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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 잃은 공공기관上] "새로 생긴 법, 능력 있어도 연구 안 해 아쉽다"

MB 땐 불법사금융과 소송전 '금융 저승사자'들 '시효 부활'에 고개 숙여

임혜현·김병호 기자 기자  2015.08.24 16: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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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공직사회 근처에는 '지게꾼'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체적으로 수사하거나 개발한 아이템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타 기관 이첩사항을 처리만 하는 소극적 역할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일을 안 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맥없이 지게질만 하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다. 왜 이런 지게꾼 논란은 창조경제 견인차로 공직사회가 움직여 주길 바라는 현 정부에서도 사라지지 않는지, 일부 논쟁 사례를 살펴본다.

"민법상으로는 맞는 얘긴데, 민사소송법(체계)상으로는 얘기가 다르다."

한 변호사는 이런 설명으로 금융감독원(금감원) 보도자료에 대한 질문의 답을 내놨다. 이달 배포된 금감원 보도자료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대해 소액이라도 입금하면 총액을 줄여주는 혜택을 주겠다는 기법이 최근 활용된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고 이에 대한 주의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내용 중 일부가 소멸시효 등 민사 제도와 일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 특히 다르다는 방향성이 채무자 보호와 반대 방향인 만큼 속된 말로 숙이고 들어가자는 것이라 이럴 거면 그냥 배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과격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민법상 시효 제도에 따르면 빚을 진 뒤 10년이면 빚을 갚을 의무가 없어진다. 금융회사의 대출을 받은 경우라면 상법 규율 대상인 사업자에게 빚을 진 게 돼 상사 시효가 적용돼 기간도 5년으로 줄어든다.

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서는 채권 자체가 없어진다는 절대적 소멸설과 권리의 소멸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므로 이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상대적 소멸설이 나뉘나, 양학설에 큰 차이가 없다는 해석도 있다. 1966년 65다2445사건 이래 대법원 태도는 절대적 소멸설인 것으로 대부분 법학 교재에 기술됐다.

문제는 소송에 들어가는 경우 상황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것으로, 민소법상 변론주의 원칙이 있는데 이에 따라 소송의 양당사자가 주장한 바를 우선고려해 법원은 재판을 하여야 한다.

직권탐지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며 소멸시효에 대한 논의가 혼선을 빚는 이유도 여기서 출발한다. 1979년 나온 대법원 판례(78다2157 사건)는 시효 이익을 받겠다는 항변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에 반해 재판할 수 없을 뿐이라고 판결했다.

금감원, 고뇌에 찬 결단?

앞의 변호사(개업 10년차)처럼 설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래서 "실제로 법원에서 이런 소송을 받아주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부연설명이다.

이어서 부수적으로, 그는 일부 상환을 잘못했다 분리된 A, B 채무 중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후자라도 시효 연장 사태에 접어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등 여러 문제가 있다고도 짚었다. 따라서 이런 자료를 배포한 이유는 이해가 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원론적으로는 몰라도 실무상 고뇌를 담은 결단이라는 식으로 이 자료를 받아들이거나 전체적 그림에서는 맞다고 볼 수도 있다고 언급하는 변호사나 법학계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짧게 요약된 스트레이트 기사를 통해 금감원의 현안 분석 태도를 접하거나 기자의 간단한 전체적 그림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한계가 있다.

금감원의 10일자 보도자료는 "소멸시효 완성 사실이 확인된 경우 소액이라도 변제하면 다시 소멸시효가 부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8면)"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례로 "채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경우, 사건이 종료된 때로부터 소멸시효 다시 기산-채무를 일부 변재했거나 갚겠다는 각서, 확인서 등을 작성해 준 경우, 해당일로부터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 완성(6면)" 등의 표현이 그렇다.

