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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그룹오너 '복권' 요구, 사면 때 '등기 서약'이 답?

고전적 형벌권 논의와 상충 가능성…경제기여 논의서 보면 절충 가능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12 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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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광복 70주년을 앞둔 가운데 청와대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경제인 사면에 대한 요청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으로 재벌 일가의 전횡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싸늘해지면서 이번 사면 대상자에 기업인이 최소화되고, 포함된 기업인마저 '복권'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당국이 이 같은 선택지를 택할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현행법상으로는 사면을 받으면 남은 형기가 면제되지만, 복권까지 함께 받지 못하면 상법상 등기이사에 취임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장사의 경우 자본시장법 제24조 임원 결격요건에 해당해 임원을 맡을 수 없게 된다. '복권 없는 사면'으로 풀려난 기업 오너들은 법적으로는 기업의 경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셈이다.

재벌 오너들이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 경영 풍토를 감안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비정상적인 참여라는 달콤한 유혹에 굴복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화그룹이 이 같은 논쟁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삼성과 한화의 ‘빅딜’과 관련한 영향력 행사 여부로 도마에 올랐다. 집행유예 중인 김 회장이 상법상 등기이사에 복귀할 수 없어 공식적인 경영 행보를 할 수 없는데 이런 행동을 했다면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

즉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등기이사가 아닌 만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태인 임원이 일단 영어의 신세에서 풀려나온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가능성에 대한 불씨는 이미 지펴진 것이다.

◆"김승연은 양반…" 최태원 신 경영패턴 낳은 SK그룹식 아전인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면을 해주되 복권은 안 해주는 경우 오히려 사회적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일리 있는 지적이 법조계는 물론 재계 일반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는 실제로 몸은 풀려나왔으나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오너들이 경영 활동을 자제한다면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 특별사면을 행하는 취지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자가당착 우려로까지 이어진다.

다만 우리 재벌 구조의 특수성을 전제로 오너가 경영의 선두에 다시 서서 그룹 전반의 항해를 지휘할 수 있도록 해 주자는 이른바 '복권 앙망설'에는 한계가 있다.

그룹 오너들은 근래 법이 바뀌어 등기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압박이 들어오자 대개 등기 임원직을 사퇴하는 방식으로 그물망을 빠져나감으로써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물론 외국과의 긴밀하고도 중요한 의사 연락과 교감, 특히 경제적 의의가 큰 대규모 사업 추진 등에서 그룹 오너가 실제로 서류상 드러나는 이사회의 직함을 가져야 의미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식 상사법 체계나 비즈니스 시스템에서는 이사회에서 공식 직함이 있는, 간단히 말하면 서류에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을(사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재벌 오너이고 아무리 인간적 유대 관계 등 무형 자산이 풍부한 자라 해도 실제로 이런 이사회의 공식적 위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반대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논의에 따르면 예를 들어 김 회장 같은 경우 한화그룹이 숙원 사업으로 추진 중인 중동 진출을 위해 복권 은전을 입게 된다면 반드시 조속히 등기 임원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할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으로 맞다.

그런데 여기서 김 회장 등 이번 사면 등 관련의 논의 대상이 되는 인사들이 모두 경영의 공백 차질 최소화를 위해 전면적으로 등기 임원직을 맡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예를 들어, 최태원 SK그룹 총수 같은 경우를 이 문제와 겹쳐서 볼 때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다. 최 회장은 동생과 함께 중형을 선고받으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최 회장은 특히 이렇게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법정 공방 와중에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등기 임원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런 대체적인 의견과는 달리, 금년 4월 경제개혁연대는 미등기 임원직에는 여전히 이름을 두고 있어 자숙을 위한 결단이라기 보다는 고액 연봉 논란에서 몸을 피하는 묘수로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내놨다. '꼼수'가 아니냐는 것.

더욱이 지주회사 SK가 SK C&C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고용승계라는 명분 하에 SK의 미등기 임원으로 적을 두고 있던 최 회장은 SK C&C의 미등기 임원 명패를 달게 됐다는 문제가 6월 부각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아무런 사회적 제재나 감시 없이도 특히 옥중의 재벌 오너는 얼마든 경영권 장악의 신 패러다임을 구가할 수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게 됐다. 결국 SK그룹은 이전에 예상치 못했던 장르를 개척한 것.

