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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44]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 "더불어 사는 예술인 마을" 소망

'힘든 예술인 삶' 해결 위한 마을 조성…현재 20여명 연희동 생활

이지숙 기자 기자  2015.07.28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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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달 말 두 명의 배우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2011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작활동으로 버는 한 달 수입이 50만원 이하인 문화예술인이 무려 51.4% 달한다. 정부는 이러한 생활고로 인한 예술인들의 죽음을 막고자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은 이러한 예술인의 삶 개선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곳이다. 함께 모여 살며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자는 게 이들의 목표. 27일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을 찾아가 '예술인 마을'을 꿈꾸는 임대식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32.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은 옛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연희동 한 골목길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갤러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 100㎡의 공간에 그림들이 걸려있고 작가들의 작업실로 쓰일 132㎡ 규모의 지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갤러리가 주는 단어의 무게감이 싫어 '살롱'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곳은 커피 볶는 냄새가 나고 살롱 마스코트인 강아지 카노가 반겨줘 친근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방문객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꾸몄다는 살롱 한 편에는 이미 몇몇 작가들이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의 가장 큰 목표는 '흔들리지 않는 예술인 마을을 만들자'입니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이 안에서 조합원들이 공동체로서의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설립을 준비해온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은 올 4월6일 출범했다. 협동조합이지만 출자금도 없고 목적사업을 통한 배당금도 아직 없다. 문화예술인이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고 협동조합 운영을 위한 소정의 월 가입비 3만원만 내면 된다.

임대식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 대표는 조합에 가입한 작가들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 이들의 '예술인 마을' 연희동 입주를 돕고 있다.

"함께 모여 사는 '예술인 마을'을 만드는 게 1차 목표입니다. 마을이 형성되면 작가들이 이 안에서 서로 시너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현재 '함께 무엇을 하자'는 목표는 없지만 같이 살다보면 다양한 유기적인 일들이 벌어지겠죠. 교육사업 등을 통해 이익이 나면 젊은 작가들에게 재투자하고 이를 통해 조합이 확대되면 또 다른 공공사업이 생기고, 미술관 등도 만들 수 있겠죠."

임 대표가 이러한 연희동 예술인 마을을 꿈꾸게 된 건 상업화되지 않은 98%의 예술인들과 함께 삶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현재 약 90명의 조합원이 모인 상태로, 120명이 모이면 좀 더 조합 이름을 알리고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20명가량은 이미 연희동 주민이 됐다. 

"현재 상업적으로 주목받는 예술인들은 전체의 2%가량으로 나머지 98%의 예술인들은 을(乙)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어요. 예술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생계 문제로 피폐해지기 쉬운 직업이기도 하죠. 18년 가까이 큐레이터로 일하며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이러한 상황의 해결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인 마을 구성까지 흘러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은 그동안 전국 곳곳에 생겨났던 예술인 마을처럼 관광지화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관광사업보다는 작가들이 이 마을의 주민으로 지내며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기반을 닦는 게 중요하다는 것.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예술인 마을이 있지만 관광상품으로 상업화됐고 향후에는 지역 집값이 오르며 정작 예술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는 등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작가들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들을 더 이상 쫓기지 않게 직접 주택을 구매하고 마을주민이 돼 이 안에서 서로 시너지가 발생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임 대표는 협동조합 안에서 예술인들이 뭉치는 것도 조합활동의 메리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 등을 함께 기획하고 조합을 통해 들어오는 일감을 내부에서 각각 분야에 맞는 작가들에게 재분배하는 등 협업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현재 조합이 사용하고 있는 '살롱아터테인'도 조합원들의 작품 전시로 내년까지 일정이 꽉 찬 상태다. 각자 지닌 네트워크로 소개를 통해 조합에 가입하다보니 홍보효과도 커 전시 등을 개최할 때 손님도 상업 갤러리 못지않게 많이 오는 편이다.

연희작가자치협동조합은 설립 후 약 4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만큼 이제 홍보활동에 전념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2년 동안 임 대표가 작가들과 진행해온 인터넷 라이오 팟캐스트도 활발히 전개할 예정이며 현재 공사 중인 지하작업실이 완성되면 조합원들의 작품활동도 좀 더 수월해질 것으로 진단된다. 예술인 마을이 정착되면 '연희동 이야기'라는 책도 출판한다는 목표다.

"협동조합 자체가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엔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많은 작가들이 생계문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못하고 그럴 시간도 없는 게 현재 예술계 현실이에요. 예술인 마을을 통해 작가들이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실제 삶 또한 윤택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