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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대통령 '거부권' 시사로 정국 살얼음판

청와대·親朴 새누리 지도부 동시 압박…국회 사무처 "행정입법권 침해 아니다"

이금미 기자 기자  2015.06.01 18: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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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변경 권한이 강화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거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여권 내부 지도부 겨냥 공식적 비판·조직적 반발

박 대통령은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할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수용 불가' 방침은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동시에 여당 지도부 압박용 발언으로도 읽힌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親朴·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이들은 이날 공개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비판하며 지도부를 겨냥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을 처리하라고 했는데 국민연금까지 밀렸고 게다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정부 시행령 (사항)까지 동의해주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며 "나는 (이번 일에 대해)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사실상 지도부를 정조준했다.

이정현 최고위원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가 근간인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문제라고 지적되고, 실체가 그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책임 문제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친박계가 주축이 된 새누리당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당내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일 오전 긴급 모임을 열기로 했다.

이처럼 청와대는 물론 친박 주류가 비주류 지도부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공개적 비판과 조직적 반발에 나서면서 이번 사태는 수면 아래까지 가라앉았던 여권 내 계파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주말을 넘기며 강도가 높아진 청와대와 친박 주류의 압박에 비주류 지도부는 이날 "전문가와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기에 앞서 열린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국회법이 위헌이냐 아니냐가 핵심문제"라고 전제한 뒤 "대통령의 뜻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며 "좋은 길을 찾아보자"는 제언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야당과의 협상을 거쳐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한 원내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을 자제하면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결말을 봐야 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저희들도 생각하겠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원내대변인들은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한 공식적인 논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새누리당 지도부의 전반적인 기류는 국회법 개정안에 강제성이 없는 만큼 삼권분립에 위배되거나 위헌 소지가 없는 데도 청와대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실제로 행사할 경우 정국은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새정연, 상위법 위반 시행령 사례 조목조목 들어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입법부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규정, 모법(母法)과 상충하는 시행령 사례를 발표하면서 청와대와 박 대통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날 오후 새정치연합이 발표한 모법 상충 시행령 사례는 △누리과정에 대한 교부금 지원 법적 근거 시행령 상위법(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유아교육법·영유야보육법·지방재정법) 위반 △교원에게만 학교경비 지급을 하기 위해 교육부령 축소, 상위법(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2014년 국회 지적 뒤 2차 입법예고,

△자유무역 협정(FTA) 피해보전규칙을 만들면서 상위법(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법률)에도 없는 수입기여도를 하위규정인 규칙으로 신설 등이다. .

이종걸 원내대표는 "(시행령 수정권한 강화는) 너무나 당연히 입법권에 포함된 것"이라면서 "논쟁할 가치가 별로 없다"고 청와대 비판을 반박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며 입법부와의 전쟁 선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삼권분립을 위배하는 것은 바로 행정부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에 '삼권분립 위배'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회 사무처가 이날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위헌 논란과 관련 "부당한 행정입법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밝혀 주목된다.

사무처는 '국회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관련 검토 자료'를 통해 "국회 상임위원회가 정부에 시행령 수정·변경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입장을 듣고 여야 위원들이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가 이뤄질 경우에 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회의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 요구 권한이 남용될 가능성은 적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