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부부-정낙추(1950~)
하루 종일 별 말이 없다.
풀 뽑는 손만 바쁘고
싸운 사람들 같아도
쉴 참엔 나란히 밭둑에 앉아
막걸리 잔을 건네는 수줍은 아내에게
남편은 멋쩍게 안주를 집어준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고도
자식 낳고 곡식을 키웠다
사랑하지 않고 어찌 농사를 지으며
사랑 받지 않고 크는 생명 어디 있으랴
한 세월을 살고도
부끄러움 묻어나는 얼굴들
노을보다 붉다
<‘그 남자의 손’중에서, 애지, 2006>
얼마 전인가, 벌써 몇 년 되었나, 드디어 못 견디고 정답을 말했다. “그래, 그 말! 그 말이 그렇게 힘들어? 나빴어!” 그래도 그 뒤로도 열 번을 넘게 물어야 가까스로 한 번 정답을 말한다. 이상하게 그 말이 힘들다.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나도 정말 잘 모르겠다. 서양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곧 이혼으로 간다는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나도 오래 살았다. 서양 사람들은 말로 하면서도 안 통하는 모양인데, 우리들은 말하지 않고도 어떻게 통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낙추 시인의 시 “부부”를 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생각했고, 내 고향 마을에서 한 평생을 살고 가셨던 어른들도 생각했고, 지금도 그곳을 지키는 내 어릴 적 동무들도 생각했다. 한 번도 말 하지 않고 한 평생을 살다 간 사람들, 아마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한 번도 그런 말 주고 받은 적 없이 우리 형제들 다 키우셨을 것 같다.
![]() |
||
1956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3년 <삶의 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희망과 다른 하루>(푸른숲)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시 전문 계간지 <시와 문화> 필진
현재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