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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인의 현장스케치] 제니엘시스템 '꽃보다 카드배송CM'

시니어 일자리 창출 효자업종, 인당 하루 80여건 도보로

하영인 기자 기자  2015.06.09 1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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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3회째에 접어든 '하영인의 현장스케치'는 헤어웨어를 제작·판매하는 씨크릿우먼에 이어 제니엘시스템의 물품(카드) 배송업무 체험기로 꾸며진다. K사와 S, H업체 등 쟁쟁한 신용카드 배송사 중 제니엘시스템은 업계 내 40%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카메라를 챙길 겸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고 오전 9시까지 서울 관악구로 이동했다. 제니엘시스템(대표 박춘홍)의 21개 지사 중 강남지사에 들어서자 제니엘시스템의 유니폼인 보라색 하복을 갖춰 입고 각자 업무에 열중하는 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카드 정보를 조회·확인 중인 내근 직원들, 본인 지역 카드를 동선에 맞게 나열하거나 미리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 여부를 묻는 배송CM들 등 10여명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제니엘시스템에 카드가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2시. 직원들은 새벽 4시경 지사별·배송CM별 분류 작업에 착수한다. 물류전문회사인 제니엘시스템은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7만건의 배송을 실시하고 있다.

◆"한창 걸을 60대" 도보배송, 하루 2만5000보 이상


익명을 요청한 도보배송CM과 빠른 걸음으로 대로변에 나왔다. 서울은 건물이 밀집된 곳이 많다 보니 대다수 도보로 배송하거나 이륜(오토바이)을 활용한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에 벌써 땀으로 등허리가 축축해졌다. 봉천역에서 선릉역까지 가는 열차 안, 잠시 숨 돌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두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배송CM과 드디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렷다. 그는 60대 남성으로 슬하에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잠시 대화 끝에 이윽고 선릉역에서 내리자 그는 수월한 통화를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날 그에게 할당된 업무는 80여건으로 평소 하루 평균 80~100건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배송CM의 구역은 대치2·4동이었다. 대치동은 기업들이 오밀조밀 모인 지역으로 고객 대부분이 점잖고 쉬운 편이란다.

"이곳은 직장인들이 많아 점심시간 전이 피크라 오전에 더 마음이 급해요. 제 경우에는 그날 물량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오후 5시경에 일을 마칩니다."

7년여를 일한 그의 말을 빌리면 지역적 특성이 모두 다른데 아파트가 가장 힘들다고. 고객마다 다른 수령 가능 시간에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려운 지역을 맡으면 일주일은 고사하고 하루 이틀도 채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렇지만 십여년 넘은 베테랑 또한 많은 것이 바로 배송업계로 시니어 일자리 창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번은 동료가 건강 체크하라고 만보기를 권해서 재미 삼아 해봤는데, 하루 평균 2만5000보 이상 걷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제가 더 건강한 것 같아요."

◆본인 수신 동의 철저 "내일 다시 올게요"


"여기 이준모(가명) 고객님 계시나요? 카드 배송왔는데요."

첫 번째 고객은 83년생 이씨였다. 그가 근무 중인 직장을 방문한 배송CM은 능숙한 손길로 PDA를 들어 우편물 바코드를 찍고 본인 수령을 선택한 다음 고객에게 성함과 사인, 생년월일을 확인받고 신속히 인증을 완료했다.

건물 내 주소지인 물품 배송을 모두 마친 후 8층에서 2층으로 내려와 밖에 나섰다. 들어올 때는 지하 1층, 나갈 때는 2층…. 배송CM은 건물마다 내부와 특징을 꿰고 있었다. 골목골목을 돌아 다른 빌딩으로 들어섰다. 쉼 없이 바쁘게 대상을 찾아 전달하고 이동하는 것이 반복됐다.

"아, 김 대리 오늘 외근 나갔는데 제가 대신 받아도 되는 건가요?" 자리를 비운 고객을 대신하려는 동료의 질문에 단호한 답변이 돌아간다. "본인 수령만 가능해서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신용카드는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특히나 보안에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동의서가 필요한 카드는 본인만 수령할 수 있다. 배송 완료 후 배송CM이 이를 PDA로 전송하는 즉시 결제 가능하므로 주의가 필요한 것.

이에 배송CM은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지만, 혹여나 개인정보가 유출될까 봐 민감해 하는 고객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카드사 측에서 이전 주소를 기재하거나 층수를 빼먹는 작은 실수들도 업무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배송CM들은 매일 아침이면 전날 남은 물량과 정고 데이터를 정산한다. 혹여나 분실된 것은 없는지 있다면 원인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하루 실패율은 대략 5~10%로 나머지는 다음 날 다시 추진하거나 주소변경 등 사유에 따라 재분류하기도 한다.

◆"고맙다" 말 한마디·차 한 잔에 움트는 인정


배송CM의 가방에서는 끊임없이 우편물이 나온다. 특히 일반 우편물이 아닌 상자 통째로 들어있는 VIP 카드의 부피가 더해진 가방 무게는 고작 기자가 짊어진 카메라와 넷북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그럼에도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지친 기색 하나 없다.

헉헉거리며 간신히 따라붙은 와중에 한 고객이 음료수를 건넸다. 점잖은 중년 남성 고객의 고맙다는 한 마디에 지친 피로감이 스르륵 풀린다. 목소리도 얼마나 중후한지 200%는 더 지적이고 매력 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처럼 감사한 고객이 있는 반면 민원 고객도 존재한다. 신분증 확인을 거절하거나 무한정 배송CM을 기다리게 하는 등 누군가에게는 짧은 5분, 10분일지라도 고객 한 명 한 명, 기다리는 시간이 쌓이다보면 배송CM은 다음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는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배송CM들은 가능한 동선을 줄이고 줄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고객님 입장에서도 카드 하나 받자고 시간을 내기 어려운 걸 알죠. 서로 입장을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더군다나 카드 수령을 완료해야만 건당 최소 700원에서 최대 카드종류에 따라 2000원까지의 수당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급함이 더하다. 낮은 입찰가에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런 만큼 업계에서는 카드사에서 적정 수준 입찰 단가를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동행을 마칠 즈음 배송CM은 "처음에는 어깨와 다리가 아파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단련돼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집에 갈 때가 가장 보람이 됩니다. 등산 후 내려갈 때 드는 기분이랄까. 이것도 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이기에 하는 거죠. 자식이 부모에게 할 도리와는 별개로 이건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