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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울볼' 주인공 안형권, 자이언츠 둥지 틀기까지

고양원더스 출신 '야구 미생'…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열정 스토리

신효정 기자 기자  2015.04.24 11: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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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4월2일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지난해 9월11일 뜻하지 않은 장벽으로 인해 해체되기까지 1093일간의 스토리를 담은 '끝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쳐볼 수 있다'는 의미의 영화 '파울볼'이 개봉했다. 저마다 사연 많은 선수들이 모인 고양 원더스이지만 영화에서 특히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원더스 창단 멤버로 3년간 몸을 담다 지난해 9월 기적적으로 프로팀 롯데자이언츠로 영입된 안형권 선수다.

안 선수는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서 23살 적지 않은 나이에 머나먼 땅에서 오로지 열정에 대한 확신 하나로 고양 원더스 입단을 위해 2011년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8살에 처음 야구를 시작해 대학 졸업 때까지 야구에 빠져 살았지만, 전공인 회계와 야구를 병행하다 보니 '노력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신의 열정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작년부터는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묵묵히 야구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 충실히 지내고 있다. 이미 영화 속 주인공으로 한편의 자서전을 써 내려가고 있는 안 선수를 부산에서 만나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영화 '파울볼'이 개봉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달라진 점이 있나.

▲영화 때문에 팬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분들께서 선물도 보내주시고 메시지나 편지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힘내라고 응원을 많이 해주신다. 굉장히 힘이 나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팬분들 중에 SK와 한화 팬분들이 많으시더라. 김성근 감독님 덕분에 파울볼을 봐주신 것 같다.

-영화에서 보다 실물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런가? (웃음) 그때는 정말 너무 강도 높은 훈련을 할 때라 살이 많이 빠져 지금보다 10kg나 적은 70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봐도 너무 마르고 까맣게 타서 영화에서 더욱 꾀죄죄해 보인 것 같다.

-안형권 선수라 하면 고양원더스를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처음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미국에서 대학교까지 계속 야구를 했었다. 하지만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다 보니 드래프트가 되지 않아 졸업 후 여러 팀들 테스트를 봤다. 보스턴(레드삭스), 필라델피아(필리스) 그리고 여러 팀의 스카우터들이 모여 함께 지켜보는 트라이아웃도 보러 다녔지만 별 이야기가 없어서 미국 독립팀 테스트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친구분께서 연락이 오셔서는 한국에서 고양원더스라고 독립야구단이 새로 생기는데 그 팀에 테스트를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지원했었다.

-2011년 11월에 처음으로 한국을 오게 된 건가.

▲그렇다. 서류를 먼저 넣어보았는데 테스트 받으러 오라고 해서 급하게 비행기 표를 예매해서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원더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 후 바로 전지훈련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단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한국에 왔나.

▲아니다. 정말 여기만 마지막으로 테스트 봐야겠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왔는데 테스트 받고 큰아버지 댁으로 내려가는 길에 연락이 와서 그 길로 바로 팀에 합류하였다. 옷도 많이 안 챙겨와서 처음엔 너무 추웠다.

-한국에 와서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3년 동안 해냈는데 미국에서의 훈련과 많이 다르던가.

▲팀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전주로 전지훈련을 가서 미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되었다. 일단 너무 추웠다. 대게 미국에서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실내에서 훈련을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어떻게 다르던가.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많이 쌓여있어서 훈련을 안 할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아침에 모두 나와서 눈을 치우고 훈련을 했다. (웃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하루 종일 밖에서 야구만 하니까 정말 'mentally drained'(정신적으로 진이 빠져 녹초가 되다)였다. 아침에 나와서 야간까지 하니까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한국 야구구나.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정말 말 그대로인 '지옥훈련'을 잘 소화해 낸 것 같다. 스스로 칭찬을 해주어도 될 것 같다.

▲아니다. 사실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체력도 안 좋고 야구 실력도 많이 낮아서 일본으로 캠프 가기 전에 잘릴 줄 알았다.

-결국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일본에서의 전지훈련은 어땠나.

▲또 다른 세상이었다. 고치는 굉장히 추운데 한국에서와 같이 아침부터 나가서 야간까지 훈련을 하니 손바닥이 깨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님께서 다 잘 되라고 시키시는 걸 아니까 마음을 다 잡고 열심히 한 것 같다.

-미국에서 계속 살다 한국에 와서 언어부터 문화, 새로운 야구 훈련 방식까지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 사실 원더스 1년 차 때는 정말 미국이 많이 그리웠다. 특히 시합을 안 뛰니까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부모님도 보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야구 선수라도 공부와 야구를 병행한다. 공부하는 것에 70% 매진하고 야구에는 30%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단체 훈련도 하루에 3시간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고양 원더스가 독립야구단이다 보니 선수들 연봉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활비 문제는 부모님께서 도와준 건가.

