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아웃소싱 심층분석] "열정페이·재하청의 애환" 방송아웃소싱 세계

대규모인원수급·비용절감 효과적…외주제작사 형편 따라 아웃소싱업체 휘청

추민선 기자 기자  2015.03.20 09:09:06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대박' 드라마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는 으레 스타들의 활약이 있기 마련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담겨있다.   

드라마의 현실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보조출연자의 실감나는 연기가 있어야 하고, 예능방송 현장에는 활기찬 분위기를 위해 '박수부대'가 필수적으로 동원된다. 각종 영화의 보조출연으로 참여하는 엑스트라도 영화를 빛내는 주요한 축이다. 특히 대규모 인원을 한 번에 투입해야 하는 역사극의 경우 엑스트라의 역할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소수의 스타를 보다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수백·수천명의 힘이 한 데 모이는 것이다.  

방송제작사들은 아웃소싱 방식으로 방송 보조출연진의 원활한 수급을 해결하고 있는데, 출연진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하루에도 몇 개의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하는 살인적 일정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긴 시간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하루 일당은 고작 4~5만원. 이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사-외주제작-방송아웃소싱 '공급 사슬'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의 프로그램은 대개의 경우 외주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뉴스 등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 방송물이 외부에서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제작은 외주 프로덕션이, 송출은 방송국이 담당하는 식이다. 

△보조출연 △작가 △운전기사 △박수부대 등의 종사자들은 방송인력 아웃소싱업체를 통해 외주제작업체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외주제작업체-아웃소싱업체'로 엮인 재하도급 형태인 셈이다. 대규모 인원 섭외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고, 방송인력 수급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인력공급 방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장소섭외 △조명 △소품 △음향 △인테리어 △카메라 △무대설치 △음향 등 방송 각 분야 종사자들도 대부분 아웃소싱 방식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때문에 각 아웃소싱업체들은 프로그램 장르에 특화된 콘텐츠로 자신들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아웃소싱업체들은 방송 프로그램 성격상 최대 6개월까지 인원을 투입하면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고용된 단기 근로자들은 아웃소싱업체 소속으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면서 일을 이어간다. 하지만 투입될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 사실상 실직자처럼 돼버린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다음 프로그램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카메라맨, 작가 등 방송 핵심인력들은 1~2년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어 그나마 안정적이다. 일반 보조출연진에 비해 다음 일거리(작품)로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아웃소싱업체에 소속된 간접근로자이기 때문에 고용환경은 늘 불안하다.

최근엔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고용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 외주제작업체 관계자는 "한 프로그램당 들어가는 제작비는 한정돼 있고, 수많은 인력과 다양한 준비 과정에서 방송국 자체 정규직으로 모든 인원을 소화하기 힘든 구조"라며 "단기간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이 보조출연을 지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받은 임금, 참담…"

방송 관련 일에는 업무 특성상 '미래의 꿈'을 위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방송 종사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기다림, 열악한 환경 등 근무여건이 좋지 않아도 내일을 위해 참고 견딘다. 하지만 불안한 임금구조는 이들의 열정을 식게 만들고, '방송 열정페이'는 곧 무의미해진다.    

방송국 임금체계는 역피라미드 구조다. 일류 배우의 출연료는 억 단위지만, 대량으로 투입되는 보조출연자의 임금은 대개 최저시급에 맞춰지고 있다. 최저시급 적용도 그나마 일이 있을 때다. 기다리는 동안은 이마저도 없다.

보조출연자 김효주(가명·26세)씨는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한 아웃소싱업체를 통해 드라마 촬영장에서 보조출연자로 출연하고 있는데, 밤샘작업도 많고 일정변동이 많아 몸도 마음도 힘들다"며 "방송 성격상 시간에 맞춘 촬영이 불가능한 건 이해하지만, 추위와 더위에 하염없이 기다리다 받는 임금은 참담할 정도로 적은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업계에 따르면, 임금을 떼이고 딱히 하소연 할 곳을 잃어버린 출연자들이 적지 않다. 외주제작사로부터 보조출연자의 임금을 받아 챙긴 뒤 연락을 끊어버리고 잠적하는 아웃소싱업체들 때문이다. 외주제작사로부터 제대로 돈을 못 받았다며 약속된 임금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주며 이해를 구하는 곳은 그나마 양심적이다. 

방송인력 아웃소싱업계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외주사에 지급하지만, 외주사가 수익이 낮을 경우 보조출연을 섭외한 재하도급사(방송인력 아웃소싱업체)에 도급비 지급이 어려워지게 되고, 이런 악영향은 보조출연자들에게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아웃소싱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해야"

방송 아웃소싱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방송인력 저임금 문제는 방송 아웃소싱업계의 고질적인 저가 마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번 낮아진 도급단가가 시장의 평균단가로 자리 잡는 등 업체들 간의 무리한 가격경쟁으로 임금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돼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송 아웃소싱, 특히 보조출연 분야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CG 기술이 많은 인력을 대체하고 있어 더욱 그런 것 같다"며 "여기에다 업체들의 무분별한 저가 마진 경쟁은 업계 스스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협회와 업계 스스로 내부의 적을 만들고 경쟁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논리적이고 합당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위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