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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임혜현 기자 기자  2015.05.22 17: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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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름은 흔히 조상으로부터 받지만 호는 자신이 붙인다. 이름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같다면 호는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을 담아 개성적인 삶의 지표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선 선비들은 호를 애용했다. 그러므로 조선 선비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그 인물의 호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조선 선비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호를 지었을까?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차분한 연구 끝에 나온 답이다. 사실 호를 짓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불리고 싶은 것을 호로 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선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곳의 지명을 호로 삼거나, 마음에 품은 의지를 호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생김새나 취향, 자신에 대한 희화화를 통해 호를 짓기도 했다. 이처럼 호에는 조선 선비들의 의지와 그 시대의 유행, 개개인의 개성이 가득 담겨 있다.

백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려고 몸부림쳤던 리더층인 선비들이 있었기에 조선은 여러 차례의 전쟁과 난국을 딛고 500년의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호를 연구한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는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깊이 고민했던 선비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한정주 역사평론가는 선비들의 목소리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옛 문서들을 하나하나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지은이는 동국대 사학과 시절에는 시대적 혼돈의 영향과 그에 대한 고민으로 사회과학서적에 심취해 있다가 뒤늦게 다시 역사와 고전의 즐거움으로 돌아왔다. 20여년간 사회과학서와 역사서, 고전 등을 탐독하면서 지식과 사상을 폭넓고 깊이있게 두루 쟁여놓았던 셈이다. 이후 이것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무렵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전과 역사를 연구하는 모임인 '뇌룡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에도 이미 '한국사 전쟁의 기술'과 '조선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 등 역사 속에서 오늘까지 빛을 발하는 교훈을 추출해 내는 노작들을 여럿 집필, 세상에 내밀어 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번 책에서 선비들의 호를 통해 조선의 엘리트들이 가졌던 사상의 정수를 맛볼 수 있도록 깊이와 재미를 모두 잡았다.

다산초당 펴냄, 3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