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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환갑이라도 일 못하면 매질' 막장파국 롯데 가족문화

전지현 기자 기자  2015.08.04 10: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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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달 초 중국사업 실패를 이유로 신격호 총괄회장이 동생(신동빈 회장)을 심하게 질책하고 때렸다. 그 이후로 동생이 신 총괄회장을 찾아오지 않았다."

최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폭로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나노기술과 사물인터넷으로 가상을 현실화하는 21세기에도 자식을 때리는 아버지가 있었다. 더욱이 국내 재계 5위 대기업 롯데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신을 질책한다는 이유로 환갑이 넘은 아들을 혼내고 폭행했다.

서구권에서는 3살 아이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어린이에게 손을 대면 '아동학대'로 쇠고랑을 차게 한다. 이런 와중에 타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 일화는 가히 사회면에 실릴만한 뉴스일 법하다. 

그동안 롯데는 '베일 속 경영'을 추구해왔다. 사소한 것이라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탓인지 언론에서 마주한 롯데는 모든 면이 폐쇄적이었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보수성이 강한 기업이라고 풀이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바라본 롯데는 음흉하기까지 하다.

한국 롯데를 좌지우지한 최대주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롯데홀딩스가 있었고 그 위에는 직원이 단 3명뿐인 포장지 제조업체 광윤사가 있다. 이 역시 이번 사건이 조명되지 않았더라면 베일 속에 묻혔을 롯데의 지배구조다. 이번 일로 한국 국민들은 참 별걸 다 알게 됐다.

신격호 회장의 '손가락 경영'은 불도저 같은 밀어붙이기식 막무가내로 통하던 건설기업에서 통용되던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기 속에서나 들어봤을 듯한 내용이다. 416개 계열사가 복잡하게 연결된 순환출자 구조에 총수 일가가 기업정점에 있는 구조는 연매출 83조원 대기업이 가진 지배구조라기엔 터무니없는 '후진적 기업' 생태다.

이런 배일 속 경영 때문인지 유난히 롯데라는 기업 안에는 '스타 경영자'도 없다. 당장 경쟁사만 보더라도 신세계는 구학서 전 회장, 허인철 전 사장, 현대백화점은 경청호 부회장 등 기업 롤모델이 되는 대표 CEO가 여럿 있지만 롯데하면 떠오르는 스타 경영자가 없다.

헌데 지금껏 롯데라는 기업이 70년간 기업을 이끈 신 총괄회장의 구두지시가 통용되는 '황제경영'을 해왔다는 소식을 접하니 구시대적인 오너마인드 탓에 이번 사단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공감마저 든다.

롯데라는 기업의 짠 임금은 수차례 거론됐다. 지금에서야 신동빈 회장의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상대적 우위의 보수를 지불하는 기업을 집어삼키며 평균 임금을 높였지만 정통성을 가진 롯데 계열사는 여전히 급여가 짜다.

이런 영향인지 기업의 뒷돈 거래라는 어두운 작태를 언급할 때 종종 이름을 올리던 곳이 롯데였다. 한때 제조업체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아 다른 곳보다 특히 롯데 쪽 납품이 제일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작년 롯데자이언트 선수 사찰 역시 이 같은 구시대적 롯데 기업문화에 대한 방증이다. 연매출이 83조원이 넘건만 사격, 배구 등 적자구조를 가진 스포츠는 뒤로 하고 국민 인지도가 높은 야구에만 손을 댔다.

야구 구단 중 유일한 수익구단이지만 원정경기를 위해 투숙한 선수들의 행동을 CCTV를 달아 몰래 훔쳐보는가 하면 한때 롯데자이언츠의 스타선수였던 이대호 선수를 결국 돈 몇백만원에 둥지를 옮기는 치졸한 선수로 전락시켰다. 

3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김포공항 입국장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며 '롯데 매출의 95%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한국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상품을 생산해서 수출하는 다른 제조업체들과 달리 유통업체 특성상 국내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매출 대부분인 95%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한국기업이라고 말하면서도 벌어들인 돈을 이 땅에 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실천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신동빈 회장은 운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과거 일본 롯데가 일본 경제침체로 '잃어버린 20년'에 허덕이는 중에 텃밭뿐이던 한국 유통시장에 한국 롯데가 씨앗을 뿌렸고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함께 몸집을 불렸다.

한국 롯데가 지금처럼 대기업 반열에 오를 줄은 신격호 총괄회장도 예측할 수 없었을 만큼 한국소비자는 그들에게 막강한 자본을 안겼다. 상당 부분의 정보가 감춰진 '오리무중'한 롯데. 누구에게 승계가 이뤄지든 볼썽사나운 이번 가족 간 전쟁을 통해 밝혀진 롯데의 음흉함은 믿고 따라준 소비자를 넘어, 한국 국민을 배신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