이런 경우 등을 종합하면 복권이 되지 않을 경우 경영 판단을 전혀 제대로 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복권 문제를 중요하게 꼭 처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상당히 순진무구한 경영학이나 법학의 실험실적 결론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은사권 속성 꿰뚫은 홍준표, 이병철 활용 묘수 짚어야

경영의 일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사면 및 복권 문제에 대해 당국이 일정한 고민을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면과 복권 등 현재 각 기업별로 오너들에게 필요한 조치를 단행해 주되, 이때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형식에 제약을 두는 방법적 강제가 가능한지에 관심이 쏠린다.

등기 임원으로 복귀해 사회적 책임과 법적 감시를 다 하도록 하라는 요청은 단순히 등기가 된 임원이라는 이유로 연봉 공개 등 대중의 어찌 보면 관음증적인 시선에만 노출되도록 하라는 요청만은 아니다.

영국 판례법은 셰도 디렉터 즉 '그림자 이사'가 회사를 흔드는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이론을 축적해왔으며 90년대 말, 2000년대 초입부터 우리 법학계에서도 이를 직수입해 논의를 진행하는 흐름이 대두된 바 있다.

등기 임원 복귀 강제론은 이 같은 맥락을 승계하는 것이다. 사면이나 복권 등에 조건을 부여해 기계적인 법집행 대신 사후적 교정 관리나 역할 감시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정통적 독일식 법학, 이를 계수했고 다른 한편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고권작용 논의의 과거를 가져온 일본식 이해, 또 이 일제시대 일본 법학의 영향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우리 법학은 국가가 범죄인의 처리에 '협상' 등을 하는 게 맞냐는 부정적 시각을 보일 수 있다.

특히 사면이나 복권이라는 처분을 할 때 이것이 조건을 달 수 있는 것이냐는, 즉 '부관과 친한' 것이냐는 행정법적 논란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법무부 근무 시절 사면권은 종래 국왕의 은사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언론에 기고하면서 정치권에 의한 무한정한 또 큰 규모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을 살필 시기다.

본래 법적 시스템에서 탄생했다기 보단 정치적 이해에 의해 탄생한 장치인만큼, 반대해석상 일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사면권 등 행사는 통치행위로 이해하고 고민 끝에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사용한다는 '전제만 있다면' 그에 대한 제약을 가할 때에도 가급적 법적인 도그마에 너무 휘둘리지 않도록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5월 쿠데타 이후 이런 유연성을 발휘한 전례가 없지 않다. 박정희 당시 소장이 일으킨 군사 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경제인 대부분을 숙청 대상으로 몰았지만 경제 재건에 이들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따라 이병철씨 등의 신변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처리 방향을 틀었다.

사실상 재판에 의한 처벌, 사면 등 공식적 절차는 아니었지만 실상을 보면 대체로 사면을 해 줄 테니 경제 발전에 기여하라는 조건을 붙인 석방 처리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셈이다. 당시 실세였던 김종필씨 역시 해외에 가서 하나씩 '물어오라'는 뜻으로 풀어준 셈인데 실제로 다들 잘 했다는 식으로 회고를 하고 있다.

결국 SK식 변종 패러다임 등 여러 문제를 철하기 위해서라도 기업 관련 사면이나 복권을 단행할 때는 기본적으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단행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를 조심스럽게 해 주더라도 반드시 사회적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실질적 보수로 생각되는 약 어느 정도 범위의 보수를 받는 등기 임원으로 복귀한다'는 일명 '등시 서약'을 받는 등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박근혜 정권의 사면은 '창조경제에 기여 유발'이 아닌 '치적 남기기에 급급해 기업에 끌려간 사례'로 글로벌 형사법 연구의 최악 케이스로 남을 가능성마저 있다. 이런 우려는 한국 재벌의 꼼수 능력을 감안할 때 전혀 맹랑한 지적은 아니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