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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목 맨 성완종, 누구인가?

초교 중퇴·야간학교서 중·고교 밟아…단돈 110원으로 이룬 신화

박지영 기자 기자  2015.04.09 17: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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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결백을 밝히기 위해 죽음을 택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성 전 회장은 재계서도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힌다.

1951년생인 성 전 회장은 충남 서산 해미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평탄했던 유년시절은 성 전 회장 초등학교 4학년 때 산산조각 났다. 서산과 인천을 오가며 유통업을 해오던 부친이 인천서 작은 부인을 데려 온 것이다.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생모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성 전 회장은 외삼촌에게 받은 11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성 전 회장의 정규학력이 초등학교 4학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등포역에서 내린 성 전 회장은 이삿짐센터를 찾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주소를 내밀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를 만났지만 같이 살 여력은 되지 않았다. 식모살이를 하는 어머니는 아들을 거둘 형편이 못됐다.
   
이때부터 성 전 회장은 어머니가 사는 집 주변 교회에 잠자리를 얻어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새벽에는 신물배달을 하고, 낮에는 광생약국에서 '약 배달'을 하며 돈을 벌었다. 또 밤에는 교회부설 야학에서 못 다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번 돈은 꼬박꼬박 고향 외삼촌에게 보냈다.    

외삼촌은 이 돈을 알뜰살뜰 늘려 7년 만에 집 한 칸과 전답 3000평을 마련했다. 잠잘 곳과 농사지을 땅이 생기자 그때서야 어머니와 4형제는 함께 살 수 있었다.
  
성 전 회장은 생계는 물론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져야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뛰어다녔다. 들소처럼 일하며 생활비를 제외하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던 1977년 성 전 회장은 자신을 친아들처럼 대해주던 사람으로부터 "건설업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건설업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지만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당시 성 전 회장을 친아들처럼 여겼던 최순기씨는 서산토건 대주주로 농협조합장에 당선되면서 갖고 있던 200만원 상당의 지분을 성 전 회장에게 넘겼다.

성 전 회장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서산토건을 키워나갔다. 이어 대아건설과 경남기업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또 1996년에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중·도매법인 '중앙청과'와 '온양관광호텔'을 인수하기도 했다.

대아그룹은 매출 1조2000억원대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경남기업은 대아그룹의 주력기업이 됐다. 이때부터 그는 베트남 등 해외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했다. 2008년 대아그룹은 1조50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성 전 회장은 기업가로 성공한 뒤 어머니의 뜻에 따라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 1991년 34억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한 성 전 회장은 학비가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