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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고 후 제2 인생, 무료컨설팅 나선 최영호 강사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8.05 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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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 저는 '쓰레기'였습니다. 이 말을 꼭 써 주세요."

이쯤되면 '설상가상'이다. 이미 최영호 강사는 '싸구려 강사'라는 타이틀로 나름 이름을 얻고 있다. '싸구려 강사 최영호의 팩트&해석' '싸구려 강사 최영호의 홈런&롱런' '싸구려 강사 최영호의 스타트라인&데드라인' 등 그간 내건 강의 타이틀들만 보더라도 싸구려라는 단어를 자기 브랜드로 삼고 있다.

싸구려 이미지가 붙으면 나중에 개선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케팅에서는 이런 상황을 크게 권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싸구려 강사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이어 아예 자신의 과거를 쓰레기라고까지 얘기한다.

요약하면 과거 쓰레기였던 (현직) 싸구려라는 것인데, 무료로 강의와 컨설팅을 해온 수천회의 경력을 갖춘 그에게 이런 짠 점수를 매기는 이는 많지 않다. 속된 표현으로 감 떨어지는 강의나 강사에게 냉정한 업계에서 오히려 직업적 측면의 호평과 인간적 흠모를 얻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는 1978년 서울 태생이다. 하지만 사업을 크게 하며 바쁘게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부모님 때문에 오손도손 가족 모두가 모여 지낸 기억이 희미하단다. 경제적 측면으로만 한정하면 유복하되 자신을 돌본 누나와 단둘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

이런 생활은 결국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전학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대구에서 마쳤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군 제대 직후까지만 해도 그는 특정 아이템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이 다소 두드러진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청소년기에는 옷 등 패션에만 미쳐 있었다.

"심지어 쇼윈도를 깨고 옷을 훔치는 꿈까지 꿀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처럼 이기적이면서 외곬이던 사람은 군 제대와 대학 졸업 무렵 집안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취업이 막 됐지만 단돈 7만원을 들고 상경할 정도로 궁핍했기에, 그는 이렇게 살면 뭐 하냐는 일종의 자포자기에 빠졌었다.

일을 제대로 안 하는 베짱이 같은 직장인이었다는 게 아니라, 겁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렇게 붕 뜬 듯한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출장길에 차량이 대파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신기한 것은 그와 사장 모두 사고상황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다친 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 삼아 그는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새로운 삶을 찾기로 했다고.

이 같은 사고방식의 변화는 그를 강사의 삶으로 이끌었다. 패션마케팅을 전공한 데다, 11번가와 네이버에서 마케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예리한 분석 능력을 자랑한 바 있는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실제 2008년 이후 강사 생활에 본격 투신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강사 경력은 길지 않다. 그러나 1000회 이상의 무료 강의와 3000회 이상 무료 컨설팅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위기에 몰려 길을 잃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

경쟁이 치열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브랜딩해야 하는 강사 생활에서 이런 활동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최 강사는 "강사 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고객들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가게가 잘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서 눈길을 끌어야 한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거기 익숙해져 안주하면 안 된다. 다른 뭔가를 시도하거나, 빨리 팔고 빠지거나 그대로 성공에 취해 그대로 답습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따끔한 충고이자 무료 컨설팅의 요체다. 이런 논리처럼 자신과 강사 생활에 대해서도 "'롱런'하려면 항상 바뀌어야 한다"고 채찍질한다.

트렌드에 마케팅, 이 마케팅에 리더십을 접목시켰다. 프레지와 스피치, 1인 브랜드 강의를 도입한 것도 그다. 그래서 그는 잘난 사람이 많은 세상이고 어려움이 많은 강사 세계지만, 진입 장벽이란 애초에 자신에게는 적용 자체가 안 되는 단어였다는 큰 소리를 친다.

이렇게 부단히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가는 그이기에, 무료 강의를 하며 얻은 수천의 인맥이 어쩌면 벌 수 있었던 당장의 거금보다 더 소중하다고 제언하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 무슨 무료 컨설팅일까 싶은 상황에서 오래 살았고, 또 지금도 결코 부유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또 다른 삶을 살게 됐으니 이제 보답하며 살자는 교통사고 직후의 제 자신에게 신의를 지킨 거죠."

현재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신을 믿고 결혼해 준 부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장인 장모님을 모시며 산다. 그가 거주하는 도봉구 집에서 바라보는 산자락과 세상은 어떤 색깔이고 어떤 프레임으로 다가올까. 그가 내놓을 새로운 강의 기류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