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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소송전 강한 엘리엇, 한국기업 배임 족쇄도 악용 우려

치열해지는 대결구도 속 분쟁 본격화 조짐 격화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6.11 16: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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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결국 특기인 장기 소송전을 한국에서도 구사할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산업계 내외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문제는 주요 경제주체인 삼성그룹의 승계구도 재편과 맞닿아 있는 등 그간 한국 경제에서 논의돼 왔던 주요 이슈들을 새삼 건드리는 분란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처리에서 교환 비율 산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를 딛고 무리하게 추진되는 합병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을 제기한 상태다. 삼성 측도 이 같은 엘리엇의 공세에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KCC를 우군으로 삼아 자사주 매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자사주는 삼성측 수중에 남아있으면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으나, 매각되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삼성물산 주주총회장에서의 표 대결이 한표가 아쉬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5.76%에 달하는 지분을 묵히지 않고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이런 수순은 결국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에 대해서도 자사주처분금지 가처분을 제기하겠다고 선언, 상황이 결국 치열한 본안소송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논점은 합병 비율 산정 잘잘못? 경영권 관련 '프레임 전쟁' 우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 산정은 일단 제도적으로 규정된 방법의 외관을 충족하고 있다. 기준시가 결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6조의5에 따라 합병을 위한 이사회결의일과 합병계약을 체결한 날 중 앞서는 날의 전일을 기산일로 최근 1개월간의 거래량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의 거래량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를 산술평균한 가액으로 계산된 결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처리는 '왜 하필 지금?'이라는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일모직 주가가 높고 삼성물산이 낮은 가격을 형성하는 시기를 택해 합병을 추진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문제는 삼성 측이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카드로 양사간 문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만한 시기라는 부분이다.

엘리엇은 이미 홍콩 재벌 데이비드 리가 동아시아은행 지분을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에 매각한 사안에서 주주가치 희석 논쟁을 불붙이면서 소송을 제기, 현재 사건이 계류 중이다. 이 사건에서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주가치 희석 조치라는 논지를 펴고 있어, 삼성 문제에서도 당연히 본안으로 들어가면 이 같은 프레임 전쟁으로 몰고 갈 여지가 높아 보인다.

삼성물산이 엘리엇의 자사주 관련 가처분 논란에 대해 공식자료를 내고 "자사주 매각은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고려한 정당한 결정"이라고 나선 점을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는 양자간 치열한 공방을 앞에 둔 상황에서 감도는 긴장감을 반영하고 있으며 엘리엇 측 논리에 대한 사전 차단이 필요하다고 경각심을 갖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사진 판단에 배임 논쟁 불가피

한편 금융통인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합병비율 산정 과정에서 이사진의 배임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대목을 엘리엇이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재벌총수가 순환출자로 그룹전체를 지배하는 기형적인 삼성의 지배구조 허점을 해외투기자본이 노리고 들어왔다"고 전제하고 "합병 시점과 비율 관련 삼성물산 이사진에 배임 의혹이 없는지,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는 않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번 합병의 비율 산정 문제가 형사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뜻이다. 논점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민사소송과 별개로 형사절차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 측으로서는 인력 분산 등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경영판단에 대해 배임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를 면책할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기업의 건전한 활동과 이를 위한 전략적 판단에 형사처벌 가능성이 자의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있으면 기업가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학계와 법조실무 양쪽에서 거론돼 왔지만, 아직 확고한 이론 정립이나 이를 반영한 입법적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삼성의 경우 BW 문제로 이미 곤욕을 치른 바 있어 형사문제화되는 것이 여론 악화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어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소송을 길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진을 빼는 엘리엇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즉 주주의 권익 보호에 우호적인 영국 등에서 가장 기둥이 되는 상사법상 논란을 점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물산 주식예탁증서(DR)가 상장된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대를 괴롭히는 일조의 곁가지로 형사상 논점인 배임 케이스를 국내에서 활용하는 양동 작전 가능성도 예측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