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블랙컨슈머였을까, 제보도 못 믿을 세상

이보배 기자 기자  2015.05.06 15:32:20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5월 첫째 주 연휴를 앞두고 한 통의 제보전화를 받았다. A택배사 기사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제보였다.

대표적인 서비스직의 하나인 택배기사들의 불친절 문제는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손꼽는 불만사항 중 하나다. 하지만 택배기사가 고객의 집을 직접 다시 찾아와 폭행을 가했다는 내용의 제보에 귀가 솔깃했다.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져 자신도 욕설을 내뱉긴 했지만 택배기사 측에서 먼저 욕설을 퍼부었고, 찾아와 전치 2주의 폭행을 가했다'는 제보는 그 내용과 파장, 기사화 가능성을 두고 봤을 때 분명 '기사거리'가 될 만했다.

게다가 녹취파일과 피해자 어머니가 작성한 경찰서 제출용 증인진술서, 전치 2주의 진단서도 참고 자료로 보내주겠다는 피해자의 말에 구미가 당겼다.

보내준다는 자료를 기다렸다. 녹취파일을 들어보고, 피해자 어머니가 작성했다는 증인진술서를 확인했다. 폭행 당사자인 택배기사와 동료 택배기사 2명, 총 3명을 대상으로 작성한 증인진술서의 작성 날짜가 이상했다.

피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건 발생일은 4월○일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3명의 진술서 작성일은 각각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4월 진술서 작성은 가능한 날짜였지만 다른 날짜는 아직 멀게 남은 시점이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의 어머니가 작성을 하면서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제보자의 대답에 일단 다른 자료를 다시 살폈다.

녹취파일을 들어본 결과, 의문이 보태졌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제보자가 택배기사에게 "녹음하고 있으니 말을 잘 하라"는 발언과 함께 먼저 시비를 거는 듯한 정황이 포착된 것.

사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지난 기자생활 경험상, 제보자의 주장을 100% 믿을 수 없던 적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혹은 개인 홍보를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제보자도 존재한다. 이번 제보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병원 진단서를 확인했다. 이상한 조짐은 여기서도 발견됐다. 사건 발생일은 4월○일이었지만 진단서의 진단 날짜는 한 달 전으로 표기돼 있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제보자가 가해자라고 주장한 택배기사와 통화를 시도했다. 택배기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블루투스를 착용하고 물건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질문을 했으나 다른 전화를 받는 도중이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택배기사에 따르면 제보자는 배송 다음 날 택배기사에게 전화해 "어제 내 질문에 왜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따졌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욕설이 오간 것은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폭행이 아니라 몸싸움이 있는 정도였고, 경찰에서도 쌍방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조사를 마무리했다는 주장이다. 또 경찰조사 이후 제보자가 며칠간 통화와 문자를 통해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기자는 이번 제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메일로 받은 자료의 날짜가 제각각 인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제보자와 택배기사를 비롯해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자와 피해자 측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기사를 쓰는 일은 언제든 보람을 느끼게 하지만 이번 제보처럼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기란 쉽지 않다.

기자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기사화하더라도 독자들은 그 기사의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 반쪽짜리 믿음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해당 제보자는 당시 기자 외에도 8개 매체에 같은 내용의 제보전화와 자료를 발송했고, 기사화한 곳은 한 곳뿐이었다. 제보자가 의도적으로 언론사에 알린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