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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칡과 등나무

가재산 피플스그룹 대표 기자  2015.04.06 14: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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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작년 여름 내가 활동하는 한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충청남도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에 갔다. 본래 태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남산에 올라가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처음 가보는 기회였다.

본래 이 수목원은 주한 미군 출신이었던 민병갈이라는 분이 한국에 귀화해 평생을 바쳐 66만㎡(20만평)에 수목원을 만들어 가꾼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곳은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2002년 민원장이 81세로 별세한 후 천리포 수목원은 재단법인이 됐고, 정부가 공익목적의 수목원으로 지정해 공개되기 시작했다.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인증을 받았으며, 국내 최대인 총 1만2천000여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4계절 어느 때나 꽃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자생 및 세계 각국의 희귀·멸종식물의 육성,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수목원으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미리 예약한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수목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세계도처에서 들여온 희귀한 나무와 식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마다 자세한 설명이 붙은 팻말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진 스토리는 물론 나무나 꽃 이름이 지어진 사연들이 적혀있었고 이를 볼 때마다 민병갈 원장의 정성과 숨소리가 아직도 밴 듯했다.

안내자의 재치 있는 말솜씨와 유머 섞인 설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칡과 등나무로 엉켜있는 큰 나무 앞에 다들 모이도록 한 후 안내자의 설명이 시작됐다.

"여러분 갈등의 어원이 무언지 아세요? 바로 저 나무들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저 큰 나무를 좌측에서는 칡넝쿨이 치렁치렁 옆의 나무를 감고, 우측에서는 등나무가 옆의 나무를 감고 있지요?"

자세히 보니 칡과 등나무가 가운데 나무 하나를 두고 용호상박의 한판대결을 벌이듯이 서로 엉켜 있었다.

반면 중간의 나무는 거의 본래의 모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채 나뭇가지들이 거의 말라비틀어졌지만 칡과 등나무는 이 나무를 완전히 에워 쌓을 정도로 아직도 싸움이 계속되는 듯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갈등(葛藤)이란 글자 그대로 칡 갈자(葛), 등나무 등자(藤)를 써서 '갈등'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보통 칡은 아래의 나무들을 햇빛 부족으로 죽게 하고, 등나무는 자신이 기어 올라간 나무를 목 졸라 죽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감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칡은 오른쪽,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기 때문에 이들이 한 곳에서 만나면 심각하게 서로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갈등이란 말의 어원이 된 것이다.

만일 이들 덩굴줄기를 풀어서 반대로 감아 놓아도 새로 자라나는 덩굴줄기의 끝은 고집스럽게 원래의 제 방향을 찾아간다. 서로 정반대 감기를 하는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갈등은 노사갈등을 비롯해 지역갈등, 이념갈등, 양극화에서 나타나는 각종 갈등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갈등은 회사 내 조직에서는 물론 가까운 가족, 친구, 특히 고부 간에서는 늘 갈등이 존재한다.

더구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심지어는 백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이미 국내에 거주하면서 다문화에 대한 갈등이 점점 이슈로 부각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개발한 사회갈등지수로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OECD 평균을 상회해 27개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갈등지수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도 영향을 줘 사회갈등지수가 10% 하락할 때 1인당 GDP가 7.1% 증가하는 것으로 볼 때 사회갈등 탓에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어느 곳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그렇다고 갈등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갈등이 효과적으로 관리만 된다면 다양성을 흡수해 다이나믹한 국가발전의 새로운 에너지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갈등은 관리되고 해결돼야 한다.

갈등의 해결은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갈등의 해결책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데 있고, 남을 공격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여는데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해결의 열쇠를 남에게 던진다면 나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먼저 열 수 있도록 상대방 이야기를 먼저 적극적으로 들어주는'적극적 경청'이야말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가재산 피플스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