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아하!] 삼성 경영권 조정과 유책주의-파탄주의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07 10:47:5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삼성가의 이혼 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가사조사에서 임 부사장이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인데요. 그간 이 이슈를 둘러싸고 여러 용어가 난무했고, 사건 여파 자체도 클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잠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장은 지난해 10월 남편 임 부사장을 상대로 이혼 조정신청을 냈지만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양측이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2월부터 본격적인 소송 절차를 밟게 됐고요.

현재 이 문제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가사조사는 판사가 아닌 가사조사관이 진행하는 절차인데요, 이혼소송에서 쉽게 합의될 것 같지 않고 이견이 큰 경우, 법원이 가사조사관을 통해 이혼 당사자들을 불러 결혼생활 내막과 갈등상황, 혼인 파탄 사유 등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가정 지키고 싶은 소망' 발언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일종의 '터닝 포인트'로 상황이 크게 복잡해질 여지, 여파를 키울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 부사장이 이혼할 뜻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으로, 향후 두 사람 간 이혼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즉 그간의 다툼이 이혼 이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양육권과 친권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었다면, 앞으로는 이혼 자체 그러니까 이혼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사장은 결혼 15년 만인 지난해 이혼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임 부사장이 움직이게 되면 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우리 이혼 관련 재판은 아직 유책주의를 대전제로 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책주의란,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에 이혼의 책임이 있는 경우에 다른 당사자만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파탄주의란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 책임이 어느 일방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양쪽에 모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안 되는 부부이므로 어느 쪽이든 관계를 깰 수  있게 문을 열어주자는 주의죠.

우리 민법 제840조는 부부의 일방이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를 5개 갈래로 언급한 다음에, 이와 더불어 제6호에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표현을 두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항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쪽으로 가면 파탄주의, 이를 앞의 5개 사유에 대해 부수적인 것으로만 보고 해석을 극히 좁게 하면 유책주의가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판례는 파경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고, 아주 예외적으로 혼인 계속의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순전히 오기(傲氣)'를 부리거나 '보복적 감정만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유책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현재 대법원에서는 이 해석론을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바꿔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여는 등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일부 변호사들은 간통죄 위헌 결정 상황에서 유책주의도 깨질 것으로 보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운 것에 주목한 것인데요. 반대로 간통죄 폐지를 주장한 변호사 중에도 간통을 형사 처벌하는 게 옳으냐 하는 문제와 혼인을 유책배우자가 깨도록 허용하는가의 문제는 논리 일관성이 없는 다른 문제라고 보는 이도 있는 등,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로 보입니다. 

다시 삼성가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 사장의 의중은 현재 양육권 문제 등을 다투는 정도까지로 한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남편인 임 부사장측이 물러섬이 전혀 없이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가사조사의 경우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경우를 상정하는 제도로 이미 설명드렸는데요, 임 부사장 측이 5월 하순 가사조사와 관련한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이를 검토한 재판부에서 일반가사조사 명령을 내렸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즉 현재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던 사정이 임 부사장의 "내가 왜 그렇게 (양육권 등 여러 문제에서) 양보를 해야 하는데?"라는 식의 기본 입장 때문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내가 왜 이혼을 해 줘야 하는데?"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 스탠스가 좀 더 강경해진 셈이지요.

문제는 파탄주의를 택하는 국가라면, 소송을 제기해 이혼을 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유책주의 국가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배우자가 속된 말로 바람을 피웠다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 그냥 사랑이 식어서라는 이유로 쫓아내는 식의 이혼은 아직 불가능한 셈입니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기보단 대단히 어렵다고 해야 정확하겠지만요. 다만 '진흙탕 싸움'을 동반하는 어려움인지라, 재벌가 3세인 이 부사장으로서는 쉽게 결단할 문제가 아닌 것은 기정사실이겠습니다. 

과거 혼인의 신성함을 중요시하던 시기에는 많은 국가들이 유책주의를 택했고, 이후 파탄주의로 차례로 변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송이 대단히 '지저분해지는' 등 도저히 묵과하기 어려운 잔인한 상황이 연출되는 데 대한 반성적 고려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없는 문제를 만들어 내다시피 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진 것이지요.

자,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라는 프리즘으로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물론 재판을 통해 이 사장이 그간의 임 부사장 행적을 마구 공격해 파탄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꼬투리가 실제로 있는지, 또 행여 그렇다 해도 실제로 그런 전쟁을 택할지가 간단찮습니다.

세간에서는 이 사장이 아버지가 쓰러지고 난 이후 이혼 소송을 진행한 것도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많이 닮았고 일 욕심도 많다고 알려져 있죠. 최근 '면세점 대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편 삼성의 3세 승계 문제에서 남매인 재용·서현씨와 어떻게 몫을 나눌지에 대해서는 아직 추측이 구구합니다. 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 등 여러 이슈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인데요. 전체적으로 장남에게 유리해진 게 아니냐는 해석도 일각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고 잔인한 소리로 들리겠으나, 지금 이혼 카드를 꺼낸 것을 삼성가의 분리 가능성과 승계 문제에서 한층 유리한, 적어도 불리하지 않은 고지를 점하기 위해 화목하지 않은 가정은 미리 깨고 간다는 전략이었다고 거칠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리스크 관리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임 부사장 발언으로 리스크는 관리 가능한 크기를 넘어섰고, 오히려 새로운 리스크로 진화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결혼 생활 유지 자체도 여하한 희생을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그 판을 깨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기어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 고통과 때로 지저분하기까지 한 다툼이 모두 유책주의 채택의 결과물은 아니겠으나, 이번 삼성가 이혼 갈등이 복잡해진 데에는 적어도 한몫을 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