그런데 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자의로 새 채무를 만드는 의지를 갖고 새 소비대차계약을 했을 경우, 속칭 각서의 성격을 일괄해 설명할 수 있는가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채무자를 압박한 가운데 기본적으로 시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을 적당히 활용 내지 묵인하고 이런 각서를 받아내는 경우가 채권추심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상권 변호사, 새 법 따르면 이런 추심은 오히려 범죄

반강제적인 각서가 아니라, 일정한 독촉에 의해 인간적 도리상 불가피하게 일부라도 변제하겠다는 의사로 작성된 각서라고 한정해 이해를 해도 이는 새로운 채무의 시작이라거나 구채무의 시효가 부활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리에 맞지 않는다.

이런 때 일부 변제를 한정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압박이 일부라도 있었다면 이런 각서는 언제든 다시 취소를 선언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를 단순한 민사 문제로 보고 민법학만으로 보면 안타깝지만 실무상 어쩔 수 없다는 논의가 대세적이었고 당분간 이런 주장이 통용될 것으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만과 반대를 표시하는 법조인들도 없지 않다. 사법시험에 늦깍이 합격해 채권추심 문제를 특기분야로 깊이 파고들어 이제 이 문제의 최고 권위자 반열에 오른 이상권 변호사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이제는 형사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11조는 불법채권추심을 처벌하는데,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채권에 대해 추심의사를 표시한 경우도 이런 예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절대적으로 소멸한다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존재하지 않는 채권이므로 이에 대해서 추심의사를 표시하는 채권추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늘날 불법추심의 절반 이상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한 추심일 것이라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시사점이 크다. 신용정보회사 등은 시효가 완성된 채권뿐만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채권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

은행 등에서 시효가 만료됐거나 임박한 채권을 대량으로 사 들여 이를 추심하고, 그도 여의치 않은 경우 점차 불법적 성격이 강해지는 영세한 규모로 내려가는 구조가 과거부터 있었다고 금융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11조 1호 위반에 따라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변호사의 주장대로 현재 새 법이 만들어져 시행 중이라면, 그 규정대로 처벌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관계 당국이 해야 옳을 것이다. 적절히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한 규정을 새롭게 연구하고 이론 구성을 보강하는 태도가 금감원 등 주변 당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채권추심 악용 수단 전락한 지급명령 관련 대응도 필요

새로운 법 규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채권추심에 간편한 지급명령이라는 제도가 악용되고 있음도 문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채권을 위해 지급명령을 얻어내는 경우는 엄연히 소송사기가 된다. 특히 이의기간이 지난 경우 뒷수습을 하기 어렵게 돼 있는 점도 문제다. 지급명령을 얻고 이의제기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반드시 민사소송 본안을 통해(청구이의의 소)를 내야 한다.

소송사기를 저질러도 실무상 아무런 제지도 없을 뿐더러 상대방 역시 극히 대응이 어려운 점을 즐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경 금감원의 경우 금융위원회와 경찰 등과 손잡고 불법사금융 피해 사례에 대한 강한 단속을 한 주축 중 하나였으며 평소에도 금융 관련 지도감독의 최일선 역할을 해왔다.

2012년 봄 당시 국무총리실과 금감원에 따르면 44일간 접수된 2만9400여건의 상담 및 피해신고 건수가 지난해인 2011년 1년간 금융당국에 접수된 신고 건수(2만5000여건)보다 4400여 건 더 많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당시 불법사금융 피해자 소송을 국가가 일괄 시행하는 방안도 마련하거나 소송을 적극 지원하는 등 안도 추진된 바 있다.

과거 이런 기백을 갖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던 금감원 등이 시효 문제에 대해 난맥상을 방치하거나, 관련 새 제도 연구에 적극 나서지 않는 등은 문제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정권이 바뀌자 태도도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금감원의 태도로 선량한 채권자가 도덕적 해이의 반사적 피해에 희생될 것이라는 지적은 반만 유효하다. 부실채권을 대거 떼어 파는 식의 관행이 있으며, 이는 결국 과도하고 무리한 추심으로 없는 채권채무를 양산하는 영업적 행보라 선량한 일반 빚쟁이의 경우와 같이 다뤄 호도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온다.

금융기관들에게는 저승사자처럼 군림해온 금감원이지만, 악질적으로 부실채권을 되살려 추심해 먹고 살겠다는 식의 영업자들에 대해서는 어쩐지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다는 점은 이런 이유 탓에 아쉬움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