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17년 한국 롯데는 창립 50주년, 2018년엔 신격호 총괄회장 롯데창립 70년을 맞는다. 그룹의 거대 기념일을 목전에 앞둔 만큼 올해는 롯데그룹 승계구도를 구체화할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변수는 지난해 말 발생했다. 갑작스레 신동주 일본롯데부회장을 해임시키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굳어진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이라는 경영승계 구조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쪽으로 정리·재편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엇갈린 두형제의 진실 공방전으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 재계 호사가들은 신동빈 회장이 힘을 얻기까지 아버지 뜻에 맞춰 순한 양처럼 행동하다 적절한 때가 오자 칼날을 드러낸 '치밀한 인생 계략'을 펼친 것이라는 추측마저 내놓고 있다.
◆최초 롯데 쿠데타 주역 신동빈
지난해 12월26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임시이사회를 열고 롯데 부회장·롯데 상사 부회장 겸 사장·롯데아이스 이사 등 신동주 전 부회장 직책을 해임했고 1월8일에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도 해임하면서 일본 롯데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후 지난 7월, 신동빈 롯데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아버지가 결정한 일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모든 일에 대한 경영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히며 일본롯데홀딩스에 회장직을 맡은데 대해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듯 보였다.
최근에도 신 회장 측은 "신격호 회장이 매일 보고받고 적극적으로 지시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펼쳐 왔지만 직후 불리한 상황에 놓이니 "고령 때문에 판단이 어렵다"라며 갑자기 말을 바꿨다.
더군다나 신 전 일본롯데 부회장 역시 30일 KBS와 인터뷰를 통해 "신동빈 (일본 롯데)대표이사 취임은 아버지 의사가 아니었다"고 주장,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는 추정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아울러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월, 일본 방문 뒤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일본 롯데는 전문경영인인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이 계속 맡을 것"이라며 일본 롯데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이후 일본롯데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서는 등 앞뒤가 바뀐 행동도 보였다.
조용하고 학자적 분위기를 지닌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달리 '아버지와 닮은 꼴'의 공격적 경영과 신격호 총괄회장 뜻대로 '인큐베이팅' 인생을 걸으며 눈에 들었던 신동빈 회장 전술에 신 총괄회장마저 완벽하게 속은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쓰쿠다와 손잡고 일본롯데까지 '꿀꺽', 신격호 몰랐나?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30일 공개한 신 총괄회장 롯데홀딩스 이사진 해임 지시서에는 신동빈 회장, 쓰쿠다 다카유키(CEO), 고바야시 마사모토 (CFO), 카와이 카츠미(CMO) 등 중역들이 이름을 올렸다. 아라카와 나오유키와 고초 에이이치 등 이사도 포함됐다.
최근까지 노다 미츠오, 나카이 세이, 이소베 테츠 등이 이사로 활동했으나 직위를 상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가 형제간 지분 확보 경쟁이 표면화된 2013년 초반까지 이사회 구성원으로 등재된 임원 중 현직 등기임원은 롯데홀딩스 제품 담당 카와이 카츠미 이사가 유일하다.
대부분 이사진이 최근 수년 사이 바뀐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르는 등 이사진 변화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1월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해임된 뒤, 두달만에 등기이사 3명이 잇따라 사임하고, 새 등기이사 1명이 선임되는 등 현재 신격호, 신동빈 2명을 뺀 이사진 5명 가운데 최소 3명, 최대 5명 모두가 친 신동빈파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신동빈 회장의 배후세력으로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가 지목된다.
신 전 부회장은 3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롯데홀딩스 임원 해임과 관련 "신 회장과 쓰쿠다 사장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곡해된 정보를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전달해 영구추방에 가까운 상태가 됐다"며 "중국사업을 시작으로 한국롯데 업적 부진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이 일·한 양쪽의 경영을 맡게 된다는 신문기사가 나왔지만 아버지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신 총괄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쓰쿠다 대표는 일본롯데홀딩스 사장은 경영방에 있어 신 전 부회장과 여러 차례 갈등을 일으키며 관계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직후 쓰쿠다 대표가 자리를 대신해 일본롯데 경영을 맡게 되자 신 전 부회장의 해임을 그가 적극 주도했다는 추정에 힘이 실린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쓰쿠다 대표가 최근 1년, 원로 이사 등을 대거 해임한 것에 신 총괄회장이 분노해 지난 3일 쓰쿠다 대표 해임을 지시했으나 이를 무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 아버지 닮은 아들·뛰어난 눈속임?
두 형제 결혼 사례만 봐도 형과 달리 신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학원 동기생인 일본 여성과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며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전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그려 놓은 그림에 맞춤형으로 '인큐베이팅화'된 신동빈 회장과 달리 신동주 전 부회장은 묵묵히 자신의 주관대로 움직이는 행보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한살 터울의 형제지만 성향과 기질마저 다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부회장은 온순하면서 순수하고 학자 같으며 다소 방어적인 반면, 신동빈 회장은 냉철하면서 매우 공격적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었다.
두 형제의 결혼식 일화 역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신동빈 부회장의 결혼은 국내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힌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일본으로 건너간 신격호 총괄회장은 다케모리 하쓰코 여사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신 총괄회장과 같이 신동빈 회장도 일본인을 아내로 맞았다.
다케모리 하쓰코 씨는 부친은 일본 헌병 대위 출신으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당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삼촌은 1930년대 주중 일본대사를 지낸 시게미쓰 마모루로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당시 중상을 입었던 인물로 1945년 미 전함 미주리호에서 거행된 항복문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신동빈 회장 부인은 일본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다이세이건설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차녀 오고 마나미와씨다. 한때 일본 왕실의 며느리 후보로 거론됐을 정도로 명문가 규수로 신 총괄회장이 둘째 며느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그 때문인지 결혼식도 화려했다. 7시간이 넘는 일본전통 혼례식에서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등 일본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결혼식에 대거 참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인 출신이었던 신 총괄회장이 전후 일본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신 총괄회장의 성실함도 있었지만 결혼으로 이어진 정계 인맥도 주효했을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 결혼 인맥도 일본 경영에 있어 효과적인 영향력을 줄기 때문에 아버지의 기대가 컸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일본롯데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롯데의 일본 사업을 이끌었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은 지난 1992년 3월7일 38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LA에 거주하던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 씨의 차녀 조은주 씨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가족만의 모임'으로 치러졌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예식을 올렸고 예식 후 롯데월드 호텔 3층에서 열린 피로연에도 초청받지 않은 사람의 현장 접근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