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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119] '여성농민공동체' 언니네 텃밭 "한 꾸러미 하실래예?"

얼굴 새긴 먹을거리…착한 농민·개념 충만 소비자 '월급 받는 농부' 꿈 이뤄

박지영 기자 기자  2015.06.26 1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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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오늘 뭐 먹지?' 매일 먹는 밥이지만 매번 고민스럽다. 시간을 쪼개 쓰는 현대인들에게 메뉴고민은 난제다. 식탁 위 농산물이 누가 어디서 어떻게 키웠는지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면서 우리 농촌시장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반기를 든 곳이 있으니 바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이다. 2009년 발족한 전여농 산하 언니네 텃밭 윤정원 사무장을 만나봤다. 

"외국산 농산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게 꼭 농민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농촌이 무너지면 결국 농산물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위기에 처할 수 있어요. 일례로 농산물 수입이 안 됐다고 가정했을 때 농민은 덜 걱정해도 되요. 직접 지어 먹으면 되니까요. 유전자 조작 종자 건도 그래요. 씨알이 좋고 싸다고 해서 농약을 친 농산물을 사먹는다면, 농민의 경우 당장 삶이 팍팍할 수 있지만 그걸 먹은 당사자는 건강에 헤를 입게 되죠. (이하 윤정원 사무장)" 

그래서 생각해낸 게 '제철꾸러미'다. 도시 소비자가 일정비용을 지불하면 농민들이 제철 농산물이 담긴 꾸러미를 택배로 보내주는 식이다.

꾸러미 안에는 소량의 제철채소와 방사 유정란·국산 콩두부·직접 담근 장아찌·감주·밑반찬 등 8가지 품목으로 다양하게 구성됐으며 가격은 2만5000원 정도다.

다만 17개 생산자 공동체 지역이 각기 다른 만큼 농산물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다와 갯벌을 끼고 있는 전남 무안 공동체 같은 경우 다른 지역선 보기 드문 '구운 김'이 들어갈 때도 있다.

◆얼굴 보인 생산자, 마음 아는 소비자

이처럼 지역 공동체에 따라 각기 다른 농산물이 들어가는 것은 '제철에 심은 토종씨앗을 친환경 농법으로 키워 당일 수확한 작물만 소비자에게 보낸다'는 원칙 때문이다. 

물론 사업초반 어려움도 겪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꾸러미'를 포장하고, 배송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배송과정에서 계란이 깨지고, 날씨에 따라 채소도 눅눅해졌다. 소비자 역시 생전 처음 보는 채소를 어떻게 조리해 먹을지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간편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꾸준히 채소를 조리해 먹는다는 게 어려웠을 거예요. 보통 6개월 저이도 적응기간이 필요한데 그 전에 그만두는 소비자들이 많았죠.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해 나갈 수 있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끈끈한 믿음과 배려 덕분이었죠."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해 언니네 텃밭은 꾸러미에 어느 지역 누가 무엇을 재배했는지 농부 얼굴사진과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언니네 텃밭은 매년 1~2회씩 공동체를 방문하도록 권하고 있다.

방문행사도 계절별 절기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봄에는 봄나물 캐기와 씨뿌리기·모내기 행사가 있고, 여름에는 감자 캐기·옥수수 따기가 진행된다. 또 가을에는 밤 줍기·고구마 캐기·토종씨앗 축제가 열리며, 겨울에는 김치 담그기·메주 만들기·장 담그기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와 별도로 포장된 채소에만 익숙한 소비자를 위해 생산자들이 매주 꾸러미에 들어가는 작물을 소개하고 간단한 요리법을 편지로 쓰도록 했다.

◆여성농민만을 위한 생산자 공동체

언니네 텃밭은 여성농민 주체성 회복을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실제 언니네 텃밭 생산자 99%는 여성농민으로 구성됐다. 물론 남성농민도 언니네 텃밭 생산자 회원이 될 수 있지만 의결권이 없다.

"우리나라 여성농민이 전체 농업생산의 50%를 차지하지만 가부장적 농촌문화 탓에 결정권은 늘 남성이 가진 경우가 많았어요. 1년 농사계획을 남성이 세우고, 여성은 농사만 짓는 경우가 허다했죠. 몇 십 년 농사만 지을 줄 알았지 그동안 본인명의 땅도 통장도 수입도 없던 여성농민들을 위한 공간이 바로 언니네 텃밭이죠. 여성농민 스스로 언제 씨앗을 심고, 언제 수확을 할지 결정합니다."

여성농민들 삶도 180도 달라졌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생전 처음 자기이름으로 통장을 만든 여성농민도 있었다. 작은 사업단으로 시작한 언니네 텃밭이 오래된 농촌문화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다음은 윤정원 사무장과의 일문일답.

-언니네 텃밭 운영방식은.
▲토종씨앗으로 키운 제철채소를 친환경농사를 통해 지어 소비자에게 꾸러미를 보내는 것이다. 텃밭 가꾸는 여성농민과 도시 소비자를 짝지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언니네 텃밭 규모는.
▲2009년 4월 강원도 횡성에서 첫 꾸러미를 배송하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 17개 공동체·140여 생산자·2000여 소비자·월 4500개 꾸러미로 성장했다.

-농산물유통 구조개선 대책이 발표됐을 때 성공사례로 언니네 텃밭이 거론되기도 했다.
▲모든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농업유통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박근혜 정부도 그런 고민 속에서 직거래 형태가 제일 좋은 것 아니냐, 그런 방향으로 지금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2013년 직거래사업자콘테스트 할 때 저희 같은 경우 꾸러미사업부문 금상을 받은 바 있다.

-도시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는.
▲농민을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정작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심코 먹는 것들이 다 생산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친 것을 두고 싸고 좋다며 먹게 된다면 또 그런 걸 만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일례로 우리나라에 식량위기가 왔다고 치자. 그럴 경우 농민들은 사실 덜 걱정해도 된다.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으면 되니까.

돈은 조금 덜 써도 살 수 있지만, 안 먹고 살 순 없지 않느냐. 일주일만 도시에 식량공급이 끊긴다고 생각해 봐라. 식량공급이 안 됐을 때 더 큰 위기를 겪는 사람들은 도시민이다. 농업과 관련된 문제는 단순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환경 농민의 경우 당장 돈이 안 돼 삶이 팍팍할 순 있지만 농약을 친 농산물을 먹은 사람들은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농민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식량은 우리농민이 생산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다른 산업을 살리기 위해 농업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만 가진 관념이다. 우리나라 농업기반이 무너졌을 때 그 먹을거리 자체가 무기가 돼 언젠가 우리나라에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