데 있다.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완주군은 얼마 후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전주시와 완주군 간 통합 논의가 진행되자 통합청사 터 매입 등 무리수를 둔 것이다. 2014년 감사원은 "완주군청 공무원들은 주민투표 이전에 통합청사의 첫 삽을 떠야만 주민투표 시 통합 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 관련 작업에 착수, 결국 32억원을 낭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에는 배영식 당시 국회의원(옛 한나라당)이 지자체가 추진하는 각종 국제행사에 대한 행자부의 투융자심사위원회의 검토가 탁상심사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면 위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심사에서 조건부 가결이 된 사안이 지자체의 자체 '뻥튀기'로 규모가 확대된 채 추진된 경우도 있다. 경기도 용인시는 당시 체육시설을 건립하면서 초기 사업규모보다 2배나 불려 착공에 들어갔다가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이는 행자부 차원에서 투융자심사 결과 준수 여부, 또 사후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살례로 꼽힌다.

◆MOU 이상의 것?…도대체 무엇을 원하나

한편, 투융자심사가 사업의 타당성을 무시하고 지나친 보강 요구를 하거나, 국제 상관습에 어긋나는 보완 요청을 하는 등 상반된 논란을 빚은 경우도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추진 중인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 조성 사업은 행자부 지방재정 투융자심의위의 '반대'로 착공에서 멀어진 사업이다. 이에 구리시는 행자부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 심사를 통과해 그린벨트 해제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구리 지역은 한강 수자원 보호상 개발사업의 경우 엄격한 심사를 요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따지고 보면 구리시는 투융자심사보다 더욱 까다로운 국토부 심사를 통과한 셈이다.

미래를 담보로 심사를 진행하는 투융자심사의 태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GWDC의 경우 해외에서 들여올 자본의 투자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확고한 약속을 얻어오라는 것이 행자부 지적의 요지다.  

문제는 지금처럼 여러 부처에서 사업 타당성을 심사하는 구조에 호의적이지 않은 해외 투자기업의 성격상 업무협약(MOU) 이상의 구속력 있는 약속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구리시 고위 관계자는 "5곳의 법무법인으로부터 MOU 이상의 요청을 하는 것은 국제 상관습에도 어긋난다는 자문 의견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Agreement'를 넣어 'MOA'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문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이 같은 내용을 행자부 투융자심의위에 문서질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제상관습에 어긋나는 요청인 점은 차치하고라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늠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GWDC에 경기개발공사나 한국주택토지공사(LH) 등의 지분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안전핀을 마련하라는 타당한 훈수로 들리 수도 있으나, 관련법상 현실적으로 이들 공사가 GWDC 조성 사업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투융자심사위의 반대, 그 이상의 저의를 의심케 하고 있다.   

상수원 보호의 기본 시스템인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이런 구역을 개발하면 토지개발 이익의 90%를 국가하천기금으로 내야 한다. 앞으로 고용이 창출되는 등 경제 효과는 구리시나 주변 도시에서 거둘 수 있으나, 당장 땅을 파는 이익을 구리시나 그 동반자들이 얻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뒤집어 생각할 때 경기개발공사나 LH가 GWDC 조성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이들 공기업은 자사의 이익으로 돌려받을 수 없는 곳에 참여를 하거나 보증을 서는 게 돼 배임 등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창조경제 활성화?…엇박자에 뒷짐 

문제는 또 있다. 형평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투융자심사의 관례는 민간자본 유치와 외국인직접투자 러브콜을 적극적으로 보내자는 박근혜 정부의 전체적 기조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 

정부는 올해 세수 부족액수를 7조~9조원대로 추정하고 있고, '4분기 재정절벽' 대비책 마련과 성장률 3.3% 사수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기획재정부는 투융자집합투자 활성화를 위해 사회기반시설사업(SOC)에 투자하려는 기업에 대한 대출 한도를 폐지하는 민간투자법 개정안을 지난해 입법예고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이달 20일 지방세제 개편안이 발표된 것 역시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해 각 지역에 돈이 돌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대기업의 자본 신규 투자를 이끌어 내고 일자리를 낳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독려하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각 부처와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투융자심사의 부족한 전문성과 일관성 탓에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은 기약도 없이 제자리걸음이다. 닫힌 민간기업의 투자 욕구와 외국인직접투자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도 투융자심사에 대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