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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115] 빚더미에도 추억 선사 '실버영화관'

어르신 맞춤형 문화공간 절실…"SK케미칼 월 1000만원씩 지원"

노병우 기자 기자  2015.05.14 18: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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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타임머신에 올라탄 듯 최근 국민들이 추억에 젖었다. TV와 영화관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 콘셉트가 핫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복고열풍이 불고 있는 것. 고령화 사회임에도 노인문화를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터라 복고열풍은 이래저래 기쁜 소식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고,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문화공간이 있다. 추억을 파는 극장 '실버영화관'이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뒤편 낙원상가 실버영화관을 찾았다. 최신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촌스러운 간판의 영화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머리카락 희끗한 60대 이상 관객들로 넘쳐났던 그곳에서 이곳 영화관 김은주 대표를 만났다. 

◆1년 90편 상영…관람료 2000원

실버영화관은 '어르신의,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을 위한' 극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았다. 55세 이상에게는 2000원의 관람료를 받고, 1940~1960년대에 제작된 고전영화들을 상영한다. 

"40~60년대 영화로 정한 이유는 어르신들이 '아 옛날 그때 그 배우, 나의 배우'처럼 요즘말로 아이돌 같은 거 있잖아요. 이런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어요. 요즘 핫한 배우들은 의미 없잖아요. 대신 40~60년대 외에도 어르신들이 꼭 봐야하는 좋은 명작을 1년에 6~7편씩 함께 상영하고 있어요. 전체적으로는 1년에 총 90편정도를 상영하고 있죠."

서울 서대문에서 드림시네마를 운영하던 김 대표는 지난 2008년 종로로 넘어와 준비기간을 거친 뒤 2009년 1월21일 '실버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도 하지 않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처음 왔을 때 이곳은 어르신들이 오는 극장이 아니라 하루에 20~30명 오는 예술전용관이었어요. 어느 날 길거리를 거닐다 주위를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 어르신들이 훨씬 많은 걸 발견했죠. 그래서 여기는 여기만의 추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화관을 만들어 보자라고 생각했죠."

이후 설문조사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2000원이라는 관람료 가격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런 관람료로는 영화관을 운영하기 어려운 게 현실. 김 대표는 운영 초창기 7~8억원의 적자와 집과 차까지 파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김 대표는 월세라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프러포즈를 시작했고 SK케미칼에서 김 대표의 손을 잡아줬다. 

"SK케미칼은 오픈하던 해부터 1년에 1억2000만원씩 도움을 주고 있어요. 한 달에 월세가 2000만원 정도니까 1000만원씩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선뜻 도와주시더라고요. 당시 아무것도 없던 나를 믿어준 SK케미칼한테는 지금까지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원동력 '관객'…역경 뒤 도움의 손길 증가

지난해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던 실버영화관이지만 올해부터는 마이너스됐던 부분들을 조금씩 메워갈 수 있게 됐다. 300석의 단관극장으로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인 23만명을 지난 2013년부터 2년 연속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버영화관은 하루 800~1000명, 한 달 1만8000~2만3000명, 1년 22만~23만명 밖에 수용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원래 하루 3회 상영인데 매일 매진행진을 이어가다보니 부득이 1회를 더 추가해 상영하고 있어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365일 꾸준히 관객들이 오는 영화관은 여기가 유일할 걸요."

무엇보다 운영하는 동안 김 대표가 힘들 때 마다 힘이 돼 준 건 바로 관객이다. 운영하는 동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비슷한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그만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힘들 때 항상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더움을 주려 하시고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시기도 했어요. 심지어 10만평의 땅문서라도 받아 달라던 어르신들도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나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된 거죠.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실버영화관을 운영한 끝에 최근에는 새로운 파트너도 생기고 도움의 손길들도 늘기 시작했어요."

또 김 대표는 앞으로도 관람료를 2000원보다 더 올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 

"관람료를 올리는 것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잖아요. 더군다나 돈을 벌려고 시작했던 일도 아니고 어르신들에게 더 부담을 드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자체나 문화관광부,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서울시에서 저작권료로 사용하라고 1년에 1억씩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늘어난다거나 실버영화관 지원책이 생긴다거나 하면 마이너스되는 부분들이 채워지지 않을까요?"

◆연계 사업 확장…애플리케이션도 출시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사업으로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실버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면서 영화가 2000원인데 밥값이 비싸다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어죠.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고령화친화기업을 통해 DJ까지 갖춘 '추억더하기'을 운영해 옛날 도시락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요. 또 이곳에서는 70대 어르신 20명이 A·B조로 나뉘어 월·수·금, 화·목·토로 일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올해 초에는 실버영화관 애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 실버영화관 앱을 켜면 △영화 상영작 △줄거리 △상영 시간이 간략하게 설명돼 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으시잖아요. 하루 종일 이곳에 계시는 분들도 많고요. 요즘엔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시니까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앱을 생각해냈어요. 대신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는 문자서비스를 따로 제공하고 있어요. 재밌는 건 앱을 처음 출시했을 때 1주일 만에 5000명이 가입하는 바람에 불법 아니냐며 구글로부터 1주일정도 정지도 당했어요."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향후에도 어르신들의 문화공간이 많아지고 활성화되는데 이바지할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에 어르신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딱히 있으실만한, 즐길만한 공간이 없잖아요. 윤택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잇는 맞춤형 문화공간이 더 많아지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좋은 영화를 편안하게 좋은 조건으로 볼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