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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천자에 담긴 순서의 묘미

최지혜 학생기자 기자  2015.07.08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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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는 물건의 순서를 정할 때 '1번, 2번' 또는 '첫 번째, 두 번째'와 같이 그 차례를 매기곤 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순서 매김 방식'이죠. 그렇다면 숫자가 아닌 '천자문'으로 순서를 표기한다면 어떨까요? 천자문 배열을 이용해 대상에 순번을 매긴 과거 조선의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어린 시절 특유의 운율을 넣어 여기저기 부르고 다니며 놀던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부터 시작해서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데요. 한 구당 네 자씩 250구, 그래서 총 1000자의 다른 한자로 이뤄진 책입니다.

천자문이 전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한문의 입문서로 줄곧 사용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를 위시해 천자문을 이용한 조선의 순서 매김 흔적도 찾아볼 수 있죠.
 
조선의 정궁 경복궁에서 사정전에 그 모습이 남아있는데요, 사정전 문을 어서면 좌우로 위치한 창고가 있는 것을 보셨나요? 이 창고는 바로 금, 은, 비단 등 조선 왕실의 사유재산 보관소였던 내탕고(內帑庫)입니다.

열 개로 이뤄진 이 내탕고 편액(扁額)에는 '천(天)자고·지(地)자고·현(玄)자고' 순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열 개의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바로, 창고를 천자문의 배열을 이용해 그 순서를 매긴 흔적이죠.

덧붙이자면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난 후에 도성공사를 계획할 때도 그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맞춰 나눴습니다. 일정 거리를 두고 97구간을 나눠 각 구간별로 천구간·지구간·현구간·황구간 등의 이름을 붙였죠. 천자문의 97번째 한자는 '조(弔)'인 것을 보면 마지막 구간의 이름은 조(弔)구간이었나 봅니다.

또 임진왜란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격퇴했던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서도 '천지현황'의 순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북선은 파괴력이 크고 사정거리가 긴 천지현황포로 무장했다고 하는데요. 천자포는 사정거리 500m가 넘는 장거리, 지자포는 350m, 현자포와 황자포는 약 300m로 포의 세기에 따라 순서를 매겼음을 알 수 있죠.

이렇게 어떤 대상이나 물건에 순서를 매길 때 천자문을 사용한 사례들을 살폈는데요. 오늘날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듭니다.

선거구나 도로명, 그리고 학급 등에 순서를 붙일 때 천자문의 순서를 적용해본다는 상상을 하니 이것 또한 색다르게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