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후보 시절 원칙론서 후퇴…대법원 뜻 꺾은 대통령 '은사권'?

[광복절 특사가 남긴 것 上] 사법부 재벌 엄단 '장인정신' 무시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13 14:02:1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사실상 '원포인트 특사'나 다름없었다. 법무부는 13일 브리핑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형사범과 불우 수형자 등 6572명에 대한 특별사면·감형·복권을 의결한다고 발표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됐음에도, 최 회장에 대해서는 특별사면과 함께 특별복권이 이뤄지는 형평성 시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 회장은 14일자로 단행될 이번 특사에 따라 직위를 회복, 그룹 항해 전반에 영향을 미칠 '선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사면 판단은 박근혜 대통령 사면 철학이 결국 과거 대선 후보 시절에서 상당히 후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면권 남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우리는 법치국가가 돼야 한다"면서 "사면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는 등 다수 발언을 내놨지만 이번 조치로 이 원칙론에서 후퇴를 공식 선언한 셈이다.

이런 점은 이미 대법원이 최 회장과 그 동생에 대해 엄단한 점, 뒤이어 지난해 대법원이 SK그룹 총수 형제와 공모해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원홍씨에게 징역 4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뒤늦게나마 확정한 경과를 전혀 무시한 사면권 행사로도 지적된다.

사면권 한계를 넘어서서 과거 사면권의 모태가 됐던 '제왕적 은사권'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이는 결국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현임 대통령 역시 제왕적 대통령, 한국적 민주주의의 삼권분립보다 다분히 높은 지위의 국가지도자적 행보를 선언한 셈이다.

일명 '김원홍 처리' 경과를 되짚어 보면, 대법원은 재벌 총수 등의 범죄에 대해 죄질이 나쁜 경우 엄단 의지를 분명히 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오히려 괘씸죄까지 덮어쓴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김씨 판결은 작지만 의미있는 관심 대상이 된 바 있다. 변론 방향을 마구 바꿔가며 법원을 속이려 하는 죄인에 대해서는 파기환송 처리 등 온정적 사법절차를 전혀 베풀지 않고 엄벌 판결만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최태원 사건 파기환송 왜 성사 안 됐었나?

김씨는 2008년 10월 최 회장 등이 SK그룹을 통해 투자자문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1000억여원을 투자하도록 하고, 이 가운데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2심)에서는 주범인데 형량이 다른 피고인에 비해 낮다며 4년6월로 형량이 높아졌고 이번에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최 회장이나 최재원씨에 비해 형량이 높게 결론난 것이다.

김씨는 해외에 도피했다가 최 회장이 항소심 결심공판을 치른 직후에야 국내에 소환됐다. 그래서 이때 최 회장 측의 사건이 변론재개 될 것이라는 예측도 일각에서 나왔지만, 결국 그대로 선고가 나왔고 대법원에서도 이를 절차상 문제삼을 것까지는 아니라고 판결했다.

김씨 사건이 최 회장 건과 같이 처리가 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각에서 대법원이 만일 금년 초 확정이 아니라 파기환송을 했더라면, 이미 1, 2심에 걸쳐 상당한 개입이라든지 주범 등 역할이 인정된 김씨(심지어 형량도 더 높게 결정된)와의 각종 문제가 더 많이 정상참작됐을 여지도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 사건은 2심 재판부 요구에 의해 검찰이 추가한 예비적 공소사실 부분이 유죄로 인정됐고, 이 내용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것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SK 측이 2심 변론 방향을 김씨의 사기 문제로 틀었기 때문이다.

1심에서 거액의 횡령 유죄 판결이 나오자 당혹감에 빠진 나머지(재원씨는 1심 무죄), 1심에서 펀드 관련 무관함을 주장하던 최 회장은 펀드 설립 등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자금 송금 문제는 김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횡령에 대해 전면 무죄를 주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 점에 대해 대단히 나쁘게 본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과 이 부분의 인정은 결국 '설사 사기를 당한 것이라 해도 인출해 넣은 것은 최 회장이 처리한 셈'이라는 그물을 하나 더(기존 공소사실에 추가로) 탄탄하게 친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파기환송 등 절차를 굳이 밟을 필요를 법원에서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김씨 사건이 결론지어진 과정을 보면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김씨는 '묻지마 회장'으로 투자 관련 문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물론 이성적 판단 자체를 뒤흔들 정도로 역할이 컸던 것으로, 즉 죄질이 더욱 나빴던 것으로 종합할 수 있다.

'횡령은 배임과 다르다' 공포감이 부작용 낳아

최 회장으로서는 김씨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컸으며, 김씨는 무속인으로 알려져 가십성 입소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가 증권사 직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정황을 인정해도 큰 망신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회사 자금을 펀드에 가입하도록 하고 펀드 조성 전에 지급금을 넣는 이례적으로 일처리를 한 것으로 결론적으로 동생을 위해 횡령을 한 것이 됐는데(빈 틈이 생긴 자금은 나중에 둘이 대출을 받아 메웠다고 하더라도),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물의를 일으킬 투자를 하게 된 점을 반성했다면 오히려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씨의 이번 최종 판결을 보면, 사법부에서는 김씨가 사건 전반을 꾸미고 최 회장 등이 횡령을 저지르도록 끌어들인 총감독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상 판단에 따른 배임은 기업에 손실을 입히더라도 오너 개인이 착복하는 부분은 없어서 선처 여지가 있으나(최 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받을 무렵, 한화그룹의 오너인 김승연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을 상기해 보라), 횡령의 경우 그렇게 선처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사법부에서 갖고 있음은 이미 상식처럼 통용된다. 다만 최 회장은 그 상식과 더불어, 김씨가 당시만 해도 국내에 압송될 가능성을 낮게 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최 회장의 사건은 기업의 모든 판단은 선장(오너)에게 있으며, 그 선장이 오너 일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자금을 임의로 끌어다 쓰는 것은 더욱 큰 죄이자 다른 승무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더 부정적 판단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면으로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대법원 그리고 전체 사법부의 재벌 범죄 엄단 의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재벌 범죄 등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영원히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