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미 기자 기자 2015.06.25 20:25:09
[프라임경제]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거부권 카드'를 내밀었다. 거부권 행사는 국회와의 관계는 물론 당청 관계, 여야 관계, 여당 내부 관계 등에 충격을 가한 형국이어서 정치권 전체가 혼돈에 빨려 들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위헌 논란이 있는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런 '원칙'에 더해 남은 임기 동안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국회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법 논란이 '위헌 논쟁'으로 전개됐지만 임기 반환점을 앞둔 대통령 처지에서 권력에 대한 문제까지 짚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데서도 여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뿐만 아니라 견제가 감지된다는 것.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거부권 행사로 새누리당 내부 갈등에 이어 여야의 정면충돌로 인한 '국정 경색' 등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은 당장 국회 전면 '보이콧 카드'를 들고 나왔다. 여야 관계가 냉각되면서 국회에 계류된 각종 정부정책 법안의 처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새정연 "청와대, 야당·국회·국민과 싸우자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긴급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소집하며 새누리당과의 전면전 준비에 돌입했다.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 일정을 잡기 전까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법을 포함해 모든 국회 일정과 여야 협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가 의총에서 메르스와 관련한 법안에 한해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꾸는 등 혼란에 빠진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께서 이(중재안)마저도 거부한다는 건 야당, 국회, 국민과 싸우자는 것", 이종걸 원내대표는 "저보고 막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것(대통령 발언)은 완전히 막말의 곱빼기"라고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새누리당이 자동폐기 수순으로 가닥을 잡자 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대국민 쿠데타'이자 '실질적인 국회 해산 요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무성 대표는 2010년 박근혜 전 대표가 국가지도자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우려한 적이 있다. 그 때 그 말은 옳았다"고 꼬집었다.
추 최고위원은 또 "(김 대표가) 민주주의를 흔드는 대통령의 편을 드는 지금의 모습은 옳지 않다"면서 "집권당 대표로서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 잡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 메르스 정국이 혼돈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김 대표를 겨냥했다.
안철수 의원은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오직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민의 먹고사는 민생문제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여당을 장악하고, 나아가 국회를 장악하려는 대통령의 정치적 욕심이 국정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의의원 또 "당파를 초월한 국정운영이 필요하다"면서 "박 대통령은 여당 그리고 국회와 싸우지 말고 가뭄·메르스와 싸워달라"고 촉구했다.
◆새누리, 유승민 원내대표직 유지 청와대에 사과키로
박 대통령의 정치권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에 한 때 충격에 휩싸였던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가능하지만 160석으로 전체 의원수(298명)의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재의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새누리당이 법안 상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내년 5월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국회법 개정안은 자동폐기된다.
박 대통령의 집중포화를 받은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는 일단 원내대표직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유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친박(親朴·친박근혜)계의 사퇴 요구에 대해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일축하며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 역시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권유하며 당청 관계 봉합을 시도했다. 김 대표는 이날 의총 이후 "(유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 요구를 한 의원도 몇명 있었지만 절대 다수가 봉합하자는 의견이었다"면서 "또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사과할 일은 사과하라고 했고, 유 대표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거부권 정국을 계기로 청와대와 비박(非朴·비박근혜)계와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수차례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 지도부와 마찰을 빚은 가운데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미 이번 국회법 논란으로 당정청 회의가 청와대의 거부로 중단되는 등 당청 관계는 이미 악회된 형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임기 반환점을 앞둔 박 대통령의 '질타'가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에 언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여당 내부에서도 회의가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