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사이드컷] 아무 데서나 털썩…당신도 땅바닥족?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7.14 10:27:52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전철역에 찾아온 여름 탓인지 흰 상의에 파란 바지를 멋지게 차려입은 청년이 있었는데요. 바쁜 도심지 지하철역 구내 벤치와 안 어울리는, 누운 모습이었습니다.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지 이어폰을 꽂은 채 손까지 흔들흔들하면서 망중한이라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요. 마치 해변가 휴양지 벤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자리를 잘못 잡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지하철이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올라타고 사라진 청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저런 모습, 요새 들어 눈에 띄곤 합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1999년 여름에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땅바닥족(族)'이란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도쿄의 시부야, 하라주쿠 등에서부터 길바닥에 주저앉아 잡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인데요.

공공장소에서 이전에 없던 행동을 해 눈길을 끈 이들. 해진 청바지 차림으로 편하게 앉는 건 물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까지도 거리낌이 없이 편한대로 행동한다고 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방에서는 조신하게 꿇어앉고, 길에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서서 기다리는 전통적인 일본인 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신인류였던 셈이죠.

당시 도쿄신문이 하야시 미치요시 도쿄여대 교수의 "가정 내의 규율도 약해졌고 수치심도 사라졌기 때문" 이라는 발언을 빌려 이들을 진단한 것을 국내 언론이 해외 토픽으로 보도했던 것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이때 일본은 버블시대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는 중이었죠. 너무도 힘든 세태 속에서 남을 의식하는 기본틀마저 무너져 이런 현상이 일어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우리 서울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목격되는데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작금의 경제 침체와 맞물려 힘든 와중에 정신줄 놓고 아무 곳에나 주저앉던 일본인들의 뒤를 우리도 따라가는 듯 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