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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판단이론 외면…한국 글로벌 상사법 외톨이 신세

[광복절 특사가 남긴 것 下] 고뇌찬 총수 투자결정 앞으로 기대 어려울 것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13 14: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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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박근혜 정부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견지해온 사면권 남용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사면 단행 시 형평성 등 고려 등 전체적 철학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로써 '박근혜=원칙의 정치인'이라는 등식은 스스로 폐기처분한 셈이 됐다.

문제는 이 같은 고뇌에 찬 결단이 결국 이번 사면의 단행 명분이었던 '경제 살리기' 논의 자체를 무력화하는 독으로 작용해 오히려 자승자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이번에 복권 특전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경영상 중요한 판단을 했다가 그룹에 손실을 입힌 오너에 대해 처벌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을 무시한 것이다. 김 회장의 경우 한화그룹의 재무·신용 위험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의 자산을 동원한 것이 손실을 입힌 행위로 단죄 대상이 됐고 이번에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미 여러 처벌 전력이 감안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지나친 처사라는 반발도 동시에 나온다. 

반면 개인적으로 악질 재산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면에 복권까지 더해져 경영 일선 복귀의 고속도로가 열렸다.

김 회장의 경우 일명 '경영판단이론'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가 결국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는 징표로 해석된다. 회사의 이사나 임원들이 선의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그 권한 내의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로 인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대해 그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경영판단이론이다. 이는 미국에서 태동한 이론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으로도 부른다.

문제는 경영판단이론은 이미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인정되고 있는 글로벌 상사법 및 형사법의 메인 스트림이라는 데 있다.  

◆한화 김승연 '경영판단이론' 대상이라서 배제?  

'배임죄와 경영행위'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헌법·상법·형법 영역을 넘나드는 통섭이 요청되는 복잡한 주제인 이유도 있지만, 기업범죄(재벌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되풀이돼온 상황에서 '기업 편들기'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짚었듯이 경제의 성장과 대기업 집단 등의 활동을 겪은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긍정적 견해를 정립했다. 기업 고위층의 창조적이고 다소 위험 부담이 있는 경영상의 판단으로 국가 경제 전반에 상당한 공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엄격한 19세기식 배임죄 논의 등으로 이를 규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법철학적 공감대가 성립,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는 "기업인의 배임행위는 일반적인 배임행위와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세미나에서 밝혔다.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와 맞물려 자칫 '기업 때리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세계적으로 볼 때도 사법 만능주의는 지양되는 추세"라며 "법관의 판단에 모든 영역에 대한 지나친 개입을 하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영판단과 관련해 배임죄 적용과 검토가 과도하게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미등기 임원' 꼼수 부린 SK 최태원은 특혜?

이는 이번 사면이 경영판단이론을 전면적으로 배제하자는 뜻으로까지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화그룹의 투자 의욕을 꺾은 것은 둘째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나는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 경제주체들의 반응과 여파도 궁금해진다.

더욱이 SK그룹이 전반적으로 신패러다임이라고까지 새롭게 용어를 만들어 달 정도로 이미 옥중에 있던 최 회장을 '비등기 임원'으로 주요 자리에 앉혀 놓은 바 있는데, 이번 사면에 앞서 정부는 이런 문제적 행보에 대해 어떤 고뇌도 없이 사면+복권 풀세트 선물을 제공했다.

사실상 '등기 임원의 보수 공개' 등 개혁적 경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과거의 모든 노력에 대해 꼼수로 피해가려 한 바 있는 SK그룹식 경영 행보에 정부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최 회장은 동생과 함께 중형을 선고받으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일각에서는 그를 동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대체적인 의견과는 달리, 지난 4월 경제개혁연대는 미등기 임원에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자숙을 위한 결단이라기 보다 고액 연봉 논란을 피하려는 꼼수로 이 같은 결정을 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더욱이 지주회사 SK가 SK C&C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고용승계라는 명분 아래 SK의 미등기 임원으로 적을 두고 있던 최 회장은 SK C&C의 미등기 임원 명패를 달게 됐다. 최 회장은 옥중의 재벌 오너로서 아무런 사회적 제재나 감시 없이 경영권을 구가하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또 SK그룹은 이전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장르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경영판단이론은 부정, SK그룹식 신패러다임은 인정이라는 이상한 요약이 가능한 이번 사면은 앞으로도 상당한 연구 대상이자 조롱감으로 글로벌 법학계에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래 먹거리 사업 구상과 결단이라는 '오너'의 긍정적 역할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대마불사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나쁜 일을 하는 '재벌'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