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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김경태 기자 기자  2015.03.20 20: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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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 책은 현앨리스(1903~1956?)라는 여성의 삶과 비극적 최후를 다룬 책이다. 

현앨리스는 독립운동 인사였던 현순 목사의 맏딸로 독립운동·재미한인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삶과 시대를 조망한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는 현앨리스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그의 아들 정웰링턴의 가족사를 거쳐 4대에 걸친 현씨 집안의 근대사를 다뤘다. 

이 책의 저자인 정병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현앨리스의 삶을 추적하면서 처음엔 막연히 현앨리스가 미국의 스파이거나 박헌영의 애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매혹적인 상상만 했다"며 "하지만 체코 프라하에서 중요한 문서들을 발굴하고 1921년 박헌영과 현앨리스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모자이크를 완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앨리스는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며 경제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일본의 신민 △미국의 시민 △남한의 국민 △북한의 공민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경제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좌익 △북한 첩자 △미국의 스파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극단적 정체성을 강요당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신민 △시민 △국민 △공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던 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는 그녀가 우연한 선택이나 돌출적 행동으로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 것이 아닌 본인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 그 경로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한국 근현대사가 세계체제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뿌리 뽑힌 존재였으며, 늘 조국을 찾아 방황하는 방랑자이며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경계적 삶은 한국 근현대사가 경험한 파국이 반영된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 등으로 잘못 소비돼 온 현앨리스와 그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오랜 추적의 산물인 것이다. 

사실 남북한의 그 누구도 그녀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박헌영 간첩사건의 조연으로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조명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비극적 진실이 전하는 발현되지 못한 역사의 가능성과 교훈을 알 수 있다. 

정 교수는 "한국 현대사는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한 여성의 치열했던 삶을 스파이의 우극(憂劇)으로 마멸시켰지만, 미래 한국은 묘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그 삶이 전하는 역사적 울림에 좀 더 진지하고 관대한 성찰을 갖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정병준 지음, 가격은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