▲그렇지 않다. 보통 시합을 뛰는 선수들 위주로 숙소를 쓰게 해주는데 나는 벤치 선수였기에 숙소를 들어갈 수 없었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1년차에 숙소를 들어가지 못 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결했나.

▲그때 등장한 게 (설)재훈이 형이다. 둘이 같이 고시원 3군데를 옮겨 다녔다. 첫 고시원은 정말 사람 1명 누우면 가득 차는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지냈는데 재훈이 형이 없었더라면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두 번째 고시원은 조금 더 나았다. 거기는 그래도 하루에 에어컨 한 시간은 틀어주었다.

-대단하다. 그 당시 연봉이 얼마였나.

▲1000만원이었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 제외하고 나면 생활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세금 떼고 한 달에 80만원 정도 받은 것 같다. 그걸로 재훈이 형과 세 번째 고시원에서는 둘이 합쳐 50만원 내고 에어컨이 있는 방 하나에 같이 지냈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설재훈 선수와 아주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촬영 당시까지도 지명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SK와이번스 2군에서 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재훈이 형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견디지 못 했을 것 같다. 형이 SK로 가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SK와의 원정 경기 때 가면 꼭 만나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해 원정 팀과 함께 가지 못해 아쉽다.

-설재훈 선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고양원더스는 안 선수에게 어떤 곳인가.

▲원더스에서 보낸 지난 3년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행복했던 곳이다.

-힘든 곳이지만 행복했다니?

▲원더스라는 곳은 재훈이 형이나 나 같은 선수들에게 희망이었다. 연봉도 받으면서 프로로 가는 길을 마련해주는 희망을 느끼해 준 행복한 곳이었다. 구단이 해체되고 롯데로 옮겨오니 그때의 감사함과 행복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롯데자이언츠로 옮겨온 이후 김성근 감독님을 뵌 적이 있나?

▲11일 날 롯데와 한화 경기가 사직에서 열릴 때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을 뵈러 찾아갔었다.

-전해주신 말씀이 있는가.

▲감독님께서 날 보시더니 깜짝 놀라시더라. 어깨를 다독여 주시며 "잘하고 있나. 그래 열심히 해라."라고 해주시면서 더 말씀해주셨는데 그때 감독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당황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웃음) 감독님을 오랜만에 뵈어서 기뻤던 것 같다.

-벌써 퓨처스리그가 시작한 지 1달이 다 되어가는데 한 번도 타석에 서지 못해 답답할 것 같다.

▲(잠시 생각하며) 음…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꼭 시합에 출전하고 싶다. 지금 롯데에는 야수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지금처럼 묵묵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감독님께서 분명히 기회를 주실 거라 믿는다. 나는 필드 위에서는 굉장히 에너지와 파이팅이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인데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이길 자신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해는 2군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실력도 갖추고 필드에서 파이팅 넘치고 긍정적인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리고 꼭 나중에는 TV에 나오고 싶다. 일 때문에 한국에 오기 힘드신 미국에서 계시는 부모님께서 나를 TV로 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인가.

▲3년 차 때 항상 전체 훈련이 끝나고 나서 따로 스윙을 1000개씩 연습하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타석에만 들어서면 그냥 안 맞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김성근 감독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1년 내내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시며 신경 써주셨다. 감독님 덕분에 힘들 때마다 늘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처럼 열정이 넘치셨던 허민 구단주께서도 오실 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여기에서 계속 열심히 해서 꼭 프로에 가서 더 페이스를 올리라고 좋은 말씀해주시고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소위 아주 잘 나가는 야구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원더스에서 지내는 3년 동안 '지옥훈련'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의 강도 높은 훈련도 중간 이탈 하지 않고 묵묵하게 군말 없이 이겨냈다. 그런 그가 원더스에서 대타로 첫 출전하여 홈런을 때려냈다.

"많은 선수들이 실력이 없어서 야구를 그만두는 게 아니다. 아무도 그 실력을 발견해주지 못 해서 야구를 그만둔다.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게 리더의 핵심이다. 리더는 선수의 잠재력을 발굴해야 한다."(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김성근 著) 김성근 감독은 그런 그에게 꾸준하게 기회를 부여했고 안 선수는 3년간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매 경기 나타냈다.

26세인 그는 지금 영화 '파울볼'처럼 끝이 아닌 다시 한번 쳐볼 수 있는 타석에 서 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이미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 선수.

불행했던 '미생(未生)'에서 기회를 부여받아 그길로 120% 노력을 더해 '완생(完生)'으로 거듭난 넥센의 서건창 선수처럼 하루 빨리 팀으로부터 그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받아, 바로 지금 타석에 서있는 그가 홈런을 뽑아낼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열정에게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