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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일간의 사투 "경기도 메르스 현장, 100인에게 듣다"

메르스 사태 중심 섰던 의료진·자가격리자·전문가들 거침없는 의견 쏟아내

이금미 기자 기자  2015.07.29 18: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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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경기도는 지난 70여일간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대응과정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29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열린 '메르스 현장, 100인에게 듣는다' 토론회에서는 메르스 사태 중심에 섰던 의료진과 자가격리자, 전문가들의 거침없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 원미정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장, 메르스 민관네트워크 참여 병원 등 전문가, 열여덟 번째 확진자였다가 완치된 김복순씨(77), 자가격리 경험자, 구급대원, 자원봉사자 등 모두 100여명이 참석했다.

◆거버넌스와 민관네트워크 신속 가동 

이날 토론회에선 경기도 메르스 대응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와 대안이 제언됐다.

임승관 아주대 감염내과 교수는 "확산 초기에 '병원감염'이라는 메르스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경기도와 도교육청, 도의회, 전문가가 참여하는 거버넌스와 현장을 기반으로 한 민관네트워크를 신속하게 가동한 것이 경기도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호평했다.

임 교수는 또 "민관합동 의료위원회를 통해 수원병원을 중점치료센터로 지정하고 신속한 소통이 가능한 의료전달 체계를 마련하는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한 것도 메르스 사태 진압에 주효했다"고 짚었다.

최보율 한양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경기도 종합대응 체계 보완 및 발전방향' 패널토론에선 현장중심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민관네트워크를 통해 수원병원에 파견돼 메르스 치료를 도왔던 최원석 고려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람 간 전파되는 질병은 공공의 문제, 보건안보의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신뢰와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이번 경기도 대응과정은 민간의료와 공공의료가 경쟁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더욱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탁상우 미국방부 역학조사관은 "공중보건 감시체계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필요한 현장으로 다시 신속하게 보내주는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최보율 교수는 "메르스 대응을 평가하는 데 여러 영역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본질과 허상을 일깨워줬다"면서 "향후 10년 뒤에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보건의료계는 메르스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복순씨는 "나라에서 신경을 써주고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해줘서 건강하게 살아났다. 애쓰신 의사와 간호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61번 확진환자의 딸로 어머니를 보살피다가 자가격리됐다는 장모씨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자기최면을 걸며 강한 정신력으로 병을 이겨내셨다"며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찰 정도로 후유증으로 고생하신다. 완치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원활한 정보 공유와 예산·인력 지원 절실

메르스 사투 최일선에서 땀을 흘렸던 의료진, 보건소 관계자, 구급대원 등은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소개하고, 보다 원활한 정보 공유와 예산 및 인력 추가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기병 평택성모병원장은 "처음 2주 동안은 보호장비도 없이 무방비로 환자를 봤다. 이번 경험으로 초기대응 컨트롤타워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의료진에 대한 교육과 훈련 등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중점치료센터로 지정됐던 안주희 수원병원 내과과장은 "이번 사태로 희생을 치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감염병 대응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또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길을 찾느라 다시 고생하지 말고 있는 길을 탄탄히 닦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조경숙 경기도간호사협회장은 "메르스 확진환자 중 39명이 보건의료 종사자였고 이 중에 15명이 간호사였다"며 "1명의 간호사가 8명 이상의 감염병 환자를 보면 감염병이 증가한다고 한다. 감염 관련 인력 보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동숙 평택소방서 구급대원은 "초기에는 환자 정보파악이나 이송병원 파악이 어려웠다"면서 "앞으로 감염병 관련 민관네트워크가 구성되면 소방분야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메르스 피해자 심리치료를 지원했던 오민숙 평택시정신건강증진센터 상임팀장은 "심리치료를 위해 우선 대상자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유가족의 경우 치료비 지원 기한이 1개월로 짧아 실질적 지원이 어려웠다"며 "예산확대가 필요하다"고 그간 고충을 토로했다.

◆남경필 "메르스와 사투 벌인 모든 분들이 영웅"

메르스대책본부장과 민관합동 의료위원회 공동본부장으로 도내 메르스 사태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남 지사는 토론회에 앞서 "메르스 사태 초기에 우리는 허둥대고 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경기도에서 시작한 새로운 협업과 소통이 대한민국의 스탠더드가 되면서 메르스를 하나하나 극복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남 지사는 이어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어떤 질병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남 지사는  또 "토론회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영웅"이라고 격려한 뒤, "잘못한 것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들"이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경영상 어려움을 무릅쓰고 협력한 병원, 몸을 던져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 의료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도민들이 마음을 하나로 합해 메르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에게는 "메르스 사태로 국민의 신뢰와 의료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깨졌다. 이를 회복하기 위한 스탠더드를 경기도가 만들 것이다. 추경과 내년 예산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부탁했다.

남 지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시작의 길에서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생생한 목소리는 새로 스탠더드를 만드는 데 귀중하게 쓰일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감영병관리본부'와 민간네트워크 강화

경기도는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을 현재 준비 중인 감염병관리대책에 적극 반영해 구체적인 도 차원의 감염병관리대책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대책에는 도가 메르스 사태를 성공적으로 수습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민관네트워크와 수원병원의 중점치료센터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과 부족했던 역학조사관 확충, 정보시스템을 보완하는 방안을 담는다.

우선 경기도가 전국 광역단체로는 유일하게 운영 중인 '경기도 감염병관리본부'를 감염병 관리 컨트롤타워로 삼고, 민간의료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공공의료기관인 경기도의료원을 감염병 대응 중심 의료기관로 지정하고, 도내 응급의료기관으로 운영 중인 도내 4곳의 대형병원을 권역센터, 음압병상 등을 갖춘 대학병원급 병원 10곳을 외래거점병원으로 정하는 '1+4+10 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두 번째로 메르스 사태를 키운 요인 중 하나인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와 보건소의 부족한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도는 경기도감염병관리본부 내에 민간역학조사관의 역량을 강화해 권역별로 배치하는 동시에 시·군 보건소마다 감염병 전문직을 충원할 방침이다. 또 보건소와 민간의료기관과의 네트워크도 강화하기로 했다.

세 번째로 원활한 정보공유와 소통을 위해 감염병관리 정보시스템을 구축한다. 감염병 예방부터 발생 시 질병별, 유행단계별 감시시스템을 마련해 감염병 발생단계부터 대응까지 도민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시스템에는 감염병 격리병상, 백신, 장비, 방역물품, 질병모니터링 데이터 등을 빅데이터로 구축해 상시 감시체계와 대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경기도는 다음 달 초 '제2의 메르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감염병관리대책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