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박종철 사건 축소·은폐? 검찰 본분 지켰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 청문회서 여당 엄호 속 관련 의혹 전면 부인

이금미 기자 기자  2015.04.07 18:51:53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박상옥 대법관 후보에 대한 7일 국회 인사청문회는 예고된 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핵심쟁점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가 1987년 검사 시절 당시 사건의 진상을 축소·은폐하는 데 동조했거나 방조·묵인했다는 의혹을 거듭 제기했고, 박 후보와 여당 의원들은 말석검사로서 개입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경찰 일관된 진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박 후보의 당시 행적에 대해 "소신 없고 양심없는 비겁한 행동이었다"며 "공범을 알면서도 수사하지 않고 기소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 법의 수호자인 검찰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검찰 관계자 67%가 검찰 수사 중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건이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이라면서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1차, 2차, 3차, 3-1차, 3-2차 이렇게 하는 일이 흔한가"라며 당시 검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경찰의 조직적 사건 축소, 은폐를 밝히는 과정이 길고 힘들었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알면서도 진실 은폐에 관여하는 등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1차 수사 당시 조한경·강진규 등 두 경찰관의 혐의만 확인한 것과 관련해 전해철 새정치연합 의원과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추궁도 이어졌다.

박 후보는 "결박을 하거나 수갑을 채우면 혼자서도 (물고문을) 할 수 있다. (조·강) 두 사람의 얘기도 두 사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며 "절대 두 사람이 왜소한 상태가 아니었다. 직접 조사해서 안다. 둘만의 범행이라는 일관된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1차 수사 때 조기에 진상을 규명했으면 유족을 포함한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지 않았을 상황이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그 점에 대해선 검사로서 그런 능력이 주어지지 못한 데 대한 스스로의 질책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박 후보가 말석검사로서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거들고 나섰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엄격한 검사 동일체 원칙이 적용되는 당시 검찰문화와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박 후보가 상부 지시 없이 단독으로 추가 수사를 지시할 지위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박 후보는 "지휘부의 지시나 지휘가 없으면 별도의 독립적 검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체제가 아니었다"고 응대했다.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수사를 총괄하던 안상수 전 검사 등으로부터 은폐 권유를 받은 적이 있는지 질문했고, 박 후보는 "한 번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 박 후보는 당시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관련해 "1987년 5월 말까지 검찰 수사팀에 참여하면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을 보탰다.

◆안상수·김동섭 vs 이부영 '엇갈린 증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창원시장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박 후보는 사건의 은폐·축소에 관련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안 시장은 "박 후보는 조한경·강진규 등 두 경찰관이 구속되고 나서 수사에 관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며 "이후 신창언 당시 서울지검 형사2부장이 주임검사를 맡고 그 밑에 제가, 제 밑에 박상옥 검사로 체계를 갖춰 송치된 사건(조·강 경찰관의 축소·은폐 사건)에 대한 수사계획을 짰다"고 언급했다.

당시 서울지검 형사2부 고등검찰관으로 일했던 김동섭 변호사도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 "(박종철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올릴 때부터 경찰에서 은폐하려 한 것이며, 이를 안상수 당시 검사가 타살 혐의가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며 "당시 박상옥 검사가 전혀 관여한 사실은 없다"고 안 시장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김 변호사는 "그 이후 박상옥 검사와 제가 공판도 진행하면서 축소·은폐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를 유지했다"며 "박상옥 검사가 축소·은폐에 개입했다면, 당시 검찰이 (축소·은폐 혐의로) 치안본부장을 구속할 때 경찰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부영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참고인으로 출석해 구속 수감된 조한경·강진규 등 두 경찰관 외에 다른 3명이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당시 수사검사였던 박 후보가 알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 고문은 1987년에 조한경·강진규와 함께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당시 이들 이외에 공범이 더 있다는 내용을 교도관으로부터 듣고 이를 처음 폭로한 인물이다.

이 고문은 청문회에서 "당시 경찰청 대공수사단 단장(치안감)과 간부들이 두 경찰관을 찾아와 1억원씩 든 통장 2개를 내놓고 회유했지만, 두 경찰관이 '주범이 아닌데 왜 우리를 집어넣느냐. (다른) 세 사람이 있지 않느냐'며 공범 3명의 이름을 얘기하며 저항해 회유가 무산됐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런 정황이 당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검찰 수사팀에 전달되지 않을 수 없다"며 "여주지청으로 인사 이동하기 전 박 후보도 이를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장관이나 총리 이런 자리보다 대법관은 더 지엄한 자리다. 말과 글과 정의로만 대한민국의 질서를 바로잡는 곳"이라며 "이 곳에 왜 고문 수사의 조작·은폐 혐의를 받는 분이 가야 하나. 깊이 재고해야 한다"고 후보직 사퇴를 권유했다.

한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스물세 살의 서울대 재학생 박종철씨가 치안본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숨진 사건으로, 같은 해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